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 유구읍 마곡사계곡 상원골
이번 주말, 나는 이미 폐허가된 옛 절터 상원암에 오르려고 아산(온양)에 사는 친구와 함께 뜬금
없이 길을 나섰다. 화창한 봄날 유구읍내에서 마곡사계곡을 따라 마곡사 방향으로 10Km 정도
달려오니 언젠가 몇차례 보았었던 낯익은 간이식당 상원골식당 간판이 보였다
허물어져가는 옛 암자터 상원암은 이곳에서 올라가야 하는데 상원암까지 올라가는 산길이 기억
에 잘 떠오르지 않았다. 최근 요 몇일전에도 올라가다가 길을 잃어 버려서 다시 산을 내려 왔었
던 기억이 두차례 정도 되는데 이번에는 기필코 찾아 내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이곳을 찾
아온 것이다
위에 사진에서 보이는 마을은 상원암이 있다 해서 옛부터 이곳을 상원골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
곳 오른편으로 상원골식당이라는 간이식당 하나가 자리잡고 있는데 폐허의 옛 절터 상원암으로
오르려면 이곳에서 출발해야 한다
상원골에서 폐허의 옛 절터 상원암으로 오르는 산길
마곡사계곡의 상원골에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산길을 따라 약 100m 정도 오르다 보면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산길 옆으로 죽 피어있는 모습들이 보이고 화전민들이 살았던 돌로 쌓은
집터의 흔적들도 쉽게 볼수 있다
상원골에서 상원암으로 오르는 산길
이 길은 내가 7~8년전에 올랐던 길이 아니였다. 당시 내가 상원암에 올라갈때는 이런길이 아니
라 백주대낮에서도 어둠컴컴한 숲속의 작은 계곡길을 따라 올라 갔었다. 이 길은 아마 누가 새로
낸 길인듯 하였다
그리고 이 부근으로는 옛 화전민들이 살았던 돌로 쌓은 집터의 흔적들도 군데 군데 보였었는데
이름하여 상원골이라 부르고 폐허의 옛 절터 상원암은 이 길의 끝인 산 정상 부근에 있었다
이제 이곳에서부터가 문제다. 전에도 상원암을 찾아 오르다가 이 부근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다시 내려왔었는데 이곳 어디쯤에서 계곡을 따라 들어가는 길이 있을듯 했다
저 길 모퉁이를 돌아서서 왼쪽을 보니 사람이 지나갔었던 흔적이 보이는듯 했다. 그 희미한 길의
흔적을 따라서 내려가보니 7~8년전에 오르면서 보았던 낮익은 계곡길이 보였다. 이제부터는
기억이 날듯 하였다
폐허의 옛 절터 상원암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물
상원암은 마곡사 산내의 암자였는데 내가 7~8년전에 올라가 봤을때는 암자라기 보다 화전민이
사는 널판지로된 집이였던것으로 기억을 한다. 그곳에는 7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노스님 한 분
이 살고 계셨었는데 그 당시는 그 노장님이 스님이라는 사실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도 그럴수 밖에...
그 노장님은 승복도 입지 않은체 돌아 다니셨고 방안에는 부처상 하나 모셔놓지도 않았었다. 그
리고 널판지로 지은 집에서 작은 화전이나 일구면서 사셨었는데 작은 흙집 방안에는 라면박스나
과자박스, 그리고 진흙 묻은 농부의 작업복 몇개만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때 그 노장님은 흙집으로된 작은 골방에서 사과를 깍고 있었는데 반쪽을 싹둑 잘라 나한테 주
면서 한 번 먹어 보라고 하였다. 그것도 산골 마을에 사는 화전민들 특유의 순박한 웃음을 지으
면서...
