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 짙게 낀 길
오랜만에 마주한 산에서
이 도시인은 헛구역질 몇번으로
신고식을 대신한다
나 이제 산에 다시 왔구나!
매연에 찌든 회색의 허파는
그제서야 산을 받아들인다
'동이 트는 새벽 꿈에...'
행군가를 부르며 힘겹게
한 발 한 발 오르는 길위에서
삶을 여행하는 고독한 나
그 수많은 '나'의 단단한 발길은
연약한 화강암에 생채기를 내어
피를 흘린다
세속의 고독이 깊을수록
더 많이 부서지고 무너져
마사토로 흘러내린다
2.
고맙구나!
산마루에 오르니
'나는 산이 싫어 산도 나를 싫어해'하던 때가
언제인가 하며 미소지으며 땀을 훔친다
쉬었으니 이제 다시 내려가야지
낮에도 회색안개 짙은 저 아래 세상으로...
어둠이 내리는 저녁 너덜을 지나
계곡을 달려 속세로 접어든다
일주문을 지나 아스팔트길을 내려오는길
계곡엔 가득한 음식점과 모텔들...
갑자기 다시 헛구역질을 한다
가슴에 파고드는 회색바다속 먼지들..
어느샌가 산에 적응된 몸은
도시를 거부하려 한다
3.
너무 덥다
히터 열기로 참을수 없이 더운 버스안..
한 겹 한 겹 벗어도 여전히 덥다
주위엔 여전히 스웨터에 코트로 감싼
도시의 사람들..
나도 저들처럼 다시 도시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난 벌써부터 다시 일탈을 꿈꾼다
눈덮인 산을...
내가 어렵고 힘들때,
주위 친구들이 모두 떠났을 때
더욱 따스하게 받아주던 산을...
벌떡 일어나 버스에서 내려
다시 뒤돌아 뛰어가고 싶다!
4.
떠나고 싶다
이번엔 아주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
만년설이 덮인 히말라야로..
오래전 선조들이 살았다는
야생파가 가득한 파미르로...
심샬 고개를 무거운 삶의 짐
한조각 한조각 떨어내며 오르고
연한 쪽빛 히스파르 빙하 조각 떼어내서
코펠에 국을 끓여먹고
칠천미터 높은 설봉위로
세상에서 제일 밝은 별들이 떠오르면
천막옆 마른 쇠똥은 비 맞으며
새벽까지 힘좋게 타오르겠지..
2002. 3. 15 십이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내: 산안개, 국어사전에는 어둠이 내리는 무렵 푸르스름한 기운
심샬, 히스파르 빙하: 파키스탄에 있는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