시랍시고

나 여기서 나무되어 살까?

지리산자연인 2006. 1. 6. 20:14
나 여기서 나무가 되어 살까?

 

 

나 여기서 나무 되어 살까?

귀네미골 천미터 높은 마을

고냉지 붉은 보라빛 돌밭 한가운데

구름낀 동해 바다 바라보며

두다리로 뿌리뻗어 살까?

 

나 여기서 나무가 되어 살까?

출세, 명예도 이젠 싫어

사랑도 몰라

날 지치게 만드는 모든것 다 털어버리고

바람 언덕에 내 가지 휘어 살까?

 

나 여기서 나무가 되어 살까?

별이 초롱이는 밤에는 삼척 앞바다

어선 불빛이 아스라히 깜박이고

새벽비 내린 아침엔 휘파람새 나를 깨운다

소똥냄새 그윽한 농사가 시작되려면 아직 먼 이곳

하얀 관목 키작은 몸 바람에 누워 자라는 이곳에 살까?

 

나 여기서 나무가 되어 살까?

여름엔 수확을 끝낸 농부들과 막걸리를 나누고

겨울엔 굶주린 멧돼지떼 내 뿌리 먹이며

지나가던 바람한테

이런저런 얘기 어쩌다 세상이야기 들으며 살까?

저 험한 산아래 꼭 내려가야만 할까?

구멍나버린 가슴

구멍난 세월

차라리 나 여기서 나무가 되어 살까?

 

2002. 4. 16 십이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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