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내가 지금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 방의 아랫목 풍경이다. 오늘부터 날씨가 추워진다는 소식에 불을 뜨뜻하게 때놓고 아들녀석의 곰돌이 아기담요 한 장을 깔아놓았다.
황토벽과 황토방!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이는 말이다. 90년대 후반 들어 갑자기 불어닥친 황토의 열풍은 최근 들어 웰빙 라이프 스타일의 선풍적인 인기를 타고 더욱 거세게 확산 심화되고 있다. 사실 예전의 집들은 모두 황토벽과 황토방이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회색빛 콘크리트 문화에 밀려 사라졌던 옛 것에 대한 회귀일 뿐인데 말이다.
한 가지 집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사용한 흙도 따지고 보면 황토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집도 황토집이라는 거창한 말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그냥 흙집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황토에 대해서 배울 때 선생님을 따라 황토를 파러 갔었는데 진짜 황색(黃色)을 띠고 있었다. 금빛 색을 띠고 있는 황토는 우리 나라 국토에서 아주 희귀하게 출토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임금의 방에만 사용했다는 말도 있다. 지금 우리들이 황토라고 부르는 흙은 적토(赤土) 아니면 자토 (紫土)다. 그 만큼 황토의 효능이 우수하기 때문에 비스무리한 흙을 보고 황토라고 여기고 마음에 위안을 삼으며 너나 할 것 없이 집을 짓고 있는 현실이다.
아무튼 흙을 사용해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시멘트로 지은 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친환경적이기에 나도 소위 황토집의 꿈을 이루었다. 나무와 흙의 절묘한 조화는 새삼스레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만큼 생태주택의 자재다. 둘 다 숨을 쉬는 천연적인 재료로서 특히 소나무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집진드기의 발생을 억제해주는 물질을 뿜어내서 아토피 어린이가 나무집에서 살면 그 증상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의료계의 보고도 있다. 또 흙은 실내의 습도를 50% 내외로 유지시켜 주어 가습기가 거의 필요없을 정도로 우리 건강에 도움이 된다. 나도 아파트에서 살 때는 늘 코가 헐어서 고생했다. 건강할 때는 잘 모르지만 조금만 몸이 약해지면 건조한 실내 공기 때문에 고생하던 것이 지금 이 집에서 살면서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나 강력히 황토집을 추천하고 싶다.
이제 황토벽을 하게된 과정을 이야기해 나가겠다. 처음에 집을 설계할 때 기둥을 7치(21cm) 각재로 한 이유는 황토벽돌을 사용하려고 그랬다. 그래서 벽 공사를 하기 전까지 황토벽돌에 대해서 수많은 정보를 입수했다. 경향하우징 건축박람회나 인터넷 등을 통해서 알아본 바에 따르면 전국에 황토벽돌을 생산하는 업체는 줄 잡아 300여 곳이 넘는다. 순수한 황토흙(여기서 그냥 흙이어도 상관없다)을 사용해서 전통적인 공법을 생산하는 곳도 있겠지만 한 마디로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순수한 흙만을 사용하면 갈라지게 마련인데 구운 벽돌처럼 단단하다는 점이 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실제로 갈라지지 말라고 섞어서는 안되는 여러가지 비생태적인 재료들을 사용해서 벽돌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가까운 곳에서 짚을 어넣어 만드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드는 곳도 있었지만 우리집에서 사용하기에 규격이 안 맞았다.
전통한옥의 단점은 역시 추운 것이다. 한 겨울 웃목에 놓아둔 요강에 살얼음이 얼었던 어렸을 적 우리 집의 추억은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기둥을 두 푼(6mm)정도만 노출시키고 20cm이상 벽두께를 하고 싶었는데 우리집 근처에서 생산하는 황토벽돌은 높이 15cm x 두께 15cm x 길이 30cm 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다. 또 하나는 황토벽돌의 가격이 문제가 되었다. 내가 찾던 20cm x 200cm x 30cm 벽돌은 운송비 포함해서 개당 2,000원이었다. 35평의 집에 거의 3,500장이 들어간다면 거의 700만원이 벽돌값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그런데 내가 벽돌을 쌓는다고 해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낮은 곳은 별문제지만 높은 곳을 쌓을 때는 일도 엄청나게 더딜 뿐더러 내 힘에 부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났다. 집을 지으면서 나무일은 아무리 해도 모르겠는데 처음 해보는 일들은 미리부터 겁부터 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황토벽돌을 포기한 또 하나의 이유는 나무와 흙이 만나는 점에서 벌어진다는 점 때문이다. 나무와 흙은 서로 끊임없이 건조되는데 그 과정에서 당연히 틈이 생기게 마련이고 이 때문에 황소바람이 들어온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황토벽돌로 우리집 벽을 쌓는 것을 포기하고 비용도 적게들 뿐 아니라 주위에서 파오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순수한 황토를 사용할 수 있는 흙벽으로 시공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아내에게 또 한 번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돈이 들더라도 쉽게 그리고 빨리 집을 지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만 고생시킨다는 것이다. 사실 황토벽 일을 하면서 아내와 나는 집짓는 동안 가장 힘든 고생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인고의 시간을 견녀낸 지금 아득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만큼 보람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사진은 우리집 흙벽을 쌓아가는 모습이다. 자세한 과정은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오늘에서야 우리집 가을 수확이 끝났다. 올해 초 새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급하게 포크레인으로 300여 평의 논을 새로 만들어 벼를 심었고, 또 300여 평에는 서리태와 메주콩을 심었다. 논에는 우렁이를 넣었고, 밭에는 김도 매지 못하고 낫으로 풀을 베어 깔면서 길렀는데도 가을이 되자 열매가 익어 고마운 마음으로 가을걷이를 하게되었다. 농약과 제초제 그리고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로 아내와 이 곳으로 이사오기 전에 이미 굳게 마음 먹었던 터라 그야말로 무공해 농사를 지은 셈이다. 우리가 구입하기 전부터 농사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척박한 단점은 있지만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내년부터는 좀더 퇴비를 잘 준비하고 잘 가꾸면 많은 수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하시는 농사를 도와드리면서 보고 배웠던 것이 이 초보농사꾼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일하기 싫어하는 내게 아버지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대 배워야 한다"며 일을 시켰었는데...
