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마장터와 곰배령

지리산자연인 2007. 1. 1. 21:08



마장터는 일종의 난전으로 물물 교환을 하던 산중 장터였던 셈. 마장터라는 이름은 바로 이 곳에 말이 쉬어가는 마방과 주막이 있었다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우선 마장터로 가기 위해 미시령 '창바우' 라는 곳에 차를 놔두고, 비밀스럽게 이어진 실낱 같은 계곡의 길로 내려선다. 길은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다가 이내 울창한 숲으로 꼬리를 감춘다. 숲은 원시림처럼 울창하며 차고 맑은 계곡물이 조붓한 길을 따라 이어진다.

귀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발자국 소리와 계곡의 물소리가 전부다. 계곡은 위로 올라가면서 작은 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속이 훤한 소를 이루기도 한다. 작은 샛령이 가까워지면서 내내 계곡을 따라가던 길은 어느덧 그리 심하지 않은 고개를 넘어간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마장터가 지척이다.

한때 마장터에는 30여 가구가 마을을 이루며 살았는데, 처음에는 장사치들이 그리고 난전이 끝나고 나서는 산판을 따라나선 벌목꾼들과 불 밭을 일구어 살던 화전민들, 약초꾼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 그러다 1970년대 화전민을 내치면서 마을은 쑥대밭으로 변했다. 다행히 그 신세를 면한 곳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두 채의 샛집뿐이다.

마장터에 있는 두 채의 샛집에는 백승혁(52) 씨와 정준기(61) 씨가 살고 있다. 정준기 씨는 약초꾼이며 나물꾼이다. 봄에는 나물, 여름에는 약초, 가을에는 버섯을 따서 생계를 꾸려 나간다. 그런 그가 마장터에 들어온 것은 25년 전.



"여가 샛령(소간령)이라 해요. 저 인제에서 사람들이 무곡(옥수수)을 싣고서 넘어 오면, 저기 고성에서는 소금을 당나귀에 싣고 넘어와 여기서 물물 교환을 해요. 여기에 그 전에는 주막도 있었고, 마방도 있었지요. 저기 오다 보면 낙엽송이 있죠. 그 곳이 다 밭이었어요."

그는 요즘에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집을 나선다. 산에 다니는 사람은 부지런한 만큼 그 대가를 받기 때문이다. 현재 정준기 씨가 머물고 있는 샛집은 한 칸짜리 오두막집. 방 한 칸에 출입 통로를 겸한 부엌이 달려 있어 두 칸짜리 집으로 볼 수도 있지만, 방안은 두 사람이 발을 뻗으면 장작 한 개비 들어갈 틈도 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윗집 백승혁 씨 샛집은 세 칸쯤 되어 보인다. 본채 뒤에는 뒷간과 헛간채도 따로 두었는데, 모두 억새 지붕에 통나무를 벽체로 하고 있다.

이래저래 두 사람이 사는 마장터에는 사람보다 샛집이 더 많다. 워낙 깊은 산중에 집이 있다 보니, 마장터에는 아직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방에서는 아직도 등잔불을 켜고, 아궁이에서 꺼낸 불씨를 화덕에 담아, 그 곳에 라면을 끓이고 밥을 한다. 냉장고도 필요 없다. 개울 옆 우물이 시원한 냉장고라 김치며 반찬도 거기에 둔다. 하지만 정씨는 이제껏 불편을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마장터가 설악산 북쪽 샛령 자락에 자리해 있다면 곰배령은 설악산 남쪽 점봉산 자락을 끼고 있다.

귀둔리에서 길을 잡아 곰배령으로 오르는 길은 밀림처럼 숲이 우거진데다 다래 덩굴을 비롯한 덩굴 식물이 얽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 터널을 이루고 있다. 길가에는 연보라 꽃을 피운 벌깨덩굴과 연노랑 산괴불주머니가 씨를 뿌린 듯 연이어 펼쳐진다.

