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통일

북한의 친일파들

지리산자연인 2006. 1. 30. 18:41
북한 공군, 일본군 출신이 창설 주도

[발굴] 김일성 전집 언급, 조종사 이활 '공화국 영웅'까지


▲ 신의주 항공대에서 김일성(앞줄 가운데)과 기념촬영한 이활(왼쪽)과 왕영(오른쪽)


북한은 해방 이후 1948년 2월 조선인민군 공군(空軍) 창설 당시 일본군 출신 조종사와 일제기관에 복무한 항공기술자들이 주도한 것으로 북한 문헌을 통해 확인됐다.

김일성은 조선인민군 공군의 모체가 된 '평양학원 항공반' 창설 연설(김일성 전집 3권 p.217)에서,

“항공반 학생들 속에서 정치사상 교양을 강화하는 데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한다”면서 “특히 항공기술자들 중에는 과거 일제 군대에 복무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만큼 그들의 머리 속에 일제 사상 잔재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일성은 이어 “일제 사상잔재를 뿌리 빼고 그들을 민주주의 사상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정치사상 교양사업을 힘있게 전개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일성은 해방 직후 북한 항공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조선항공협회를 구성, 명예회장으로 일할 정도로 이 분야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북한은 육군과 해군은 빨치산 출신과 소련파들을 대거 간부로 중용해 배치할 수 있었지만, 공군은 소련군 근무자 일부와 일본군이나 일제기관에 근무한 기술자를 제외하고는 항공부대를 육성할 수 있는 인재를 확보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북한 항공사업의 모체가 된 신의주 항공대장 이활(李活)은 일본군 조종사 출신으로 북한 공군 창설과 6.25 전쟁에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화국 영웅’ 칭호까지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1995년 백과사전출판사가 펴낸 『조선대백과사전』에서 ‘이활은 외국에서 비행학교를 졸업한 이후 그곳의 어느 한 신문사에서 비행사로 일하였다.

해방과 함께 귀국해 항공대와 공군창설에 적극 참가, 1952년 1월 김포비행장에 대한 야간 기습전투를 능숙하게 지휘해 B29를 포함한 적기를 격파했다’고 나온다.

조선대 기광서 교수는 “이활이 일본군에서 활약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면서 “공화국 영웅을 더 높이 평가하기 위해 일본을 '외국'으로 표기하고, 신문사에 복무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활은 이후 조선인민군 공군사령관을 지내고 김일성으로부터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신의주 항공대 부대장 출신으로 항공사령관(중장)을 지낸 왕연(영) 등 소련파들이 대부분 숙청을 당하거나 소련으로 망명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공군부대 창설을 준비하며 일본군 조종사와 항공기술자를 우대하고 이들을 군 요직에 적극 참여시킨 것은 북한군에도 친일파 등용이 확인된 것이다.

(출처 : 데일리엔케이 http://www.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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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통일운동가(?) 내지는 좌파들은 북한에게 정통성을 부여해놓고 김씨왕조의 잘못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관대하며 애써 모른 체 합니다. 그 이유를 물으면 북한 정권은 외세가 개입하지 않은 자주적이며 친일파를 제거한 민족 정권이라서 그렇다라고 둘러대는데 과연 사실일까요?

100% 거짓말입니다. 마적단 김성주는 소비에트 빨치산 장교 출신으로 나중에 김일성의 이름을 도용하여 소련 점령군과 함께 북에 진군하여 친소 외세 정권을 세웁니다. 그리고는 정권 유지에 방해가 되는 독립운동가들을 모조리 숙청하였습니다.