바로 작년 이맘 때 동네 사람들이 가을걷이에 한창일 때 우리는 황토벽일을 하고 있었기에 더욱 기억이 새롭다. 미처 가을일을 다 못했다는 동네 할머니들(60-70세) 서너 분에게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 80세 되신 우리집 바로 아래에 살고 계시는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 부부 이렇게 대 여섯 명이 거의 한 달 동안 흙일을 했다. 흙을 적당히 반죽하는 일은 할아버지가 맡았고, 나는 나르는 일을 맡았다. 할머니들은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서 안과 밖에서 서로 맞벽을 쳤다. 아내는 간식과 점심을 정성스럽게 챙겼고.
나는 처음에 흙을 반죽하는 것도 서툴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괭이 하나 들고 아주 쉽게 그 많은 양의 흙을 이겨주셨다. 작두로 짚을 썰어넣고 흙을 이겨놓으면 나는 외바퀴 손수레에 실고 여기저기 로 날라주었다. 하지만 흙을 반죽해 놓으면 이놈들이 엄청 무거워진다. 묵직하게 뭉쳐진 흙덩이를 수없이 주어담고 나르다보면 어느새 땀으로 범벅이 된다. 늦가을이 되자 아침 저녁으로는 살얼음이 얼어 손이 시려울 정도여서 옷을 두껍게 입고 일하다 보면 나중에 다 벗어 던져야했다.
해가 뜨기도 전 아침 7시에 동네 할머니들을 태우고 와서 종일 흙과 씨름을 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저녁 6시에 끝마치기를 거의 한 달이 지나자 흙벽이 세워져 있었다. 35평의 우리집 흙벽일을 실제로 일한 날 수는 보름이 채 안된다. 그럼 왜 한 달 동안 흙일을 해야 했을까? 그것이 바로 손수 자기 집을 짓는 이들의 고뇌일 것 같다.
예전 우리 한옥의 벽 두께는 세 치(9cm) 정도였다.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인방의 두께가 세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웠다. 요즘도 내가 한옥을 지어서 살고 있다고 말하면 춥지 않느냐는 반문부터 받는다. 기둥과 기둥 인방과 인방 사이에 나무를 대고 수수깡이나 대나무를 대고 안밖에서 맞벽을 쳤던 기존의 한옥은 정말 추웠다. 이런 단점이 해결된 것 중의 하나가 우리집에 사용된 흙벽의 방법이다.
먼저 벽을 만들고 싶은 부분에 한치(3cm) 두께의 각재를 세로로 세워서 못으로 밖는다. 이 때 벽의 두께를 얼마나 두껍게 할 것인지 미리 계산해서 각재의 숫자를 늘리면 된다. 그리고 이 각재에 다시 가로로 한치 각재를 댄다. 결국 양쪽 기둥이 연결되는 셈이다. 이렇게 안과 밖에 각재를 대니까 그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우리집의 경우는 20cm 정도의 벽두께를 하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세로로 각재를 세 개를 벽에 고정시켰으니 결국 5치(15cm)의 두께로 흙벽을 치게되었다. 여기다 나중에 3cm이상 황토미장(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다)을 했으니 결국 20cm 정도의 흙벽이 생기게 된 것이다.
*** 사진에 내가 설명한 대로의 각재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앞쪽은 마루에서 화장실 벽이고 실내이기 때문에 세로로 기둥과 인방에 고정시킨 한 치 각재가 두 개뿐이다. 이렇게 자유자재로 벽의 두께를 조절할 수 있다.
이 나무작업은 웬만한 이들은 손수할 수 있을 것 같다. 길이만 정확하게 자르고 못막 튼튼하게 박으면 되는 일이기에 굳이 돈을 들여 목수에게 맡기지 않아도 된다. 우리집에 사용된 9자(2m 70cm) 한 치 각재는 모두 800여개 정도다. 값으로 치면 거의 60여만원이 넘는다. 흙은 2.5톤으로 8대 정도 들었다. 가까운 곳에서 흙을 파올 수도 있지만 장비를 들여야하고 번거로워서 나는 근처의 건재상에서 모두 구매했다. 한 차당 9만원이 들었으니 70만원이 소요되었다.
