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스크랩] 전통농법 거름에 대하여

지리산자연인 2010. 4. 19. 22:18

 

요즘은 거름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화학비료까지 생각하면 거름이 지천이다. 논 같은 경우는 대충 요소비료만 갖고 농사짓기도 하고, 대개는 오염된 공장식 축산 거름을 밑거름으로 쓴다. 유기질 비료라고 해서 돈 주고 사다 쓰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친환경 유기농업 중 유기재배를 하는 농가에선 유박이나 쌀겨, 깻묵 등을 비싼 돈 주고 사다 쓰거나 싼 수입 물건을 사다 쓰기도 한다. 가축에게 사료를 주지 않고 전통 유기축산 방식으로 키워 거름을 완벽하게 만들어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쨌든 거름이 많아서인지 지금은 뭐든지 거름을 주지 않고 농사짓는 게 없다. 하다못해 거름 주면 오히려 좋지 않다는 콩조차 거름으로 크게 키워 수량을 늘인다.

우리가 보통 거름이나 비료라는 말을 쓰면 그것은 질소질 거름을 지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질소질 거름은 단백질이 분해되어 나오는 것으로 주로 암모니아태질소(NH4+)나 질산태질소(NO3-) 형태로 작물에 흡수된다. 대개의 작물은 질산태질소를 흡수하는 반면 벼 같은 경우는 암모니아태질소를 흡수한다. 질소질 거름이 밭 흙에 들어가면 먼저 암모니아태질소로 분해되고 이를 흙 속의 미생물이 다시 질산태질소로 바꿔준다. 반면 논 물속에는 암모니아태를 질산태로 바꿔주는 미생물이 매우 적어 벼가 못 먹는 질산태질소는 논에 별로 생기지 않는다. 논물에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것은 암모이아태질소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질소질 거름은 몇 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 하나는 잘 유실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과잉 투입하면 염류장해를 일으키고 병해충도 많이 발생시킨다. 잘 유실되는 이유는 질산태질소(NO3-)는 전기적으로 마이너스(-)라 같은 마이너스인 흙이 잘 물고 있지 못한다. 그래서 물에 잘 쓸려내려가거나 햇빛을 받으면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질소질 거름은 흙의 염류를 축적시키는 대표적인 주범이다. 그러니까 작물의 먹이 이면서도 자칫 작물을 죽이는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작물에게 염류장해를 일으킬 만큼 많이 주지 않는다 해도 약간의 과도한 양을 투입하면 작물은 약하게 자라고 병해충들이 잘 달려든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물에 질소질 거름이 유실되지 않도록 거름을 묶어주어야 할 것이고, 염류장해를 일으키지 않을만큼, 병해충이 끼지 않을 만큼 적당히 작물에 흡수되도록 조절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답은 바로 퇴비(녹비)에 있다.

 

퇴비의 재료인 풀이나 톱밥, 왕겨, 재나 숯 등은 잘 삭아서 부식되면 질소질 거름을 묶는 역할을 한다. 흙이 거름을 머금을 수 있는 능력을 양이온 교환용량이라 하는데 흙 속의 부식이 양이온 교환용량의 70%를 차지하며 흙보다 그 용량이 20배 이상 높다. 흙 속에 유기질 부식이 많으면 질소질 거름도 묶어주고 더불어 과잉으로 인한 염류피해도 막아준다. 말하자면 유기물이 썩어서 흙 속에 부식으로 존재하면 그것이 질소질 거름도 묶어주고 더불어 과잉 투입된 질소질 거름도 중화시켜준다.

 

우리가 퇴비를 적극 사용해야 하는 바로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퇴비를 쓰면 방금 말한 질소질 피해의 예방 효과만 있는 게 아니다. 우선 흙의 물리적 성질을 좋게 해주어 흙을 푹신푹신하게 해주며, 흙 속에 미생물을 다량 증식시켜주고 흙의 온도를 높여준다. 퇴비를 위주로 했던 전통농업의 중요성이 거름 문제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관행농업(유기농업 포함)은 왜 질소질 거름을 많이 주는 농사를 지을까?

우선, 질소질 거름을 많이 주면 작물이 몸체를 크게 키운다.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재래종 작물은 질소질 거름에 익숙지 않아 많이 주면 쓰러지는(도복) 등 생육에 문제가 있다. 질소질 거름을 좋아하는 종자는 요즘 말하는 개량종들이다. 말하자면 질소질 거름을 잘 빨아먹어 잘 크고 일찍 열매 맺고 수량도 많이 맺게끔 육종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전형적인 관행농업의 다수확주의와 아주 긴밀한 요소이다.

