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수액 한잔으로 ‘봄’을 마시자
[문화일보 2006.03.15 14:23:14]
수액(樹液)은 나무의 도관(導管)이나 체관(篩管)을 통해 흐르는
액체를 말한다. 나무에 잎이 돋아나기 전 이른 봄(2월 중순)에
이미 수액은 유동하여 겨우내 잠자고 있던 각 기관에 영양을 공
급하고 세포를 잠에서 깨우는 역할을 한다.
수액은 밤과 낮의 기온차가 큰 이른 봄에 줄기와 가지에 생기는
압력의 차이로 흐르게 되는데, 이때 나무에 구멍을 뚫으면 수액
을 얻을 수 있다. 채취기간은 단풍나무류가 경칩 전후 10일(2.20
~3.10)간, 자작나무류가 곡우 전후 10일(4.10~4.30)간이며 남부
지역이 중부지역보다 수액 채취 기간이 길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채취 시기는 점차 빨라지고 채취 기간은 반
대로 짧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수액을 과다하게 채취하면 생장이 느려지거나 심하면 나무가 죽
기도 한다. 그러나 규정을 지켜서 채취한다면 나무의 생장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국립산림과학원의 연
구에 의해서도 밝혀졌다. 수액을 채취한 집단과 채취하지 않은
집단 간에 잎의 무기염류 함량과 새로 돋아난 잎의 길이에 차이
가없었고 연간 나무의 부피생장량에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과거에는 도끼나 낫으로 껍질에 ‘V’자 홈을 파서 채취했기 때
문에 상처 부위가 썩거나 생장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지금은 드릴
로 구멍을 뚫어서 상처를 최소화하여 채취하기 때문에 아무런 영
향도 미치지 않는다. 또 지름 10㎝ 이하인 나무에서는 채취를 금
하고 있고, 채취가 허가됐더라도 1그루당 구멍을 3개 이상 뚫지
못하게 하여 피해를 줄이고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 일본에서도
이 규칙을 적용하고 있다.
현재 여러 종류의 수액이 생산, 판매되고 있으나 모든 수액을 전
부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액 채취가 가능하거나 채취하여
마실 수 있는 수종은 모두 16종 정도로, 단풍나무과의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우산고로쇠나무 만주고로쇠 좁은단풍 등 5종과 자작
나무과의 자작나무 박달나무 물박달나무 거제수나무 사스래나무
등 5종, 그리고 왕대 솜대 맹종죽 등 대나무 3종과 다래나무 가
래나무 층층나무 등이다.
수액은 나무가 생장하는 데 필요한 다량의 영양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약 97%가 물이지만 당류와 무기성분을 비롯한 지방산, 아
미노산 및 비타민 등도 미량 함유돼 있다. 이들 성분이 인체에
유익한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수액을 변질시켜 장기 보존을 어렵
게 하기도 한다.
울릉도 특산 수종인 우산고로쇠 수액의 경우 포도당·과당에 비
해 단맛이 강한 자당을 비교적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수액
을 마셨을 때 단맛을 더 느끼게 한다. 독특한 인삼향이 나는 것
도 우산고로쇠만의 특징이다. 이온화된 여러 가지 무기성분도 다
량 함유하고 있다. 가장 많이 함유돼 있는 이온은 칼슘과 칼륨이
다. 이들 2종이 전체 무기성분 함량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일반 천연수에 비해 칼슘 함량이 약 30~40배, 칼륨 함량이 10~20
배 높다. 수액은 지구상의 물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이상적인 물
이라고 볼 수 있다.
2002년 기준 국내 수액시장 규모는 65억원(3200㎘) 정도로 수액
채취 가구당 평균소득은 약 400만원(3개월간)이며 해마다 늘어나
는 추세이다. 대개 농한기인 2~3월에 수액을 채취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특별한 소득원이 없는 농산촌민들에게는 매우 짭짤한 수
입원이 된다. 또 농촌인구의 고령화에 따라 노동력을 요하는 일
보다는 수액 채취와 같이 상대적으로 일손이 덜 가는 일을 선호
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남부지역의 밤나무 대체작목으로 고로쇠나무를 대단위 조림
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일 것이다. 따라서 아마도 10수년 후
에는 수액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 그루의
나무가 평생 얼마나 많은 소득을 낼지를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은 경제적 환경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淄?채취는 나무를 베지 않으면서 산림자원을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부가가치가 높은 임업 소득원 가운데 하나임에는 이론
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정광수 / 산림청 산림자원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