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스크랩] 꼼지락 꼼지락 내집짓기 10년차

지리산자연인 2006. 1. 2. 21:53
꼼지락꼼지락 10년 넘게 내 집 짓기
함평 부루네 집
이광재 기자  

▲ 올해 귀농 7년차인 부루네 식구들. 사랑채 '하루치' 흙일을 마치고 마당 텃밭에서 장독대를
의자삼아 나란히 앉았다. 왼쪽부터 맑은땅, 부루, 부소, 하늘빛.
ⓒ 김태성 기자

전남 함평군 대동저수지의 끝자락에 있는 대동면 서호리 호정마을. 네 가구가 전부인 이 작은 마을 한켠에서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다. 
천장이 유난히 높이 솟은 검정 기와지붕이 이제 막 황토를 바른 벽 빛깔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마당에 황토더미를 잔뜩 쌓아 두고, 부루네 집 식구들과 지인들이 황토를 이겨 벽을 바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년 9월1일부터 작업을 시작했어요. 10월말에 완공 예정이니까 1년하고 두 달간 짓는 거죠.”
이만한 건물을 콘크리트 양옥으로 짓는다면 보통 두 달 반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직접 몸에 흙을 묻혀가며 집을 짓고 있는 이들 가족한테서는 서두르는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몸이 좋아하는 만큼만 일한다
부루네는 7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귀농가족. 이곳에서 태어나 벌써 여섯 살이 된 부루와 세 살 아래 부소, 그리고 아빠 하늘빛(39·본명 전명호), 엄마 맑은땅(32·본명 배유림) 이렇게 네 식구. 이들을 아는 누구나 본디 이름 대신 그렇게 부르는 ‘하늘빛(明昊)’과 ‘맑은땅(由林)’은 한자 이름의 뜻을 한글식으로 풀어쓴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 사는 곳을 ‘부루다원(扶婁茶園)’이라고 이름짓고, 차를 만들며 세상의 쫓기는 삶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다.

▲ 사랑채 안쪽 벽을 황토로 바르고 있는 하늘빛.
ⓒ 김태성 기자


▲ 부루의 동생 부소도 아빠의 집짓기를 돕는 데 나섰다.
ⓒ 김태성 기자

하늘빛한테는 요즘 집 짓는 게 가장 큰 일이다. 그렇다고 직업 목수는 아니다. 하다 보니 알게 되더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지금의 살림집 한 채만 덩그러니 있었는데, 벌써 차실, 창고, 화장실에 이어 이번 사랑채가 그의 네 번째 ‘작품’이다.
“일은 대개 오후에 해요. 오전엔 차도 마시고 책도 보고 운동도 하면서 놀아요. 점심 먹고 좀 쉬면 일하기에 좋은 몸 상태가 되지요. 그 때 일을 나서요. 밤이면 서까래를 어떻게 올릴지, 벽을 어떻게 세울지 궁리해요. 매일 자고 나면 설계도가 달라지는 거죠.”

실제 작업에는 다른 변수도 많단다. 이 사랑채의 기둥 가운데 몇 개는 장흥군 어느 집의 대들보 출신이다. 재료에 따라 작업 방향이나 일정이 달라지는 거다. 무엇보다 몸 상태에 따라 무리하지 않을 만큼만 일한다는 게 원칙이다. 돈벌이 직업으로 한다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집 짓는 일은 성취감을 얻고 적당한 운동도 되지요. 지금 본채도 새로 지을 생각인데, 천천히 짓다보면 앞으로 10년치 일감은 미리 맡아 놓은 셈이죠.”
당장 돈이 굴러오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가 십 년 넘게 자기 집을 짓는 것과, 도시 사람들이 십 수 년간 부지런히 적금 부어 집을 사는 것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이다. 다만 그는 자기가 원하는 모양으로, 작업량을 조절해가며, 운동 삼아 일한 결과물로 집 한 채를 얻게 되는 것이다.