그것이 그 노스님과 나의 첫번째 대면이였었는데 아주 마음씨 푸짐한 이웃집 할아버지의 모습
그 자체 였었다. 나는 그때 그 할아버지가 화전이나 일구면서 산속에서 홀로 사는 독거노인 정
도로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몇년전 마곡사 들어가는 입구의 옥돌식당에서 산채 비빔밥을 먹으면서 그 집 아주머니에
게 내가 상원골에서 보았던 그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었다. 마곡사 입구의 옥돌식당은
내가 예전에 갈때 마다 들렸던 단골식당이었는데 내 이야기를 다 들은 그 아주머니는 대뜸 이런
말을 하는것이었다
자신도 그 스님을 어렸을적부터 보아 왔었는데 예전에는 마곡사 주지스님까지 하셨던 스님이였
다고...뜻밖의 그 한 마디에 나는 그만 전류에 감전된 사람처럼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있었다
그 후 나는 그곳을 찾아서 몇번이나 올라가다가 길을 �지 못해 그냥 내려왔었다. 예전에 올라
갔던 산길이 기억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로부터 세월이 7~8년 이상 지난것 같은데
혹시 입적 하시지나 않으셨는지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마곡사 옛 암자터 상원암 오르는길
상원암을 찾아 오르는 산길은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사람이 지나갔던 흔적을 따라
잘 살펴서 올라가지 않으면 또 예전처럼 산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마곡사 옛 암자터 상원암
몇 차례씩이나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계곡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 올라오다보니 어느새
산 정상이었고 그 곳에는 눈에 익은 흙집 하나가 우거진 숲속에서 그 비밀스런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다
맞다...저곳은 분명 옛 암자터 상원암이였다
7~8년전에 사과를 깍아 주면서 먹으라고 손을 내밀던 그 노스님이 계셨던 흙집인 옛 상원암...
그런데 예감이 이상했다. 그 노스님이 계셨던 흙집은 잡초만 무성한체 다 쓰러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아...입적 하셨구나...하고 속으로 중얼중얼 거리며 그 곳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나무 관세음 보살...나무 관세음 보살...나무 관세음 보살...
평소에 한번도 입밖으로 해 보지도 않았던 이런 중얼 거림이 목구녁을 타고 계속 흘러 나왔다
노스님이 계셨던 흙집 바로 옆에 있는 폐허의 상원암 옛 절터
그때 노장님은 저 돌로 쌓여진 축대가 옛 절터였었다고 했었는데 이곳이 옛날엔 아주 큰 절터
였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런 돌축대의 흔적들이 이곳엔 군데 군데 넓게 퍼져 있는것을
쉽게 볼수 있는데 그냥 눈 대중으로만 봐도 큰 절터였다는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상원암 해우소
그 허물어진 옛 절터의 흔적을 따라 노스님이 기거 하셨던 흙집으로 가고 있는데 돌로쌓은 요상
하게 생긴 움막이 하나 눈에 뜨였다
" 어 ? 저건 또 뭐지 ? "
화들짝 놀라 가까이 가 보니 해우소였다
해우소 앞으론 잡초도 없었고 청소는 깨끗하게 되어 있었다. 문득 혹시...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혹시 하는 생각은 잠시였다. 노스님이 40년동안 홀로 기거 하셨던 흙집으로 가 보니
그곳엔 잡초만 무성할뿐 사람의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그때는 저 또랑물 앞으로 널판지로 된
부엌문이 하나 있었는데 노스님은 저 또랑물에다 오이와 가지, 호박, 참외 같은것을 담가 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노스님은 저 또랑물을 냉장고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데 흙집과 또랑물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던 널판지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노장님의 흔적 또한 오리무중이였다
" 그렇다면 저 돌로 쌓은 해우소는 또 뭐지 ?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노장님은 이미 입적 하셨고 이곳은 다른 스님이 들어 오셨는데 거처를
그 옆 산등성이로 옮겼던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그 노스님이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에서 화전이나 일구며 사는 독거노인
인줄만 알았었다. 승복도 입지 않았었고 흙집으로 된 작은 골방엔 부처님 대신 라면박스와 과자
박스, 그리고 밭일할때 입던 흙묻은 옷들이 벽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승려라는 이야기도 한 마디 하지 않았었고 더 더욱 예전에 마곡사 주지스님이였
었다는 이야기는 입밖에 내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화전민처럼 밭이나 갈면서 흙 묻은 손으로
사과를 깍아 주니 나는 당연히 화전이나 일구며 사는 독거노인 정도로만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새로 들어오신 스님의 이야기로는 그 노장님이 세수로 40세 되던해인 60년대 중반쯤에
이곳에 들어 오셔서 40여년동안 홀로 계시다 재작년에 입적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왜 노장님은 큰 스님 자리를 내놓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 40여년동안 홀로 살으셨을까 ?