일이 더뎌진 이유는 바로 이 각재로 벽을 만드는 작업 때문이었다. 미처 목수일을 다 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흙일을 벌여놓았던 나는 3일 정도 흙일을 하다가 또 3일은 내가 각재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못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벽 속에 전기배선도 직접해야 했기 때문에 더욱 일은 더뎌졌다. 전기업자에게 맡기면 되지만 한 푼이라도 아껴야하는 상황이라서 주름관을 묻고 매입콘센트가 들어갈 박스도 내가 달아야 했다. 사실 이런 전기작업도 언제 해본 일이 없던 터라 상당히 애를 먹어야 했다. TV선, 전화선 그리고 전열선 세 가닥을 집 곳곳에 연결해야 하는 작업은 보기보다 까다로웠다. 잘못 연결하면 나중에 다시 벽을 허물어야 하는 상황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 공사에 대해서도 집고 넘어가고 싶다. 신축 주택의 전기공사는 한전에서 허가받은 업자만 할 수 있도록 법령으로 정해져 있다. 나같은 사람이 아무리 전기공사를 잘해 놓는다 해도 전기업자의 도장이 있는 서류가 한전에 접수되지 않으면 계량기를 달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내 집이니 내가 하고 싶기도 하고 싸게 할 수 없을까 하고 여러 업자들과 효부(맞는 말인지 모르겠다)를 보았다. 한옥의 전기공사비가 평당 7만원이라고 하는데 4-5만원 정도로 낮추어 줄 수 없느냐는 내 제의에 한 마디로 "no"였다. 그래도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 이웃집에 공사하러 왔던 마음씨 좋은 업자가 평당 5만 5천원에 "ok"를 해 주었다. 돈도 절약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내 집의 일을 남에게 전부 맡겨두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고, 일생에 한 번 뿐인 전기공사인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덕분에(?) 흙일을 하는 그 바뿐 와중에 점점 녹슬어가는 머리를 굴리느라 고생께나 했다. 아내와 상의해서 전등은 어디에 달아야 하고, 스위치의 위치와 콘센트는 어디에 달아야 하는지 하나하나 물어가며 또 각재 일을 해가며 벽에 주름관을 묻는 공사를 간신히 끝낼 수 있었다. 끝내놓고도 과연 나중에 업자가 전기선을 연결하러 왔을 때 벽을 허무는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안심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그 다음 해(올 초봄)에 전기공사를 마무리 하러 왔을 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흙일을 겨울이 오기 전에 끝내려고 그렇게 애를 태웠던 이유는 바로 추위 때문이다. 10월 중순에 시작해서 11월 20일 경에 끝났으니 본격적인 동파가 시작되기 전에 흙벽일이 끝났다. 시멘트나 흙일은 얼어버리면 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얼었다가 녹으면 부실부실 떨어져 버린다. 여름은 우기이기 때문에 흙벽일을 하면 안되고 겨울은 얼기 때문에 안되고 결국 봄이나 가을에 해야하는데 사람만 많이 들이면 한 열흘도 안되서 끝날 일을 각재 일과 전기공사 일 때문에 한 달 이상 동안 흘벽일을 해야 했으니 내 애간장이 녹아나고도 남았다. 추위가 본격적으로 닥치기 전에 흙일을 끝내고 나니 먼저 한 흙벽은 갈라질 정도로 잘 건조되고 있었고, 맨 나중에 했던 벽들도 아무탈 없이 잘 마르고 난 다음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다. 겨울 동안 흙벽은 더욱 바싹 말라비틀어져 봄이 되어 황토미장으로 마감할 때는 정말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굳어있었다.
*** 사진은 흙벽작업을 마친 후의 모습이다. 대들보 위의 부분은 흙벽으로 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막았다. 먼저 한 부분은 벌써 말라 있고, 나중에 한 부분은 진하게 젖어있다. 사진의 하얀 부분은 혹시나 해서 생석회를 뿌려보았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참! 흙일 중간에 문틀을 제작하기도 했다. 전통한옥에서는 인방으로 모두 문틀을 제작하는데 만일 우리 집에 문틀을 인방으로 하려면 20cm이상 되는 각재를 사용해야하는데 그 비용이 엄청나게 나온다. 결국 흙벽에 적당한 나 나름대로의 방법을 사용해서 인방재를 연귀마춤을 해서 문틀로 제작해 보았다. 문틀과 문이 무거워서 나중에 흙이 마르면 쳐질까 염려해서 문틀 밑에는 다시 세 군데에 각재로 세워놓았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 집의 흙벽은 기둥과 인방 그리고 문틀이 완전히 하나로 결합되었다. 나무와 흙 사이는 전혀 벌어지지 않는 적극 추천할 만한 흙벽의 시공방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흙벽 일을 끝내고 나는 목이 쉴 정도로 기력이 다 빠져 몇일 동안 말을 못했던 시간도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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