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농 소리 듣던
과수원 “어휴, 이래서야 어디 과수원이라고 할 수 있겠소? 남들 보기 부끄러우니 둘레에 철조망이라도 쳐야겠소.” 자연농업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니 한 삼 년 전쯤 되겠군요. 박노진 씨를 비롯해 협회에서 배 과수원을 하는 분들이 몇 분 오셨었는데, 그분들이 저희
과수원을 둘러보고는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이건 과수원이 아니고, 아예 폐농 수준이라는 얘기였습니다. 모두 배 농사의 대가들이니,
그분들 눈으로 보기엔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겠지요. 아무튼 당시만 해도 저희 과수원은 그 정도로 몰골이 형편없었습니다. 별 다른
재배기술도 물론 없었고, 때마다 농약이나 치면서 되는 대로 농사를 지어 오던 수준이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수준의 과수원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자연농업 3년만에 그야말로 ‘대혁명’이 일어난 것이지요. 자연농업은 저희 과수원은 물론 저와 제 처의 인생관, 그리고 삶의
태도까지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루하루 과수원을 가꾸는 삶이 요즘처럼 신명난 적이 없었으니까요.
"당장 우리도 자연농업
하자." 철원군 동송농협의 구한서 과장이 여러 차례 자연농업 교육을 권해 올 적마다 사실 저는 콧방귀를 껴 대곤 하였습니다. 농약을 뿌리지
않고 풀도 뽑지 않는다는데, 그 말이 좀체 믿겨지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하도 끈질기게 권하기에 한번 들어나 보겠다는 마음으로 교육을 받게
되었지요. 그런데 교육을 받아 보니, 정말 내용이 좋더군요. 크게 감동받았고, 나도 잘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다음 기수에 바로
제 처를 교육 보냈더니, 교육을 받고 온 아내가 들뜬 표정으로 “당장 우리도 자연농업 하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러자면서 둘이
의기투합했지요. 사실 이처럼 자연농업을 빨리 실천에 옮길 수 있었던 데에는 제 아내의 역할과 노력이 지대했다는 점을 먼저 밝히고 싶습니다.
자연농업 자재를 제대로 만들려면 무수히 많은 노력과 열정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그 일을 쉼 없이 지속해 오고 있거든요. 저 혼자라면 사실
감당하지 못 했을 겁니다. 자연농업에서는 부부가 함께 농사 짓는 것을 강조하는데, 그 이유를 알고도 남을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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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재배의 효과로 장십랑이 1년이 되어도 싱싱한 맛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
ⓒ www.naturei.net
2003-10-20 [ 조 ] |
| | 장십랑의 장기 저장법 개발
저희 과수원의 주 품종은 신고와 장십랑입니다. 장십랑은 옛날 품종으로, 요즘은 재배하는 농가가 거의 없어 참 보기 드문 종자이지요. 저는
이 품종에 대해서 애착이 많습니다. 언젠가는 소비자들이 이 품종을 다시 찾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우선 맛이 독특합니다.
비유를 들어 설명해 보지요. 요즘 사람들은 상추쌈을 먹을 때 주로 가공 쌈장과 함께 먹지요. 자극적이지 않고 달짝지근해 맛은 좋지만, 자꾸
그것만 먹다 보면 재래식 된장 맛이 그리울 때가 있지요. 장십랑의 맛이 바로 그런 셈입니다. 당도만 높은 배와는 달리 상큼하고 깊은 맛이
나지요. 장십랑은 9월 초면 수확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추석 때에 맞춰 팔면 제법 효자노릇을 하지요. 장십랑은 저장이 안 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길어야 보름 정도밖에 저장할 수 없지요. 그래서 판로에도 애로가 많은 품종인데, 저는 1년 이상 저온 냉장고에 저장하는 기술을 터득하여
판매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비결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완전히 익기 약 열흘 전쯤에 미리 수확을 해서 저온 냉장고에 보관을 해 두는
것이지요. 그러면 배가 냉장고에서 조금씩 익어 가고, 1년을 보관해도 제 맛을 유지합니다. 일전에 손님들이 왔을 때 장십랑을 내놓으니
모두들 믿지를 않더군요. 그럴 수밖에요. 1년 가까이 보관된 장십랑을 맛볼 수 있는 곳은 저희 집밖에는 없으니까요.
'누드배'라는
브랜드 저희 집 배는 재배 방법상 남과 크게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배에 봉지를 씌우지 않는다는 겁니다. 일명 ‘누드배’로, 저희집
배의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봉지를 씌우지 않으면 그만큼 노동력이 절감돼 3천 평 기준 연간 3백만 원 정도의 경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누드배는 자연광 재배 방식이므로 향이 높고, 저장성이 우수합니다. 그러나 봉지를 씌우지 않으니 색깔이 안 좋아 시장에 출하하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100% 직판을 통해 전량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빛깔과 모양은 떨어지지만 맛이 좋으니 충분히 판매가 가능하지요. 1년에 1천 5백
상자의 배가 생산되고 있는데, 직판으로만 판매해도 없어서 못 팔 지경입니다. 저는 ‘누드배닷컴(www.nudepear.com)’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글 도메인명도 ‘누드배’입니다. 올해부터는 인터넷 전자상거래로도 물건을 팔 생각입니다. ‘자연농업
방식으로 재배하는 누드배’라는 특화 상품을 널리 홍보해 나가면서, 좀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해 나갈 계획입니다.