큰 절에 계시면 대중들이 큰 스님 대우도 깍듯이 해 주었을것이고 그러다보면 보다 안락한
일생을 마치셨을수도 있었을 텐데...
사람들은 저마다 곧게 뚫린 밝고 큰 길 옆에 모여들어 저마다의 몫을 다투고는 있지만
때로는 이렇게 깊은 산속으로 슬며시 돌아서서 바깥 세상과는 차단된 곳에서 은밀하게 살았던
한 인간도 있었다. 나는 지금 그 노스님을 스님이라기보다 하나의 인간으로 부르고 싶은것이다
스님도 스님이기 이전에 뜨거운 피가 있었고, 두려움이 있었고, 절망이 있었고, 좌절이 있었던
하나의 인간었던 것이다. 다만 그 나약한 인간으로의 모습을 겉으로 나타내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먼 옛날 이렇게 후미진곳으로 길을 떠나 왔었던 한 사람이 있었다
세상의 밝고 큰 길에서 슬며시 샛길로 접어들어 다시 만나게 되는 세상의 길...
기약도 없는 길을 따라 이런 첩첩산중으로 들어와 화전이나 일구면서 세상과 돌아 앉았던
한 인간의 흔적이 지금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세상의 길이 어찌 그 길밖에 없었냐고 묻고도 싶었지만
이미 세상의 모든 길을 버렸는데 또 어떤 길이 그를 막을수 있으랴
하나의 인간으로서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너는것과 같은 구도의 길은
그동안 자신이 애지중지하고 있던 모든것들과의 작별을 고하는 길이 아니었던가 ?
그리고는 늘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면서 그 홀로인 홀로마져 작별을 고해야 하는길...
그것이 곧 구도의 길이 아닐까 ?
오늘은 이 한 인간이 한 시대를 풍미하며 지나왔던 구도의 길을
오늘은 내것으로 하여 그 방랑의 끝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상원암의 새 주인이 되신 스님이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함석집
또랑물 앞에 있던 널판지 집은 허물어지고 함석집 하나가 그 옆에 있었는데
새로 들어오신 스님이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상원암의 새 주인이 되신 스님이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함석집
새로 들어오신 스님이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이 함석집은 예전에 노스님이 곡식과 농기구등
을 보관하던 창고였었고, 저 앞의 푸르른 숲속에 푹 파묻힌 흙집은 재작년에 입적하신 노장님이
기거했던 집이다
또랑물을 사이에 두고 집이 두채가 있었는데 지금은 허물어지고 봄풀이 무성한 공터만이 그때의
흔적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상원암의 새 주인이 되신 스님이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함석집과 꽃밭
상원암의 새 주인이 되신 스님이 기거 하시고 계신 함석집
지금까지 사진으로 보여 주었던 장면들이 옛 상원암의 흔적들이었다. 사진에서 보셨다시피 현재
의 상원암은 암자로서의 모양새를 온전히 갖춘 암자는 아니다. 옛날의 상원사가 언제 세워졌었는
지 또 언제 무슨 이유로 폐허가 되었는지...이곳에 새로 들어오신 스님도 알수 없다고 한다
다만 이곳에서 발견되는 기와의 파편과 그릇조각, 돌로쌓은 오래된 축대의 흔적, 이 스님이 기거
하시는 뒷쪽 대나무숲에 가지런히 세워진 빛 바랜 부도군으로 봐서 500년전 부터 존재 했었던
사찰이였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만 해 볼 뿐이다
그 빛바랜 부도군은 이 스님이 기거하는 함석집 바로 뒷쪽 대나무 숲에 있는데
한개의 비석과 다섯개의 부도가 2열 종대로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옛 상원사의 빛바랜 부도군
이 부도들은 가장 아래쪽으로 주춧돌 같은 받침돌들이 박혀있다. 가운데로는 둥그런 몸통같은 돌
이 올려져 있고 제일 위에는 기와 지붕같은 사각 모양의 돌이 올라가 있다. 높이는 대략 보통 성인
들 키의 가슴팍 정도 된다
부도군 제일 앞에 세워져 있는 빛 바랜 비문
다섯개의 부도군 앞으로는 빛 바랜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비석에는 이런 비문이 쓰여져 있었다
禪敎兩宗靑巖堂 大禪師學宗之塔 (선교양종 청암당 대선사 학종지탑)