이맘때쯤 곰배령에서 가장 흔하게 만나는 꽃은 노랑색 피나물꽃이다. 계곡을 따라가는 등성이마다 온통 피나물밭이다. 양귀비과에 속하는 피나물은 윤기가 흐르는 네 장의 예쁜 노란색 꽃잎을 달고 있어 어디에서나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꽃이다.

피나물이란 이름은 줄기를 잘랐을 때 피처럼 붉은 노란 유액이 나온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를 노랑매미꽃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매미꽃 또한 줄기를 자르면 붉은 유액이 나오고 꽃잎도 똑같이 생겼지만, 주로 남쪽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나물은 곰배령 밑자락부터 꼭대기까지 폭넓게 분포한다.


물골을 낀 계곡에는 노란꽃의 동의나물과 흰색으로 피는 큰연영초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2000년 산림청이 선정한 '아름다운 숲'이기도 한 이 곳의 신갈나무 숲을 벗어나면 이제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초원의 언덕'이 펼쳐진다. 알려져 있듯 곰배령은 국내에서 생태 보존이 가장 뛰어난 곳이며, 국내 최대 야생화 군락지이자 산나물과 희귀식물의 보고로서 고갯마루의 초원 지대는 수천 평에 이르러 광활한 목장을 연상케 한다.

곰배령 고갯마루에서도 이즈음 가장 흔하게 만나는 꽃은 피나물이다. 피나물만큼이나 많은 것이 얼레지이지만, 이제는 끝물인지라 꽃봉오리가 다 지고 있다. 얼레지는 아침에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해가 나면 여섯 장의 자줏빛 꽃잎을 활짝 펼쳐 매혹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보랏빛 현호색과 노루귀도 군데군데 마지막 자태를 뽐내고 있다.

피나물 군락지 사이로는 이따금 흰색 홀아비바람꽃이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다. 한국 특산 식물인 홀아비바람꽃은 마치 새싹처럼 올라온 긴 꽃대에 다섯 장의 가녀린 꽃잎이 달린 모양이다.

비슷한 꽃으로는 꽃대가 여럿 올라오는 바람꽃, 꽃대가 둘인 쌍둥이바람꽃, 줄기에 가지가 난 가래바람꽃, 만주바람꽃, 변산바람꽃, 회리바람꽃, 나도바람꽃, 꿩의바람꽃 등이 있다. 꽃은 모두 흰색이다. 홀아비바람꽃 옆에는 같은 '홀아비' 이름이 붙은 홀아비꽃대가 이삭처럼 특이하게 생긴 꽃을 내밀고 있다. 촛대처럼 솟은 꽃 이삭은 흰색이며, 뿌리 줄기가 뻗으면서 무리를 이룬다.

은방울꽃도 이제 막 종처럼 생긴 흰 꽃봉오리를 피우고 있다. 앙증맞고 귀엽게 생긴 은방울꽃은 향기도 은은해 향수의 재료로도 쓰이며, 생김새에 걸맞게 꽃말도 '순결'이다. 은방울꽃 옆에는 손톱만한 별꽃이 피어 있고, 노랑제비꽃도 한창이다.

곰배령은 고도가 높고 산이 깊은 데다 때때로 5월까지 눈이 내려 꽃 피는 시기가 다른 지역보다 늦다. 봄부터 차례차례 피기 시작한 야생화는 5월을 지나 6월 말쯤이면 산마루 초원을 온통 꽃 천지로 물들인다. 이런 꽃 사태는 9월까지 계속된다. 사실 곰배령은 국립공원이면서도 식물 자원 보존 지역으로 현재 귀둔리와 강선리 오름목에서 입산을 통제하고 있다.

입산을 하려면 설악산 국립공원 관리 사무소나 인제 국유림 관리 사무소 등에 반드시 신고하고 출입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오래 전 이 곳은 진동리에서 귀둔리로 넘어 가는 고갯마루였지만, 지금은 소중한 생태 보존구역으로 보호하고 있다.

혹 살아 있는 꽃 천지를 보려 거든 망설이지 말고 곰배령으로 가 볼 일이다.

글 사진 _ 이용한(소설가,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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