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나무

대를 잇기 위한 나무들의 노력

지리산자연인 2006. 7. 5. 23:20
나무는 대를 잇기 위해 주변 자연환경을 철저히 인식하고 이용한다.
섬세한 바람을 이용하는 단풍나무는 멀리 이동하기 위해 씨앗에 날개를 달고 있는 반면,
곤충이나 새를 유혹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러나 밤이나 도토리는 그 열매가 매우 무거워 바람을 이용해서 이동시킨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열매를 이동시켜줄 다람쥐나 새의 취향을 잘 파악해야만 멀리 이동할 수 있다.

당도가 매우 높은 과육이 씨앗을 감싸고 있는 벚나무와 같은 친구는 많은 동물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런 팬들의 열광적인 호응에 힘입어 벚나무는 멀리 이동해 새로운 터전에서 활보할 수 있게 된다.

자작나무나 소나무와 같이 씨앗이 매우 작은 나무들은 뿌리의 발달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편이다.
영양분이 부족한 작은 씨앗들을 가능한 한 빨리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필요한 양분을 섭취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계절의 변화와 기후의 변화는 영양분이 충분하지 못한 나무의 열매들에게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이러한 나무들은 한 번에 수십 수백만 개의 씨앗을 생산하지만,
최종적으로 발아할 수 있는 것은 10개 정도가 고작이다.

그 중에서도 큰 나무로 살아남는 것은 운이 좋으면 한 그루 정도가 될까?
이렇게 살아남은 어린나무는 키 큰 거목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거목의 그늘 아래서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따라서 바람이나 동물들에 의해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상수리나무의 열매를 이동시키는 대표적인 동물은 어치(산까치)들이다.
어치는 도토리가 익어가는 시절이 오면 대단히 분주해진다.
불과 몇 주 동안 수백 개의 도토리를 땅속 자신만이 아는 곳에 숨겨둔다.

어치는 추운 겨울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서는 여름과 가을이 되면
도토리를 모으기에 분주하다.
어치가 도토리를 모을 때는 마치 목에 주머니가 달린 것처럼 불룩하게 보인다.
사실 어치의 목에는 여러 개의 도토리를 잠시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는 다람쥐도 마찬가지다.
한꺼번에 10개 정도의 도토리를 목에 넣고 어치는 조용한 곳으로 이동한다.
그리고서는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나머지는 겨울 비상식량으로 때로는 땅속에,
때로는 나뭇가지 사이나 나무 틈 사이 여기저기에 숨겨둔다.

놀랍게도 어치는 몇 달이 지난 뒤에도 도토리를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찾아내지만
가끔은 어치에게도 건망증은 있다.
땅속 깊숙이 들어간 도토리들 중 일부는 먹이가 되지 않고 살아남아 1천년을 살 수 있는 거대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어치로부터 제공받는다.
그러니까 어치나 다람쥐는 1천년의 건강한 숲을 가꾸는 훌륭한 일꾼이 아닌가.

어치는 까마귀과에 속하는 매우 영특한 동물이다.
사람들이 찾아오거나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일이 발생하면 숲속 친구들에게 위험을 소리로 알려 피신하도록 한다.

나무의 모양이 서로 다르듯이 씨앗의 모양도 천차만별이다.

소나무나 오리나무나 자작나무처럼 씨앗을 많이 생산하는 나무들은
씨앗의 크기가 매우 작고, 멀리 날아가기 위해 씨앗에 날개를 달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경쟁이 적은 좋은 환경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바람을 이용해서 어미 나무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날아간다.

그러나 도토리나 밤이나 호두같이 종자가 크고 무거운 나무들은
일단 그 양이 적을 뿐 아니라 바람을 이용해서 멀리 날아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이들은 멀리 이동하기 위해서는 동물들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또 벚나무나 사과나무나 배나무나 겨우살이처럼 열매를 생산하는 나무들은 또 다른 번식 전략을 가지고 있다.
그들도 동물들을 이용하지만 도토리의 번식방법과 다른 것은
동물들이 씨앗을 완전히 먹게 한 뒤 다른 곳에서 배설하게 하는 방법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동물의 뱃속에서 어느 정도 머물다가 다시 땅에 떨어지면 발아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씨앗을 번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새들이 일등 공신이다.
그러니까 나무는 새들에게 맛있는 과육을 제공하고 새들은 나무가 더 먼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니, 새들과 나무들은 아주 중요한 동업자인 셈이다.

나무들이 풍성한 결실을 맺으면 숲속의 동물들도 그만큼 풍요로워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나무의 번식을 관찰해보면 다음과 같은 재밌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①열매의 크기가 작을수록 나무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②열매의 크기가 작을수록 나무는 어린 시절에 빨리 자란다.
③열매의 크기가 하지만 거대하게 자라는 나무들도 자신의 한계를 안다.
작을수록 나무의 수명이 짧다.
④열매의 크기가 중간 정도인 나무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나무보다 천천히 자라고,
열매가 큰 나무보다는 빨리 자란다.


지나치게 높이 자라 주변의 바람을 견디지 못해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더 이상 자리지 못하게 하는 성장억제 호르몬을 분비해 적당한 크기에서 멈추도록 명령을 내린다.
나무는 계속적으로 성장을 촉구하는 생장촉진 호르몬과 그 성장을 억제하려는 생장억제 호르몬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은사시나무나 갯버들과 같은 나무는
어린 시절 매우 빠른 성장을 보이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성장속도가 느려지고,
또 까치박달나무나 주목은 어린 시절 성장이 매우 느리다가 나이가 들면서
성장속도가 빠른 상향곡선을 나타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 매우 성장이 빠른 나무들은 수명이 짧고,
어린 시절 천천히 자라는 나무는 상대적으로 수명이 길다.