그러니까 이 비석의 주인은 청암당 대선사 이신것 같은데 청암당 대선사라면 나도 한번도 들어보
지 못했던 선사님이시다. 비석 뒤로 청암당 대선사님의 이력에 대해서 뭐라 뭐라 빼곡히 새겨져
있었는데 비석이 너무 낡아서 알아묵지 못한 탓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내 눈이 그런문
자를 알어묵을수 있을정도의 혜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나무숲 부도밭에서 바라본 옛 상원사 터
저기 나무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파란 지붕이 상원암의 새로운 주인이 되신 스님이 기거 하시는
산채이다
새로 오신 스님의 앞 마당에 있는 우물터
" 선교양종 청암당 대선사 학종지탑" 이 있는 부도에서 내려와 저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우물을
한 바가지 퍼 마시고 산을 내려가려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무슨 인기척이 있었다. 돌아보니 이곳
상원사 암자터의 새 주인이신 스님이였다
내가 먼저 멋적게 한 마디 올렸다
" 허락도 없이 물 한 바가지 퍼 마셨습니다. 스님 ! "
이렇게 멋적게 인사를 올렸더니 그 스님은 웃으면서 대뜸 이렇게 말씀 하시는것이었다
" 물 임자가 뭐 따로 있습니까 ?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다 임자죠 "
그러시더니 마당앞에 있는 오가피 나뭇잎을 몇개 따서 자신도 하나 먹더니 나에게도 먹어보라고
하시면서 서너개 따서 건네 주었다
" 내가 마당을 오면서 가면서 하나씩 따먹는 오가피 나뭇잎인데 첨에는 무척 쓰죠.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입에 향기가 맴돌아요. 자...먹어봐요 "
그래서 생판 처음으로 그 오가피 나뭇잎 서너개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더니 무척 쓴맛이
입을 얼얼하게 만들어 하마터면 인상을 찌푸릴뻔 했다. 하지만 잠시후에는 그 스님의 말씀대로
입안 가득 잔잔한 향기 같은것들이 감돌았다
오가피하면 나는 오가피로 담군 술밖에 몰랐었는데 오가피 생 나뭇잎이
그렇게 신비한 향기를 풍기는 나뭇잎인줄은 그제서야 처음 알았다
상원암 옛 암자터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나의 친구와 이곳의 새 주인이된 스님
저 스님은 전에 계셨던 노장님이 재작년에 입적하신후 곧바로 이곳에 들어오셨다고 한다. 그 노
장님은 이 산채에서 근 40년간 홀로 기거 하셨는데 말년에 거동이 불편하여 마곡사에 잠시 계시
다가 입적 하셨고 자신은 그 노장님이 입적 하시기 전, 이곳 상원암터를 물려받아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 스님 ! 제가 스님 사시던 곳에서 살아볼까 하는데 그 암자 저에게 주십시요 "
이 말 한 마디에 그 노장님은 단박에 이 암자를 저 스님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
상원암 옛 암자터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나의 친구와 이곳의 새 주인이 된 스님
스님의 앞 마당에 심어져 있는 오가피 나무
저 스님이 오가피 나뭇잎을 따서 먹어 보라고 몇개 건네 주더니 이번에는 컴푸리 잎사귀를 따서
주섬주섬 봉다리에 넣어 주셨다. 저것을 찌어서 떡이나 부침개를 만들어 먹어도 좋고 된장국이나
찌게같은 국거리에 집어넣고 먹어도 맛이 아주 향긋 하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시면서...
우리는 그날, 예전에 계셨던 노장님을 만날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산을 올라왔었는데 노장님
은 재 작년에 입적 하셨다고 하신다. 그래도 저 스님에 위해서 옛 절터였던 상원사 터가 말끔하게
가꾸어 지고 있었기에 그래도 안도의 숨을 쉬면서 산을 내려갈수가 있었다
그런데 저 스님에게 오가피 잎사귀 하고 컴푸리 잎사귀...등등 한 봉지 얻어 왔는데
이 웬수를 원제 갚아야 할른지는 나도 모르겠다 ^ ^
출처 : 물밖으로 뛰어오른 망둥이 이야기
글쓴이 : 나먹통아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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