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터의 추억
2002년 7월 저 개는 누르빠
2002년 그해 겨울에 설악산 산속 마장터에는 항상 눈이 일미터씩은 쌓여 있었습니다
사방 몇키로미터 안에는 저하고 발발이 누르빠 밖에 없었습니다
도로 전기도 없고 눈이 쌓여 아무도 올라오지 않고 나 혼자 사는 산속 오지
진짜 파라다이스였습니다
처음에 속세가 싫다고 배낭 매고 산속으로 떠돌았는데 이러다 겨울은 어찌 보낼까 걱정했는데... 그해 7월에 마장터에 들어가고서는 마장터에 있는 모님의 억새로 지붕을 한 작은 귀틀집 하나를 빌려 아예 겨울을 거기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집주인이 여름하고 겨울에는 해외에 나가 있으니 집을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마침 제가 거기 있었습니다
저 왼쪽의 집에서 겨울 두번 보냈습니다
저 아래 미시령 가는 도로에서 산길로 평상시 45분 걸리는 거리가 눈이 쌓이고 나니 늘 최소 1시간 20분 이상씩은 걸리더군요
마장터에 눈이 오면 일미터씩 온다는 이야기는 듣고 있었는데 2002년 12월 7일 아침부터 내린 눈이 다음날에는 장화신고 나가면 장화속에 눈이 들어오고 삼일째 되던 12월 9일에는 배꼽까지 눈이 쌓였습니다
난생 처음 그런 눈을 겪으니 황당하데요
그런 눈이 12월 말쯤에 또 한 번 내렸습니다
온도계는 항상 새벽에 영하 이십도 이하였는데... 싸구려 중국제 온도계라 믿을게 못 되었구요
그해 겨울을 마장터에서 보내기로 하고 보급품을 준비하는데 좀 여유있게 지내려면 하루에 일키로씩의 보급품이 필요하겟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미처 보급품을 산속으로 다 나르기도 전에 눈이 엄청 쌓여버렸습니다
김장김치는 산아래 살던 김광식씨 부인한테 배추 열포기 부탁드려서 준비했고.... 십이월(김병욱)표 김치랍시고 그때 배추가 한포기 600원인가 했는데 그거 몇포기 사다가 무조건 짜면 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소금 간장 왕창 부어서 놔두었고... ㅎ
평상시 다니던 길이 눈이 많이 내리기 걷는 높이는 땅바닥에서 일미터씩 위에서 걷고 나뭇가지는 눈무게로 내려앉아 있고... 그러니 길도 잘 못 찾겠더군요
정준기아저씨는 12월 9일에 이제 눈이 쌓였으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서 내려가신다네요
산에서 내려가는데 삼일이 걸리더군요
설피 신고 첫날엔 고개 가는길 중간까지 갔다가 다음날은 고개까지 진출 셋째날은 아예 저 아래로 내려가셨습니다
물론 내려가실때 마장터에 있던 유일한 설피를 신고 가버리셨으니...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제 정준기씨 내려가고 마장터에는 저하고 인도에서 라즈니쉬 명상 배웠다는 아가씨만 있었는데...
제 주관적인 느낌은 라즈니쉬 명상 배웠다는 분들이 성격이 좀 까다롭더군요
그 아가씨 자기 방문 앞에 '묵언수행중'이라고 써붙이고는 방해하지 말라고 하고는 하루 종일 나오지도 않더군요
그 아가씨도 12월 20일 경에 내려가야 겠다고 하길래 저 아가씨 눈쌓인 산길을 겁도 없이 혼자 내려가나? 해서 제가 앞장 서고 해서 저 아래 미시령길 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 뒤론 자유! 산속에 나 혼자다!
한겨울에 산속에 혼자 있는데... 보급품은 적고...
