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월의항구

[스크랩] 나의 적자인생 탈출기 3. 좌충우돌의 시기

지리산자연인 2018. 1. 30. 18:35

나의 적자인생 탈출기 3. 좌충우돌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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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2006년 지리산에 내려와 아무것도 없으니 임도에서 야전침대 놓고 비닐 덮고 자던 때가 제일 행복했던거 같습니다

내 땅이 있고 꿈이 있었습니다
봄 되면 산양삼도 심고 각종 산나물도 심고...

귀농을 자발적인 가난이라고 하지요
시골에 돈벌이는 그리 신통치 않습니다
맨날 소처럼 일하고 농협빚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속세는 싫고 시골서 살고 싶은데 한여름 땡볕에 일 잘할 자신은 없으니 산골을 선택한건데 시골에 돈벌이는 신통치 않으니 지출을 줄여야지요


처음 시골에 살고싶다는 생각을 했을때는 그래도 젊을때 한푼이라도 벌어서 들어가자 해서는 자신있는건 공무원시험이라

행정자치부 시행 7급 전기직 시험을 봐서 98년에 정보통신부 2001년에 산업자원부 2003년 과학기술부 발령을 받았습니다

뭐 공무원시험 경쟁율이 백대일 사백대일 하는데 실제 시험장 가보면 좌석의 삼분의 일에서 절반은 비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중이떠중이 빼면 실제 경쟁율은 얼마 안됩니다

그런데 군대시절 행정병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는데... 공무원이 딱 보니 행정병이라...
결국 못하겠다 하고는 그냥 산골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가진 돈은 적고 지출을 줄여서 일년에 이삼백만 벌어도 굶어죽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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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잘못한거는 구체적인 돈벌이에 대한 계획없이 뜬구름 잡듯이 산야초로 먹고 살겠다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고선 땅을 이리저리 사고 하니 이년 지나니 돈이 없더군요 ㅎㅎ

그리고 지출도 술먹고 담배 피니 그거로만 일년에 사백이상은 나가더군요

2006년 말부터 산에 독활을 심고 2007년에는 산양삼 심고 곤드레 참나물 눈개승마 모종을 구해 심고 옻나무 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삼만평이라 해도 지리산 국립공원에 만천평 이상 들어가고 순 악산에 산죽밭이 넓어서 실제 쓸 수 있는 땅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남이 안 쓰는 묵밭에도 많이 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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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변에서 토종벌 많이 하기에 저도 토종벌 시작해서는 자리를 잘못 잡아 여러 통 죽이고 했습니다

토종꿀이란게 약성은 좋은데 일년에 한번 뜨는지라 날씨가 안 좋아 비가 한도끝도없이 내리면 벌들이 일을 못해서 자기네가 모아놓은 꿀 다 먹어버리니 설탕을 안 주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밤꿀 뒤엔 꿀이 적은 무밀기가 오는데 이 시기에 모아놓은 꿀을 많이 먹어버리구요

토종벌은 꿀이 나오면 좋고 안 나오면 말고식으로 그냥 본인과 지인들 나누어 먹는다 생각하고 해야지 업으로 생각하고 하면 힘들겠더군요



어린이 명작동화?
2008년 분봉철에 하루에 새끼벌이 네통이나 나와서는 기분 째지게 좋던 날에 기념사진


벌비(별비X) 내리던 날의 저녁


엉겅퀴꽃이 화려이 피더니 어느새 여름입니다
두류산은 꿀벌들에 점령당했습니다
점령군은 밤꽃위에서 온 산을 흔들어대고
얼치기 산도둑놈은 현기증을 느낍니다


나들이 다녀온 벌들이 나무들 사이 열린 하늘에서
벌비가 되어 폭포처럼 쏟아집니다
밤꽃이 산에 가득하니 벌통마다 꿀이 가득하고
그 향에 취합니다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지치술 한잔, 두송실주 한잔, 노박덩굴술 한잔에 취하고
지리산 산속에만 사는 커다란 북두칠성은
꼬리가 천왕봉에 걸렸습니다

