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서 나무가 되어 살까?
나 여기서 나무 되어 살까?
귀네미골 천미터 높은 마을
고냉지 붉은 보라빛 돌밭 한가운데
구름낀 동해 바다 바라보며
두다리로 뿌리뻗어 살까?
나 여기서 나무가 되어 살까?
출세, 명예도 이젠 싫어
사랑도 몰라
날 지치게 만드는 모든것 다 털어버리고
바람 언덕에 내 가지 휘어 살까?
나 여기서 나무가 되어 살까?
별이 초롱이는 밤에는 삼척 앞바다
어선 불빛이 아스라히 깜박이고
새벽비 내린 아침엔 휘파람새 나를 깨운다
소똥냄새 그윽한 농사가 시작되려면 아직 먼 이곳
하얀 관목 키작은 몸 바람에 누워 자라는 이곳에 살까?
나 여기서 나무가 되어 살까?
여름엔 수확을 끝낸 농부들과 막걸리를 나누고
겨울엔 굶주린 멧돼지떼 내 뿌리 먹이며
지나가던 바람한테
이런저런 얘기 어쩌다 세상이야기 들으며 살까?
저 험한 산아래 꼭 내려가야만 할까?
구멍나버린 가슴
구멍난 세월
차라리 나 여기서 나무가 되어 살까?
2002. 4. 16 십이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