또한 북측이 친일파 청산을 했다는 주장 역시 거짓입니다. 소련 군정 자료에 의하면 북한 당국은 1947년과 1948년 사이에 279명과 182명이 각각 일본인과의 적극적인 협조행위로 적발돼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나와 있긴 하나 처벌 받은 이들은 대개 공산측에 비협조적이고 반공적 태도를 보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김성주는 인텔리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에 일제에 복무한 사실이 있더라도 이해관계가 있거나 정권에 적극 협력할 경우 등용했습니다.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서 '조선전사'에 따르면, '김일성 동지께서는 지난날 공부나 좀 하고 일제기관에 복무하였다고 하여 오랜 인텔리들을 의심하거나 멀리하는 그릇된 경향을 비판 폭로하시면서(중략), 그들을 새 조국 건설의 보람찬 길에 세워주시었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아울러 김성주는 일제시대 공장을 운영했던 일본인까지 특별 예우를 해가면서 중요 직위에 중용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일본인 기술자에게 최고의 대우인 월 4,500∼5,000원을 지급했습니다. 또한 이들에게는 생명과 재산을 어떤 상황에서도 보장한다는 신분증을 발부하고, 생필품과 주택을 포함해 최상의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반면에 미군정은 일본인 기술자들의 실력을 무시하고 본국으로 전원 송환시켜버렸음)


북한 고위간부 주요 친일파 명단

부주석
김영주 헌병대 보조원
김일성(김성주) 주석 친동생

북조선 공군 총사령관
이활
나고야 항공병학교 출신
전투시간 2000 이상의 제국군 에이스

허민군 9사단장
강치우 기술부사단장
김기옥 제1연대장
김한욱 제2연대장 등
북한공군간부 20명은 대부분 일본제국군 출신, 10명 만군(만주군) 출신

장헌근 사법부장 일제 중추원 참의
강양욱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일제하 도의원
이승엽 남로당 2인자 친일단체 대화숙 출신

정군은 문화선정성 부부상 친일 밀정
김정제 보위성 일제 시대 관료
조일명 문화선전성 부상 친일단체 대화숙 출신

초대 인민군 공군사령관 이활을 비롯 허민국, 강치우, 김기옥, 김한욱 등 20여명이 모두 일본군 출신들로 인민군 고위직을 지낸 사람들입니다.


다음은 김성주가 처단한 친일 매국노(?)들입니다.

1) 민족주의자 조만식 선생및 그 추종자들 :
조만식 선생은 우리의 백범 선생만큼 북에서는 명망이 있는 민족지도자로 월남 이상재 선생과 함께 각종 항일 운동을 전개하신 분입니다. 이런 분과 그 추종자들을 옥사시킨 김성주가 가져다 붙인 죄명이 [친일 반민족주의자]

2) 현준혁 :
일제에 나름대로 문학가로서 저항하던 사회주의자, 김성주보다 월등 뛰어난 지식으로 자신을 압도하자 김성주가 붙인 이름이 [친일 분자]

3) 오산학교 출신들 :
오산학교는 3.1 운동때 기독교 대표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하신 학교로 평소 남강 선생은 학생들에게 "공부열심히 해서 일본놈을 앞지르라, 그래서 독립을 쟁취하라"하신 애국자, 그 때문에 수차례 옥고를 치루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이 세우신 민족학교를 탄압하여 나동성 등이 월남하고 대부분이 숨졌습니다. 김성주가 붙인 죄명은 [친일파 학교]

4) 대성학교 출신들 :
평양의 대성학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설립하신 학교입니다. 이 학교 출신들이 김성주보다 명망이 크자 모조리 처형하면서 붙인 이름이 역시 [반민족주의 학교]

5) 숭실학교 출신들 :
오산학교나 대성학교와 같이 이 학교 출신들을 무수히 사형시키고 뒤집어 씌운 죄가 [반민족 친미주의]

6) 박헌영, 이강국, 임화 등 :
잘 알다시피 남로당입니다. 모두 사형시키면서 뒤집어 씌운 죄가 [친일파. 섹터주의자. 회색분자]

7) 허가이 일파 :
모스크바에서 유학을 한 정통이론가입니다.

하여간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 꼴을 못보는 김성주가 사형시키면서 씌운 죄가 가당치 않게스리 [미국 간첩]
모스크바 유학간 자가 미국 간첩이라니 김성주도 참...

8) 윤공흠 일파 :
사건이 크다. "당은 인민을 위해 한 것이 무엇인가?" 하고 과감하게 김성주에게 대던 당시 경공업상(장관)입니다. 사형시키면서 뒤집어 씌운 죄가 [친일파]

9) 김무정 일파 :
중공 8로군 포병 사령관이었던 무정을 죽이면서 뒤집어 씌운 죄가 [미국 간첩, 친일파] 일본과 만주에서 죽어라고 싸운 무정에게 붙인 죄가 친일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