산은 사람을 빚어내니
이 산골 사람들은 산을 닮았습니다
이 산속에 귀신이 찾아올까 두려울까요?
그래봐야 인심좋은 지리산골 산귀신이라...
내 아끼는 마가목술 한잔 대접해 보내드리리다


2008.6.12 김병욱


2008년 봄에 20통 분양받아와 동강리에서 본격적으로 토종벌 키우기 시작 설탕 하나도 안 주고 벌들이 겨울동안 양식할거 남기니

가을에 30통이 살아남았는데 달랑 8되 정도 나오더군요
사실 설탕 주는 것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2009년에는 남은 벌통을 밀원이 좋은 오봉리로 옮겼는데 관리가 힘드니 가을까지 8통 정도 살아남았는데

이번엔 싸구려 꿀을 벌집째 사와 벌들이 모은 꿀은 전부 따내고 날라리 꿀을 넣어주었는데 11되 정도 나오더군요

그것도 지인들 한되나 반되씩 나누어주니 돈은 안되구요

2010년에는 전국적으로 낭충봉아부패병이 번져버리니 다 죽어버리더군요

토종벌 사업에서 투자비 수백만원을 그냥 날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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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어찌 인산의학 하시는 분과 인연이 닿아 2012년 부터는 죽염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함양은 인산 김일훈선생이 말년을 보낸 곳이라 인산의학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죽염이란게 건강식품이고 상당히 매력이 있더군요
죽염은 강력한 항산화물질이라 죽염으로 발효식품을 만들면 부패균이 활동하기 힘들어 맛이 기가 막힙니다

그래서 죽염부터 시작해서 죽염된장 간장 죽염젓갈 죽염김치까지 생각했습니다
현재는 죽염된장 간장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돈은 제가 투자하고 기술자는 그분이고 제가 시다바리 합니다
우리가 식품제조허가가 없으니 허가있는 공장에 우리 기계 자재 들고 가서는 거기서 죽염을 우리가 만들고 유통전문판매업 허가를 받아 OEM 방식으로 제 상표로 파는겁니다

식품제조를 할 때 물건이 얼마나 팔릴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공장 짓고 물건 만드는게 아니라 이런 방법으로 시작해서는 잘 되면 공장을 짓습니다

그런데 동업은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맞더군요
기계를 사라해서 2012년 3월에 분쇄기 사고 투자는 했는데 이 분이 세월아 네월아 하고 시간만 보내고 물건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 내 돈 더 투자하지도 못 하고 결국 일년 뒤에 구회죽염도 아니고 삼회죽염이 일년은 지나서야 나왔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둘이 싸워서 저는 따로 읍쪽에 있는 회사와 손잡고 죽염사업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죽염은 제가 그동안 인터넷에서 쌓은 신용이 좋으니 처음엔 어느 정도 많이 팔리더군요 그러다 경제는 점점 더 안 좋아지고 판매량이 줄어들고 그러니 처음처럼 그리 의욕적이지 않게 되더군요

대신 죽염된장 사업은 죽염된장 자체가 맛있는데다가 우리 진달래가 음식에는 천재적이고 가격에 비해 맛이 탁월해 경쟁력이 충분히 있어 전망이 밝아보입니다

제가 계속 연구중인 십이월(김병욱) 표 항암제는 쉽게 말하면 쥐눈이콩죽염옻된장입니다
옻성분이 암에 좋은데 독을 중화시키는 방법으로 된장발효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전남 신안 사는 분과 죽염젓갈을 OEM생산하려고 합니다

죽염사업은 아직까지는 공들인 만큼 그리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군자금이 적으니 대나무도 직접 잘라오고

죽염 좋은거 알려면 젓갈 담아보면 압니다
멍게젓 굴젓이 몇달 지나도 색이 안 변해요

죽염은 일반 소금과 성질이 많이 틀려서 소금이 산화작용하면 죽염은 환원작용을 하고 소금물은 백도 이상에서 끓는데 죽염수는 40도 이상에서 부터 끓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름에 소금 먹으면 물이 켜이는데 죽염은 그게 훨씬 덜 하고 계란찜에 죽염 쓰면 간장 넣은거 하고 비슷하게 됩니다

출처 : 【우수카페】신비한 약초세상
글쓴이 : 십이월(김병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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