 

두 번째는 그렇게 해서 생기는 문제는 농약과 석유 화학약품에 의존한다. 앞에서 말한 바 질소질 거름을 많이 주면 작물이 웃자라고 달아져 병해충이 잘 낀다. 고기만 잔뜩 먹고 웃자라기만 한 요즘 애들이 약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면 작물이 자생력이 없어져 외적인 농약 투입이 필수다. “농약 없이 어떻게 농사짓냐?”고 유기농업에 대해 의문시하는 관행농업 농부님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세 번째는 화학약품에 의존한 다수확주의 관행농업은 병해충 말고도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데 그걸 막기 위해 또 다양한 석유화학제품과 자재와 시설을 투입한다. 다수확은 단작(單作)을 필수로 하니 병해충도 많이 발생하는데다 잡초 문제도 심각해져 제초제와 비닐멀칭이 과잉 사용되고 철을 잊고 사시사철 똑 같은 농산물을 생산해야 하다보니 가온 비닐 하우스 시설이 우리 시골에 넘쳐난다.

이렇게 문제가 있음에도 질소질 과잉시비의 농사를 짓는 것은 다수확, 단작, 광작(廣作)이라는 전통식 농사방법과는 전혀 다른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옛날엔 질소질 거름을 많이 주지 않는 농사를 지었다는 것인데 왜 그랬을까?

우선 질소질 거름 자체가 부족했다. 지금처럼 고기를 많이 먹지 않으니 대량 축산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집집마다 조금씩 키우는 몇 마리의 가축 정도이니 똥 자체가 부족했다. 축분만 부족한 게 아니라 풀과 곡식이나 먹고 살던 시대인지라 사람들의 똥에도 질소질이 부족했다. 거의 풀만 먹는 소똥이나 매한가지라 해도 된다.

 

두 번째는 지금처럼 질소질 거름을 아주 좋아하는 개량종과는 다른 토종 종자로 농사지은 것이다. 예컨대 벼 같은 경우 토종은 개량종에 비해 키가 매우 크다. 거의 두배 정도다. 정확히 얘기 하면 토종이 큰 게 아니라 개량종을 작게 만든 것이다. 몸을 키울 에너지를 이삭을 키울 에너지로 집중하게끔 한 것이다. 토종 벼가 큰 것은 일단 빨리 몸체를 키워 주변을 장악하려는 것이다. 잡초를 이기기 위한 전략이다. 개량종은 주변을 장악할 만큼 몸체를 크게 빨리 키우지 않으니 그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풀은 제초제를 치든 손으로 매든 해야 한다.

 

그래서 토종 벼에게 개량종만큼 거름을 많이 주면 더 커서 반드시 포기가 쓰러진다. 몸체를 크게 키우는 데 에너지를 많이 쓰다보니 개량종보다는 수량도 적을 수밖에 없다. 아무튼 이렇게 토종은 질소질 거름을 지금의 개량종 작물보다 적게 먹는다. 그러니 질소질 거름을 그렇게 많이 줄 필요가 없었다.

 

세 번째는 지금처럼 거름을 많이 필요로 하는 농사 방법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요즘과 같은 다수확, 단작, 광작이 아니라 자급자족, 윤작(輪作), 소농 식의 농사는 그렇게 많은 질소질 거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팔기위해서 농사짓는 것이 아니니 수량이 많으면 좋겠지만 거기에 매달리지 않으며 더더욱 때깔 좋고 잘 생긴 것에는 관심도 없으니 B품이어도 상관 없다. 몇 천 평에 단일한 작물을 심는 단작, 광작은 절대 없다. 여러 가지를 번갈아가며 심고 규모도 적다. 단작, 광작에는 일시에 많은 거름이 들어가야 하지만 윤작은 같은 면적에서도 거름이 적게 들어가며 일시에 재배하는 게 아니라 번갈아가며 작물을 재배하기 때문에 작물 간의 상호작용을 이용해 재배해면 더욱 거름을 아낄 수 있다.

 

그래서 네 번째는 거름도 필요없을 뿐만 아니라 거름을 만드는 작물을 적극 이용했다. 대표적인 것이 콩이다. 콩은 뿌리에 거름을 만드는 미생물이 산다. 이른바 뿌리혹박테리아로 공기의 질소를 화학작용을 가해 질소질 거름으로 만들어준다. 콩 자체도 아주 소중한 식량 작물이지만 콩이 거름을 만드니 그 자체가 농자재다. 이 콩을 다른 곡식들과 섞어지어 거름 효과를 낸다. 가령 보리 수확하기 전에 콩을 심고 그 옆에는 또 목화를 심는다. 이른바 사이짓기인데 보리는 곧 수확하지만 목화는 콩이 만드는 거름을 먹고 자란다. 또 콩 밭에 드문드문 수수를 심기도 하고 옥수수를 심기도 한다.

 

콩 말고도 자운영이 있다. 자운영도 같은 콩과 식물로 질소질 거름을 상당히 생산한다. 주로 논에 사는데 봄에 꽃피었다가 씨를 맺어 떨어뜨리고 포기가 쓰러지면 바로 모내기가 행해진다. 자운영만 갖고도 질소질 거름 주는 것 없이 농사가 가능하다.

