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지리산둘레길

지리산 도보길

지리산자연인 2008. 6. 17. 19:29


'이제, 수직으로 바쁘게 오르는 정복의 길이 아니라,
너와 나, 우리가 수평으로 눈높이를 맞추고 천천히 향유하며
함께 거닐 수 있는 지리산길이 열립니다. '



지난 4월 30일 한겨레신문에 지리산 길이 열렸다는 기사를 보았다.
대안운동을 하는 지리산생명연대가 지난해 설립한 '숲길'법인이 '지리산 길' 사업을 주관하면서 지리산 언저리 마을과 마을을 잇는 300km 길이의 장거리 도보길...
무엇보다 마을과 마을을 잇고, 그 길이 내 태어난 지리산 길이란다.
수직으로 뻗은 정복의 길이 아니라,
수평의 길... 나누고 어울림의 길...
언제부터인가 산능성을 걸으면서도 정상은 나에게 별 의미를 던져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산이 있고, 그 속에 안겨 흙과 함께 하는 노동과 사람의 길을 걷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길을 5월 푸르름의 한 가운데서 떠난다.
금요일 남원으로 향하는 걸음은 설렌다.
첫날 첫번째 구간 매동마을에서 창원마을까지 가기로 한다.
안내지도를 보면 4시간 정도이지만, 혼자한 발걸음은 쉬어가도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 곳곳의 풍경을 이곳에 담아본다.

말은 최대한 줄이면서 길의 풍경을... ^^





저 멀리 삐삐 광고가 이곳은 시대의 흐름보다 더디게 지남을 알려준다.

서울에서 9시 40분 남원행 버스를 타고 그곳에서 다시 인원-매동마을행 버스 2번을 갈아타서 오후 3시에 도착한 매동마을... 여기서부터 나의 지리산 도보길은 시작한다.




어디서나 마을회관 근처 담벼락에 흘린 낙서는 정겹다.



마을 뒷동산에서 바라본 매동마을 풍경... 저어기 학교가 보이고 산능선이 희미하게 고개를 내민다. 마을에 학교가 있다는 건 마음이 놓이는 일이다.^^




이번 도보길에서 유일하게 찍은 나의 모습... 길 떠나기엔 앞서 그 뒷모습을 찍는 마음이란...ㅋ




개서어나무라고 하는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이 나무하러 다니던 길과 오랜 세월 숲길을 지켜온 개서어나무를 만나는 길.. 그리고 이제 인간이 숨돌릴 터를 제공해주는 의자




지리산길을 가면서 가장 좋은 것은 이런 아름드리 나무들이 늦은 오후의 햇살을 머금으면서 내보이는 소나무의 붉음과 푸른 잎들이리라... 그냥 바라만 보아도 내가 살고 있구나 싶다.



하지만, 중황마을 위쪽을 가면서 만나는 오래된 비닐하우스... 비닐이 벗기어지고 무성하게 잡초만 자라는 모습은 사람이 떠났음에 대한 시린 마음을 건네준다. 현실은 푸른 자연만큼 눅눅하지만은 않은 듯...



그래도 저어기 작은 바람에도 세차게 흩날리는 나무잎을 지닌 나무.. 홀로 의연함이 어떤 자세여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고사리는 습하고 따뜻한 곳에서만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논두렁 사이 사이 양지바른 곳에서 마을주민들은 어김없이 고사리를 키우고 있다.






금요일이라 사실 반나절 내내 걸어도 단 한명의 도보여행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게 오히려 좋았지만.
때로 작은 산길을 가더라도 그 길에 사람의 내음이 없으면 길은 생명력을 잃지 않나 싶다.
그런 생각으로 걷고 있는데 산 깊고 높은 곳에 비탈을 깎아 만든 도랑논을 만난다. 그리고 마을분들을 만나고...
실례가 되지 않게 먼저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안녕하세요~~~" 라고... 그러면 어김없이 좋은 미소를 답해준다.