자연 속에서 얻는 자연농업
자재 자연농업은 ‘실천’이 중요하지요. 그래서 저희는 교육받은 대로 100%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처가 워낙 꼼꼼하게
자재들을 잘 만드는 성미라, 필요한 모든 자재들은 미리미리 만들어 비축해 두고 있지요. 저희 집에서 실천하고 있는 방법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보겠습니다. 먼저, 시내 제과점에 매일 들러 계란 껍질을 수거해 와서는 물에 불려 속껍질을 벗겨 냅니다. 그리고 햇볕에 말린 다음 잘게
부수어 항아리에 보관해 둡니다. 이 계란 껍질은 현미식초를 5백 배나 1천 배로 희석한 물과 함께 교대기 이후부터 엽면시비를 할 때 사용합니다.
그러면 배의 육질을 단단하게 만들어 아삭한 맛을 내게 합니다. 참깻대는 숯으로 만들어 보관해 둡니다. 토양에 질소가 과다하다 보면
신초(새 순)가 많이 나오는데, 그럴 경우 참깻대를 담가 우려내 세력에 따라 물을 희석해서 엽면시비를 해 주면 효과가 큽니다. 생선아미노산도
해마다 만들어 놓고 사용합니다. 올 봄에는 미네랄 워터를 만들기 위해서 석공예점에 가서 돌부스러기들을 수거해 와서는 통의 맨 밑에 깔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고운 천을 덮고, 다시 그 위에 키토산을 넣고, 또 그 위에 등 푸른 생선을 넣고 흑설탕을 뿌려 두었더니 제대로 발효가
되었더군요. 또한 배의 당도를 높이기 위해서 미네랄이 풍부한 바닷물을 많이 활용합니다. 1년에 10여 차례 이상 동해바다로 놀이 삼아 가서는
바닷물을 길어다 보관해 두고 수시로 뿌려 줍니다. 모든 농업자재를 ‘자연’에서 얻으라는 가르침을 그대로 행하고 있는 것이지요.
미생물의 활동 모습이 눈에 보인다? 저희는 과수원에 초생재배로 호밀 말고도 돌미나리를 심었습니다. 돌미나리는 물이 없이도 잘
자라므로 과수원에 심으면 뜯어서 먹기도 하고, 판매도 하며, 그것으로 천혜녹즙도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동네는 논농사를 주로 하는
곳이라 쌀겨가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것을 모아 두었다가 저희가 운영하고 있는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와 배술을 담그고 남은 찌꺼기 등과
함께 혼합해 발효시킵니다. 그런 다음 봄에 황토와 미네랄 액, 깻묵 등과 섞어서 봄에 거름으로 뿌려 주고 있습니다. 음식 찌꺼기들은 자체에
염분이 많아 잘못 쓰면 탈이 날 수도 있으므로, 설거지할 때 염분이 충분히 빠지도록 합니다. 음식물 찌꺼기에 쌀겨를 뿌려 두면 발효가 되는데,
제 아내가 하는 말이 “미생물들이 활동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는 겁니다. 그 작은 미생물들이 떼지어 흘러다니는 모습이 보인다니. 물론
착시현상일 수도 있겠지만, 제 아내가 얼마나 자연농업 자재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는지 충분히 느끼실 겁니다.
배를 이용한 음식의 개발,
판매 배 농가가 살아남는 길은 적극적인 판로 개척과 상품의 개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취지에서 저희 집은 식당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과수원과 연해 있는 곳인 만큼, 배를 이용한 음식들을 개발해 팔고 있는데, 음식을 맛본 사람들의 반응이 하나같이 대단하답니다. 수확된 배 중에서
상품(上品)은 판매하고, 중품은 음식 재료로 활용하면 소득 증대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배를 이용한 음식은 아주 다양합니다. 먼저 저희
집 대표음식으로 ‘오징어 배 무침’이 있지요. 저희 내외가 직접 개발한 음식으로,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별미를
찾아 멀리로부터 찾아오는 단골들이 제법 된답니다. 그리고 수확한 배 중에서 하품(下品)으로 분류되는 것들은 배 발효차를 만드는 데
쓰입니다. 배 발효차는 배에 흑설탕을 넣어 발효시킨 것으로, 물에 타서 먹으면 감기 등을 예방하는 데에 효과가 아주 크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배에 생강, 계피, 소주를 붓고 한지로 밀봉시킨 다음 숙성시켜서 만드는 배술도 있습니다. 그리고 배즙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데,
이름을 인동초 배즙이라고 합니다. 인동초와 배가 감기에 효험이 있으므로 그렇게 이름을 붙였지요. 배 농사는 물론이고 식당 일까지 온전히 저희
부부 두 사람의 노동력으로 해 나가자니 힘에 벅찰 때도 많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늘 밝게 산답니다. 일손이 달리긴 하지만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일을 해 나가니 그저 즐거울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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