 

다섯 번째는 농사 부산물이 많은 작물을 선택해 수확하고 나서 그 부산물로 거름을 만들어 쓴다. 곡식들이 대표적이다. 반면 채소들은 수확하고 나면 거름으로 쓸만큼 부산물이 나오는 게 별로 없다. 있어도 물기 많은 잎사귀들이라 쭉정이다. 반면 곡식들은 이삭을 탈곡하고 나면 다 거름이다. 벼도 그렇거니와 수수, 조, 기장, 옥수수, 들깨 등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요즘은 육식과 함께 채소의 수요가 늘어나 농가에서 너도나도 비닐하우스 채소 농사들을 짓는다. 당연히 거름으로 쓸 부산물이 적다. 게다가 이런 채소 작물들은 거름을 많이 먹는 다비성인데다 사시사철 비닐하우스에서 농사를 지으니 거름이 엄청 들어간다. 거름이 많이 들어가면 당연히 염류축적이 많아져 땅도 망가진다. 땅이 망가지니 이상한 약품과 미량요소 등 다양한 개량제와 농자재가 투입된다. 이른바 고투입 농사를 짓게 된다.

 

우리 조상들은 똥이 귀한 시절을 살았다. 밖에 나가 밥은 먹어도 똥은 반드시 집에 와서 쌌다. 그러니 가축 똥이 귀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원래 가축을 잡아먹기 위해 키우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었다. 일꾼이자 거름꾼으로 썼다. 소는 농부 한 사람 이상 가는 일꾼이었고 돼지는 거름 만드는 제조 공장이었다.

 

소는 사료를 먹고 사는 동물이 아니다. 생풀과 여물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풀을 뜯어다 먹이려면 지금처럼 풀이 지겨운 잡초가 아니다. 다 자원이었다. 소에게 먹일 풀에다 어떻게 제초제를 뿌리며 귀한 자원이 나지 말라고 비닐멀칭을 하겠는가. 또한 소똥은 귀한 거름이자 건자재다. 풀을 먹고 싼 똥이라 독하지도 않으려니와 벽돌처럼 말렸다가 연료로도 쓰며 집 벽이나 담을 칠 때 건자재로 쓰면 담벽 내구성이 높아진고 한다. 제주도 같은 경우는 말의 똥이 그렇게 좋았단다. 말은 소보다 더 소화력이 뛰어나 나무 조각도 먹을 정도였으니 그 똥의 품질이 그렇게 뛰어났단다. 불을 때도 오래 타고 벽과 담을 쳐도 그렇게 질길 수 없단다.

 

사람이 못 먹는 것은 전부 돼지에게 먹였다. 설거지 물에서부터 음식물 쓰레기, 농사 부산물, 하다못해 사람 똥도 먹였다. 한자의 집 가(家)에 돼지 시(豕)자가 들어가는 것은 전형적인 농경 문화의 상징이다. 돼지 꿈이나 똥 밟는 꿈을 길몽이라 여긴 것도 이런 농경 문화의 산물이다. 오죽했으면 고스톱 화투짝 중에 똥패를 제일 좋은 것으로 여겼을까.

돼지도 못 먹는 것은 아궁이에 들어가 연료로 쓰였고 다 태우고 난 재는 또한 거름으로 쓰였다. 말하자면 비료 3대 요소 중 가리(K) 거름이다.

 

어디 하나 자연을 오염시키는 쓰레기란 게 없다. 집 자체가 논밭과 어우러져 하나의 순환 세계이다. 그뿐이랴. 산의 낙엽도 다 거름으로 쓰였다. 지금은 산 속 숲이 너무 우거져 햇빛이 들지 않으니 산나물도 별로 자라지 않는다. 산의 낙엽이나 떡갈나무 잔가지와 잎사귀들은 논 거름으로 많이 썼다. 모내기 전 논에 물을 대놓고 갈잎들을 뿌려놓으면 물이 벌겋게 들면서 부글부글 발효가 된다.

 

이렇게 똥을 귀하게 여기고 똥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순환시키는 사회는 따로 친환경 농사이니 친환경 정책이니 하는 게 필요 없었다. 삶 자체가 그러했으니. 그러나 지금은 똥이 넘쳐나는 사회를 사는데다 그런 똥을 함부로 다루고 있으니 사방이 똥 천지 쓰레기 천지다. 게다가 똥도 옛날과 달리 청정 재료가 아니다. 항생제, 중금속, 호르몬제 오염이 심각하다. 그런 똥으로 농사를 지으니 작물이 건강할리 없다.

 

옛날식으로 질소질 거름도 적게 주고 채소보다는 곡식 중심으로 농사짓는데다 중소농복합영농으로 지으면 수량도 적을 뿐만 아니라 일도 많고 반면에 수입도 적을텐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냐고들 할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 식으로 계속 농사짓는다해도 농민은 희망이 없다. 게다가 이른바 오일피크, 석유 고갈 시대로 접어들면 더더욱 문제다. 지금식의 농산물 생산과 유통방식으로는 소비자들에게도 문제다. 먹을거리의 안전성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땅도 병들고, 작물은 약해지고, 농민은 희망이 없고, 소비자는 불안한 세상이 되어 다시 한번 조상들의 지혜를 되돌아볼 때가 아닌가 싶다.

출처 : 청계천박의 귀촌준비
글쓴이 : 淸溪川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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