사방댐


저번 강원도 홍수가 났을 때 우리는 마을 근처의 개천을 사방댐으로 건설하지 않아 집중호우시 토사유출과 하상침식으로 인한 농가 및 농경지의 피해가 엄청났었다.
다행이 이곳은 그런 교훈을 밑바탕삼아 마을 계곡 곳곳에 이런 사방댐을 건설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산을 지키고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그 노력이 있어서..

상황마을에 다다르니 동남아에 주로 보았던 다랑논길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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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왠지 모른 고된 노동과 땀방울의 힘듦이 있으면서도 결코 흙을 떠나지 않은 풍경들...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힘들게 일구셨던 그 논들... 아름답다는 건...



지리산도보길은 방향 안내가 참 잘되어 있다. 쉬 길을 잃지는 않으리라...


상황마을을 지나면서 다시 도랑논을 만난다.



도랑논... 그 이름이 정겹기만 하다. 비록 지나는 길손의 시각이지만...




마치 하늘 가장 가까운 곳에 놓인 논인 것도 같다.


이제 등구재로 향한다. 이곳은 전라도(남원)와 경상도(함양)를 넘나들며 문화와 역사, 삶을 이어주던 고갯마루였다.



그 가는 길에 한봉을 치고 있다.

한봉과 양봉..
정채봉에세이집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서 한봉을 치는 김대형씨에 대한 인터뷰가 있다.
그는 "조선벌은 공해에 약하다. 아무리 밀원이 좋아도 농약 내음이나 기름 연기가 바람에 묻어오면 시들시들해진다. 그리고 양봉이 나타나면 그것처럼 괴로운 게 없다. 양봉이 한봉을 쏴 죽일 뿐더러 꿀까지 훔쳐가니... 행동에 있어서도 민족성을 보는 것 같고.. "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한봉을 친다고 하니 보고 느끼는 만큼 조선벌이 살기에 적합한 청정한 곳이길 ...



등구재를 넘어 가는 길은 이전과 또 다른 푸른 멋을 안겨준다.


참으로 멋지게 우뚝하게 솟은 소나무와 길... 여기서 그대로 발걸음을 멈추고 쉬어간들 어떠랴..
나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숲길에 있다.



등구재를 넘어 함양 창원마을에서 다시 다랑논을 만난다. 저어기 매화나무가 우뚝 서있다.


상황마을과는 또 다른 느낌의 창원마을에서 바라본 다랑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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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마을과 마을을 넘었을 뿐인데 마을분들의 말씨에는 엑센트가 달라짐을 느낀다.
전라도 억양과 경상도 억양의 차이..
비슷하면서도 강한 발음의 부위가 다름.. 그렇지만  미소띄고 얼굴 좋은 것은 다 같다. ^^



창원마을에는 위당산이 있다. 나는 이 당산을 보면서 김수영시인의 '거대한 뿌리'를 생각한다. 참으로 고개숙여 고맙다고 인사한다.


잠시 방향을 놓쳐 마을 주민에게 창원마을에 있으면서 창원마을이 어디냐고 물어봤다.
여기가 창원마을이라고...
가끔 난 길을 잘 가다가도 이럴 때가 있다.
그래도 이렇게 걷는 길 위에서의 약간의 멍청함은 내가 나를 인정해준다. ^^


대문 없는 마을집 풍경..


  

마을 어르신에게 인사하고, 여기 마을 길과 집을 사진에 담으려고 있습니다 어르신~ 하니
햇빛에 붉게 그을린 그 얼굴에 밝은 웃음으로 대신 화답해주신다.
아~ 내 고향 어르신이다...



마을 길 옆에 낮게 있는 이 집의 편지통은 언제쯤 다시 채워질까...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짙은 푸름만 무성이 뻗치고 있다. 홀로...


나무 장작으로 엮은 담벼락이 참 정겹다. 소유가 아닌 쓰임의 담.. 아니 울타리...



산길을 가다보면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보다 그냥 그 길에, 그 흙과 나무에게 말을 건네고 듣고 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의지가 아니라 나의 이성을 잠시 제껴두고 그냥 걷다보면
그들이 나에게 말을 건네준다.
지리산 길 위에서 그들은 나에게 더디가도 사람생각하고 가라 한다.

[ 세상 스케치 얄라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