맨날 밥에다 이름 모를 찌개만 먹어대니... 점점 먹는 밥양이 늘어서는 쌀 20키로가 40일 정도면 바닥이 나더군요
그래도 좋았습니다
어쩌다 등산객들이 미시령 상봉코스로 해서 마장터를 지나가기도 하고 눈구경 하겠다고 한겨울에 놀러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상 소식은 군부대 훈련때 설치했던 삐삐선 좀 가져와 라디오에 길게 연결하면 국군방송이 유일하게 겨우겨우 들을수 있었습니다
저녁 9시면 KBS뉴스를 십여분 틀어주는데 그게 반갑더군요
산속에서는 휴대폰이 잘 터지질 않는데 집 뒤로 능선을 몇백미터 올라가면 문자메세지는 겨우 보내고 받을수 있었습니다
산속을 떠돌때는 늘 혼자여서 좀 외롭고 했는데 마장터에서는 발발이 누르빠가 있으니 외롭지 않더군요
그래서 산에서 살면 개 한마리는 있어야 하는구나 했습니다
그 겨울에 집주인 형제분이 바이꺼라고 진돗개 한마리를 더 데리고 왔는데...
어느날 뭐가 우당탕 하고 해서 뭔가 하고 방문을 여니 그 녀석이 정신없이 방안으로 들어오더군요
그래서 내쫓았는데... 뭔가 이상하다 해서 보니.... 쥐약 한통을 다 먹어버렸더군요
그녀석 쥐약먹고 공포에 떨면서 다니더니 죽더군요
바이꺼는 한겨울에 땅을 팔수도 없어서 일단 눈을 깊이 파고 묻었다가 봄이 되어 눈이 녹으면서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조 장
지붕위 시루떡으로 켜켜이 쌓인 고독 눈물로 흘러내리는 아침
오두막 옆 물박달위에서 가마귀 한쌍 가악가악 나를 보챈다
신선봉 내린 물은 청명으로 달리고
하얀 우리 아가는 네발로 겨우내 덮은 넓은 솜이불 밀쳐낸다
그래 오늘은 너도 이사가야지
순하디 순한 눈 살작이 감아 고운 잠자는 바이꺼(白狗)야
농협 하얀 15키로 사료푸대 이불 따스하고
지게위 삼립빵 상자 침대는
물푸레 흰 작대기 걸음마다 흐느적 거리니 흔들침대구나!
우리는 하얀 모래위를 지나
억새밭 빈 참호속 하얀 양모위에 살며시 너를 재운다
자! 떠나가거라
두 다리 날개되어 날아가거라
한숨은 영원을 향한 아쉬움
군용 88한개피 있으면 향불이라 우기기라도 할텐데...
이제 나도 떠나가야지
신선봉 넘는 높새바람에 내몸 실어 소간령 넘어 가야지
2003. 4. 8. 십이월
누르빠는 산속에 사는 암캐라..
집주인이나 정준기씨가 산아래 내려갈때는 미시령도로 옆 개울 근처까지는 잘 따라가는데
제가 내려가려 하면 딱 눈치 채고는 안 따라 오더군요
산아래가 아니고 마장터를 돌아다닐 때는 잘 따라 옵니다
이녀석도 제가 마장터에서 두번째 겨울을 보낼때는 산아래까지 따라오더군요
시간나는대로 마장터에서 살던 이야기 올리겠습니다
그때 마장터에서 지낼때의 경험으로 2006년 지리산에서는 좀 오지였다는 산청군 오봉리 산34번지를 경매로 사서 거기다 오두막을 지었습니다
3미터X6미터 조립식 철제 천막에 샌드위치 판넬 두르고 안에다 구들침대에다가 샤워시설까지 만들었습니다
요즘 도시에 아파트 평당가격이 얼마이니 하는데...
이런 산골에서는 구들까지 있는 6평 정도 되는 오두막 짓는데 1000만원도 안 듭니다
오봉리 오두막은 안에 두사람이 누울수 있는 구들방에다 사방 편백나무를 둘렀습니다
오봉리 6평 오두막
오봉계곡
고구려식 구들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