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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쓸쓸한 계절이라고 하지만, 가을처럼 자연의 변화가 몸속으로 파고드는 환절기일수록 자연의 섭리 속에서
생명과 삶의 의미를 찾아보면 건강한 속삭임이 들려온다. 그 일의 출발은 '결실의 들과 산으로 가는 여행'이다. 이 무렵 큰 산 중턱 이하나
오염이 안 된 시골마을 뒷산에 오르면 우리 토종 야생과실들을 반갑게 만날 수 있다. 머루, 다래, 오미자, 정금, 초피, 까치밥, 쥐똥열매,
맹감(청미래덩굴 열매), 아그배, 팥배 등 웬만큼 자연이 살아 있는 야산에는 10~20가지의 과실들이 모여 있다. 이들을 만나는 데는 자연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 어린 눈빛을 가져야 한다는 게 전제조건이다.
진홍색 자디잔, 오미자와 까치밥으로부터 파란 다래, 갈색 아그배, 진보라 정금, 새까만 쥐똥열매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토질과 기후를 받아 자기 나름의 세계를 아름답게 가꿔가고 있다. 더욱이 외래 과일과 화초가 '침범'해 오는 요즘, 누가 알아주거나 돌보지 않는 산속 귀퉁이에서 묵묵히 자기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모습은 예전에 선조들이 칭송해 마지않던 군자의 모습이나 다름없다.
정금에는 비타민류와 칼슘류가 많이 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정금을 따먹으면 피로를 잊게 되더라고 한다. 산골마을 사람들은 봄에 나무하러 가면 진달래꽃을, 가을엔 주렁주렁 열매를 단 정금나무 가지를 꺾어 나뭇짐 지게에 꽂고서 내려오곤 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오빠들의 나뭇짐을 목빠지게 기다리곤 했던 '산마을 아이들'은 이 무렵 그 '정금나무의 추억'을 되살려볼 것이다.
아그배는 도토리보다 좀 더 큰 야생배인데 어린이 주먹 만한 돌배와는 다르다. 배의 원조인 듯한 아그배는 겨울이 되면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새까맣게 변해서 '묵배' 또는 '먹배'라고도 불린다. 산에 다니면서 따먹거나 한약재로 쓰인다. 꼭 쥐똥처럼 생긴 쥐똥열매는 먹지는 못한다. 고속도로가에 울타리용으로 많이 들어선 나무에 까맣게 달린 작은 열매들이 쥐똥이다.
정금 오미자 초피 아그배 등은 함양 산청 남원 등 지리산 자락에 많다. 남원시 이백면 남평리 뒷산에는 정금과 아그배 까치밥 나무가 밀집돼 있다. 따라서 이 지역에는 이 열매들을 따먹고 사는 꿩, 노루 등 야생동물도 많다. 이곳에는 다른 지역에서 안 나는 산초나무도 무성하다. 남원 일대의 섬진강에서 나는 미꾸라지와 이곳 산초열매 가루가 조화를 이뤄 명물 '섬진강 추어탕'을 낳았다. 요즘 민가에서 약재와 탕(차)재료로 많이 쓰이는 오미자는 지리산 자락 산마을 장터인 남원장, 구례장, 함양장, 산청장에 가면 다량으로 구할 수 있다. 벌똥은 보리똥 보리밥 보리수열매 등으로 불리는 과일로 성냥알을 닮은 색깔과 모양에 작은 주근깨반점들이 있다. 쫄깃하고 약간 떫은 맛이 난다. 지리산 일대 정금나무 사이에서 가끔 보인다. 전북 진안 마이산 수마이봉 아래에 있는 은수사라는 절에는 우리 나라 유일의 '청실' 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익으면 겉 색깔이 파랗게 변하는 청실은 태조 이성계가 먹고 버린 씨가 발아해 3대째 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 즙이 천식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정금 외에도 머루, 다래, 으름, 오미자, 팥배, 깨금, 그리고도 이름모를 파랗고 노랗고 불그스레한 과일들이 이 땅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식구들로 얼굴내밀기에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늘 산에 혼자 있어도 외롭거나 적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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