갯버들은 대략 40년을 살면 자신의 자연적 수명이 다하는 경우가 많지만,
주목은 1천 년 이상을 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상수리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참나무류는
500년을 살아도 왕성한 생명력을 나타내는가 하면,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조건이 양호한 경우에는 1천년을 살기도 한다.

사과나무는 약 200년을 사는가 하면,
배나무는 300년 정도,
벚나무는 400년,
가문비나무,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다), 버즘나무(플라타너스) 등은 1천 년을 넘게 사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나무가 얼마나 오랫동안 살고 죽는지에 따라 나무가 꽃을 피우는 시기도 달라진다.
나무의 이력서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장단계를 들 수 있는데, 이는 나무의 일생을 통틀어 가장 긴 시점이다.
성장단계의 나무는 규칙적으로 커가고 나무 무게 또한 증가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러한 성장이 점차 둔화되는 단계로 이어지고,
나무는 균형단계로 접어든다.

이러한 균형단계가 수십 년 동안 이어지면, 나무는 더 이상 높이 성장은 하지 않는다.
아주 조금씩 부피생장만 하게 된다.
그래서 나무의 나이가 많이 먹으면 나무의 키만으로는 나무의 나이를 추정하기 어렵게 된다.

나무가 부피생장만을 보이게 되는 시기에는
죽어가는 나뭇가지와 떨어지는 열매만큼만 부피도 생장을 보인다.
이것은 나무가 잃어버리는 에너지만큼 에너지를 보충하려는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균형은 갈수록 깨어지고,
생산하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시점에 이르게 되면서, 나무는 분해 단계로 접어든다.
태풍이 몰아치거나, 추운 겨울에 내리는 눈의 무게에 의해 부러진 나뭇가지를 보충할 에너지를 더 이상 얻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이런 분해의 조짐은 점차 외부로 드러난다.
이렇게 허약한 모습을 나타내게 되면 어김없이 많은 곤충들이 나무 속을 파고들고,
그 곤충들을 먹이로 삼는 각종 딱따구리들이 날아들고, 마침내 그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또 다른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마련된다.

그들이 한바탕 잔치를 치르고 나면
마침내 최후의 분해학자인 염라대왕격인 버섯이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나무는 급기야 부드럽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토양으로 말끔히 되돌아간다.

거대한 나무들이 수백 수천 년 동안 뿌리를 내린 흙은 그만큼 비옥도가 떨어지고,
나무는 이런 환경에서 충분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서서히 죽음을 준비한다.
거목이 죽고 나면 몇 톤에 달하는 나무가 자연스럽게 땅바닥에 몸을 기대고,
미생물이나 각종 버섯 등이 약속이나 한 듯이 그것을 분해하며,
나무가 지니고 있던 양분들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기다렸던 어린 나무가 그 위에서 새로운 숲의 세상을 연다.

나무는 완전히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아주 천천히 쇠약해지는 과정을 겪는다.
일반적으로는 나이를 많이 먹어 무대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자리 잡은 곳이 나무가 자라기에는 적당한 장소가 아니거나 공기오염이나 토양오염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수분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거나 온도가 지나치게 낮거나
하루 온도의 변화가 지나치게 심할 때, 나무는 빨리 쇠약해진다.

이러한 현상은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매우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노화단계에 접어든 나무의 산소 소비량은 산소 생산량보다 더 많다.
노화되어 가는 나무에는 가장 먼저 미생물과 작은 곤충들이 파고들어 분해과정을 가속화시킨다.

이처럼 나무는 흙에서 왔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을 시작시킨다.

이러한 순환시스템은 나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동식물에게 적용되는 자연의 이치다.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역행할 때 그 역습은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인간보다 수명이 몇 배나 되는 나무들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 죽음은 다시 태어남을 포함하고 있다.
나무란 개체로 보았을 때는 태어나 죽음을 맞이하는 단일한 삶을 경험하지만,
나무가 아닌 숲의 삶을 연속선상에서 보았을 때는 죽음과 탄생이란 의미가 아닌,
영원히 이어지는 하나의 생명으로 보아진다.

숲은 인간의 휴양과 휴식에 매우 중요

숲은 시작과 끝이 없이 늘 순환하는 모습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계절에 따라, 밤과 낮에 따라, 태양의 위치에 따라 숲은 늘 변화한다는 것이다.
숲은 스스로 온화한 공기와 비옥한 흙을 만들어내지만, 늘 외부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외부에서 차갑거나 따뜻한 공기가 숲으로 유입되면, 따뜻한 공기는 시원하게,
차가운 공기는 따뜻하게 바뀐다.

이처럼 숲 생태계는 외부 환경과 적절한 관계를 맺으면서 독립적인 기후와 토양을 만들어간다. 많은 야생동물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기온이다.

따라서 모든 생물은 자신이 살아가는 데 좀더 적합한 기온을 찾아 보금자리를 마련하려는 노력을 한다.
추위를 피해 때로는 고목나무 속으로,
때로는 땅을 파서 집을 짓고 살아가는가 하면,
무더운 여름이면 시원한 나무의 그늘 아래에 몸을 의탁한다.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숲은 인간의 휴양과 휴식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숲이 잘 발달된 산, 또는 숲과 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에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숲이 만들어내는 기후가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한다면,
숲에서 다양한 동식물들을 관찰하면서 얻게 되는 심리적인 안정은 우리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

어치나 다람쥐가 숲을 가꾸어 자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듯이
우리는 그들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할 때인 듯하다.

글= 남효창 숲연구소 소장 www.ecoed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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