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민음사
값 25,000 원
원제 : The God Delusion
(신이라는 망상)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 때에 문과와 이과를 가른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나를 문과생으로 단정지어버렸고, 그 전까지 흥미를 느끼던 물리학, 천문학, 우주론 등에서 손을 떼 버렸다. 자기 스스로의 암시가 흥미까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던 때가 바로 이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손을 뗄 수 없었던 유일한 과학자가 바로 리처드 도킨스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매력은 하나로 형연하기 힘든다. 그는 동물학자이며, 진화학자이다. 그러나 그의 모든 저작마다 그의 문학적인 부분이나 철학적인 부분에서의 뛰어남을 느낄 수 있다. 과학자라고는 믿기 힘들 만한 능력이다.
이러한 그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창조론자를 격파했고, '확장된 표현형'에서 전작의 주장을 더욱 구체화했으며, '악마의 사도'에서는 철저한 합리주의와 이성에 근거한 논리로 미신, 포스트모더니즘, 사이비 과학, 종교 등에 대해 매우 날카로운 일침을 가했다. 그러한 그는 이번 책을 통해 인류 전체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미신이라 할 수 있는 종교(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를 매섭게 공격한다.
나는, 나아가서 거의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감성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또한 학습의 결과로 이성적이다. 나의 상충된 성질에 방황할 때도 적지 않지만, 일반적인 경우에 나는 이성의 편을 든다. 비록 수많은 진화를 거쳐 왔음에도 아직 불완전하고 변덕이 심한 감성보다는, 약간은 불확실하지만 머리를 식히고 냉철히 판단하는 이성이 더 정확할 가능성이 높기 �문이다. 그것이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에서 심사숙고하여 나온 이성의 경우일 경우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기에 합리적 이성으로 미신을 공격하는 이 책의 영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매우 큰 흥미를 느꼈으며, 한국어판이 나오고 얼마 후에 서점에 가서 구입했다. 재미있는 점은, '우울과 몽상'과 같은 날에 구입했다는 것이다. 나는 하루에 '우울과 몽상'이 선사하는, 공포로 대표되는 감성의 극과, '만들어진 신'이 주는 이성의 극을 동시에 구입 한 셈이다.
도킨스는 첫 장부터 과학과 종교가 함께 간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한다. 가장 처음 나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이야기이다. 아인슈타인의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일부 종교인들은 저런 빈약한 근거로 아인슈타인이 기독교 신자라고 허풍을 치고 다녔다. 결과적으로는 모두 거짓이다. 아인슈타인의 편지 하나가 종교인들의 주장을 모두 뒤엎는다. 아인슈타인이 인격신에 대한 엄청난 반감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킨스는 신 가설을 철저히 분석하여 폐기하고,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논증들과 맞서 싸워 이기며,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한 이유들을 내세운다. 그러면서 자신의
내가 만난 일부 종교적인 사람들은 종교가 없어지면 인간들이 비도덕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덕의 근원은 게임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오히려 시대가 변함에도 논리적인 이유 없이 신성시되는 '선한 책'들이 시대정신에 걸맞는 도덕을 헤친다. 성경에서 원주민들을 살육하는 장면이나, 자신의 딸을 내어 주는 장면,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하는 장면 등에서 우리는 역겨움을 느끼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도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시대에 그런 일들이 허용되어서는 안 되며, 여기에서 우리는 종교의 불합리성을 느낀다.
종교가 없어진다면 우리 세상은 한층 더 풍족해질 것이다. 서두에서 도킨스가 말하듯이, '자살 폭파범도 없고, 911도, 런던폭탄테러도, 마녀 사냥도, 화약 음모 사건도, 인도 분할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도,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도, 유대인을 '예수 살인자'라고 박해하는 것도, 북아일랜드 '분쟁'도, 명예 살인도,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번들거리는 양복을 빼입은 채 텔레비전에 나와 순진한 사람들의 돈을 우려먹는 복음 전도사도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자. '고대 석상을 폭파하는 탈레반도, 신성 모독자에 대한 공개처형도, 속살을 살짝 보였다는 죄로 여성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행위도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자. 가슴이 벅차오지 않은가?
그러나 이러한 당위성과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종교 없는 세상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것이 있는데, 바로 내가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칭했던 '종교의 뿌리'라는 장이다. 진화론적으로 인간은 종교를 믿게 되는 성향을 발달시켰다고 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장이다. 이렇게 보면, 종교를 믿게 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아무리 이성으로 종교를 안 믿으려고 노력해도, 대부분의 인간들은 본능에 굴복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바로 종교 없는 세상의 구현이 힘든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던 것 처럼 우리는 전진해야 한다. 이성과 합리적인 생각을 위하여. 원시의 비과학성과 인간의 무지를 거름으로 하는 종교에 대항하여. 인터넷이 퍼지고 의무 교육이 현실화되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지적 수준이 향상됨에 종교에 대항하기는 이전보다 쉬워졌다. 이는 점차 신자의 농도가 줄어들어 종교 없는 세상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준다.
"나는 인류가 이해의 한계를 넓혀 가고 있음에 전율을 느낀다. 더 나아가 우리는 아무런 한계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지 모른다." - Richard Dawk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