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똥꽃’ 자리 이젠 웃음꽃 피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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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꽃〉
전희식·김정임 지음/그물코·1만2000원
귀농 아들이 산촌으로 모셔와 받들던 치매 어머니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는 치유될 수 있을까? 〈똥꽃〉(그물코 펴냄)은 ‘그렇다’는 답을 제시한다.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 삶을 통해 그것을 입증했다. 병원에선 엄두도 못 내던 일이었고 노인전문의도 그것을 “기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똥꽃〉은 치매가 “굴절된 삶의 현재적 표현”이자 “필요한 현상이고 (그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심지어 “생활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면 병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까지 한다. 그리고 “노인들의 치매가 병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현대를 사는 모든 인간들은 다 병자”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따라서 어머니의 치매와 싸운 〈똥꽃〉 얘기는 특정 치매환자가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는 진지한 실험에 관한 현장 보고서일 수 있다.
누워 지내면서 치매가 진행됐다. 작은형이 식사 때마다 어머니 틀니를 칫솔로 닦을 때는 보는 것만으로도 꺼림칙해 고개를 돌리곤 했던 그였으나 그날 벌겋게 짓무른 어머니 아랫도리와 하얗게 세버린 체모를 보고 울었다. “그 많은 자식 키우면서 어머니가 똥오줌 묻은 옷이나 걸레를 빠신 햇수만큼은 다 못하더라도 두세 자식 몫은 하리라 마음먹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내 건강한 시절 몇 년을 바치리라 마음먹었다.”
2006년 봄 식구들이 사는 전북 완주에서 멀리 떨어진 장수군 산촌의 다 쓰러져 가는 외딴 빈집을 구해 반년 가까이 수리를 한 뒤에야 식구들에게 알리고 이해를 구했다. 그해 9월 홀로 이사를 했고 2007년 2월에는 마침내 어머니를 모셔 왔다. “어머니에게 파란 하늘도 보여 드리고 바위와 나무, 비나 눈, 구름도 보여 드리려고 한다. 철따라 피고 지는 꽃도 보시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계곡의 바람결도 느끼시고 크고 작은 산새들이 처마 밑까지 와서 노닥거리는 것도 보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남 함양 출신인 어머니는 14살 때 시집와서 6남매를 눈물로 키웠다. 아버지가 43살에 돌아가신 뒤의 모진 과부살이였다.
방에 온통 똥칠갑을 한 사건은 그 와중에 일어났지만 전씨는 “감자 놓던 뒷밭 언덕에/ 연분홍 진달래 피었더니/ 방안에는/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 하고 노래했다.
전씨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존엄’, “건강보다도 존엄”이었다. 어머니에겐 반드시 존댓말을 썼고 집을 드나들 때는 절을 올렸으며, 집안 대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일일이 알려드리고 허락을 받았다. 어머니를 관리나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주체, 주인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에 앞서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은 어머니 얘기를 한결같이 비웃거나 개탄하며 무시하거나 그게 아니라며 교정해주려 애썼다. “어머니는 좌절했다. 그러다가 끝내는 언제나 부정당하는 자신마저도 포기했다. 나는 바로 이게 치매라고 생각한다. 포기한 삶의 틈새로 끼어든 이물질들이 치매다.”
눈 내리는 광경을 10여년 만에 보고 놀라던 어머니는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씨는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닌 생산적인 작업, 예컨대 청국장 만들기, 가죽자반 담기, 배추 심기, 쑥 뜯기 등을 어머니가 주도하도록 했다. 어머니는 아궁이 불도 지폈다. 양말과 바지를 몰래 찢어 어머니에게 바느질을 부탁하고 나무쌓기 놀이를 유도했다. 믿음 때문인지 어머니는 아들의 말은 용케도 잘 알아들었다. 모내기, 마을회관 가기, 사찰 행사 참가, 고향 나들이, 기도회 개최 등 아들은 어머니가 사람들과 어울려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만들었다.
“어머니가 나랑 사시면서 달라진 여러 모습 중에 가장 반가운 것”은 “맘에 안 들면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것, 떵떵거리고 사는 어머니 모습”이었다. “요즘 나 밥값 하제?”로 발전하더니 10년 만에 수제비를 끓여 아들 밥상을 차렸다. 먼저 그가 변하고 어머니가 변했다. 그리고 식구들이 바뀌고 주변이 함께 바뀌기 시작했다.
전씨는 〈똥꽃〉을 두고 “치매를 소재로 삼긴 했지만 주제는 세상과의 관계, 세상을 대하는 태도,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보자는 것”이라며, “외형이나 현상만으로 사람을 단정하지 말고 (어머니의 86년 세월처럼)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곡절과 내력을 읽고 이해하는 것, 그렇게 해서 소통하기 시작하면 뜻밖의 기적도 일어난다”고 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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