▲ 하늘빛이 이곳에다 첫 작품으로 지은 차실.
ⓒ 김태성 기자

적게 벌고 적게 쓰는 게 여유의 비결

두 아들 부루와 부소도 일을 나선다. 얼굴과 옷이 흙투성인 채로 황토를 보듬어 나른다. 한 번 걸음에 기껏 어른 한 주먹 정도의 양이지만 그들 역시 제 집 짓는 작은 일꾼들. 일하다 싫증나면 작업장은 놀이터로 변한다.     
날마다 잔뜩 흙 묻은 식구들의 옷은 빨래를 담당하는 맑은땅의 일감이다. 부루다원에 있는 두 개의 텃밭도 맑은땅의 일터. 200여 평 집터에서 건물 외에는 모두 텃밭이다. 이 집 친환경적 화장실의 축복을 받은 상추와 고추 완두콩 적치커리 마늘 참나물 등 갖은 채소들이 계절 따라 자라고, 그 사이사이 둥굴레와 더덕 등 약초류도 보인다. 고기반찬을 제외하곤 돈 들 일이 거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적게 쓰니까 적게 벌어도 생활이 가능한 거죠. 이곳 생활은 여유가 있다는 게 가장 좋아요. 시간이나 비용에서 쫓기지 않을 만큼 일과 놀이를 조절하는 게 여유를 유지하는 비결인 셈이죠.”
이들이 이곳에 여유로운 삶의 뿌리를 내리기까지엔 사연이 적지 않다.  
하늘빛은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조선 상고사 공부모임에 참가했다. 큰 아이 ‘부루’나 둘째 ‘부소’의 이름이 모두 2대 단군 형제의 이름과 같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하늘빛은 이후 몸이 좋지 않아 단전호흡법을 익혔다.

맑은땅은 이른바 국내 최고 학부에서 의류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겉’보다 ‘내면’의 성찰을 중시하던 그도 단전호흡에 빠져들었다. 그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두 사람은 이후 미국에서 단전호흡 지도자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됐고, 곧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
고국에 돌아와 조용한 곳에서 운동에 전념하기로 뜻을 모은 두 사람은, 지난 99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에 찾아들었다. “특별히 가진 게 없으니 버리는 데도 미련이 없었던 게지요.”

▲ 살림채와 차실. 창고로 둘러싸인 부루네 마당 텃밭. 봄 여름 가을까지 채소 반찬거리는 물론
이고 꽃도 피고 약초도 나온다.
ⓒ 김태성 기자

쫓기지 않으면서 꾸준히 변화하는 삶

함평에 들어온 뒤 1년을 살아보니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건강하게 생태적 삶을 복원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래 전부터 마셔왔던 차를 생각했다. 차를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옛 문헌을 뒤지며 전통의 제다법을 익혔다.

하늘빛이 아버지에게 조금 꾼 돈으로 집 뒤편 야산에 차밭도 일궜다. 동시에 인근 폐사지 등에 예부터 자라온 야생차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야생차도 땄다. 지금 부루다원에서 만드는 차와 황차는 차밭에서 유기농으로 가꾼 재배차와 야생차를 쓰는데, 특히 맛이 부드럽고 황금빛이 도는 ‘부루황차-야생’은 자연으로 귀의한 삶의 소중한 결실이다. 계절 따라 청국장을 뜨고 야산에서 감을 따다 감식초도 만든다. 스스로 먹기 위한 것이 먼저고, 수익을 위해 조금 더 만드는 정도다.
“많이 만들면 수익은 늘겠지만, 그만큼 몸을 힘들게 하기 때문에 모든 생산량은 ‘적당히’ 조절합니다.”

차맛을 본 사람들의 소문을 통해 판로가 형성되면서, 이들은 홈페이지(buru.co.kr)도 열었다. 차를 나누고 삶의 방식을 교환한다.
“삶이 느리다는 것은, 발전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쫓기지 않으면서 꾸준히 변화하는 것이지요.”
아무것도 없이 함평에 들어와 가족이 둘이 늘었으며, 차밭이 생겼고, 사는 집도 점점 모양새를 갖추어 가는 부루네의 삶. 시간과 돈에 쫓기지 않는 이들의 삶에서 이 시대의 진정한  ‘성공’을 본다.

출처 : 촌라이프
글쓴이 : 촌여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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