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까탈이의 세계여행'을 연재하던 김남희 기자가 2003년 8월에 잠시 여행을 접고 서울에 돌아왔습니다.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3개월 동안 국내 여행을 통해 걷고 싶었던 길 10곳을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손 흔들고 떠나갈 미련은 없다
며칠째 청산에 와 발을 푸니
흐리던 산길이 잘 보인다
상수리 열매를 주우며 인가를 내려다보고
쓰다 둔 편지 구절과 버린 칫솔을 생각한다
남방으로 가다 길을 놓치고
두어번 허우적거리는 여울물
산 아래는 때까치들이 몰려와
모든 야성을 버리고 들 가운데 순결해진다
길을 가다가 자주 뒤를 돌아보게 하는
서른 번 다져두고 서른 번 포기했던 관습들
서쪽 마을을 바라보면 나무들의 잔 숨결처럼
가늘게 흩어지는 저녁 연기가
한 가정의 고민의 양식으로 피어오르고
생목 울타리엔 들거미줄
맨살 비비는 돌들과 함께 누워
실로 이 세상을 앓아보지 않는 것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
이기철 / 청산행
정선 가는 길목에서 그대에게 씁니다. 금요일 오후의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습니다. 빈 고속도로 위로는 비 그친 후 깨끗하게 개인 하늘이 누워 있습니다. 한 번도 메밀꽃이 핀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동생을 위해 우리는 봉평으로 길을 돌아갑니다. 절정을 지나 지고 있는 메밀꽃밭을 둘러본 후 메밀국수와 메밀묵으로 이른 저녁을 먹었습니다.
봉평에서 정선 가는 길은 새로 놓은 길인 듯싶은데 산 사이로 호젓하게 난 길입니다. 그 길을 나와 오대천을 끼고 도는 51번 국도도 어여쁩니다. 동생은 이 길이 좋아 두 번이나 자전거를 타러 왔다고 합니다.
정선으로 가는 길은 태풍이 훑고 지나간 흔적으로 처참합니다. 불보다 무섭다는 물과 바람의 힘을 새삼 느낍니다. 우리가 오늘 머무를 곳은 이제는 여량의 명소가 되어버린 전옥매 할머님의 옥산장입니다.
옥산장으로 가는 여량 시내에서 동생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립니다. 그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헤어클럽 단발령"이라는 미장원 간판이 보입니다. "절묘한 작명이지 않아?" 정말 재기 넘치는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덩달아 웃음을 터트리고 맙니다. '단란주점 사파리' 골목으로 들어서니 바로 옥산장입니다.
흰색 양옥 건물 뒤로 단층기와집이 있고, 정원 옆으로는 굴피집과 기와집이 이어집니다.
이름을 꽤 얻은 곳인데도 주인 할머니는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 주십니다. 차가운 식혜 한 잔을 대접받으며 내일 우리가 걸을 길을 여쭤보고 방으로 올라갑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입구며, 소파가 놓인 마루를 중심으로 배치된 방들이 여관이라기보다는 가정집 같은 느낌을 줍니다.
깨끗하고 넓은 방에 짐을 풀고, '무탄트 메시지'를 읽습니다. 마치 저를 위해 예비된 것 같은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모든 인간은 이 세상을 잠시 방문한 영혼들이지요. 다른 사람과의 모든 만남은 하나의 경험이고, 모든 경험은 영원히 연결됩니다.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나쁜 감정을 품고서 그와의 경험을 마무리짓지 않고 그냥 떠난다면, 훗날 당신 인생에서 그 일이 되풀이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고통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당신이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끊임없이 계속될 겁니다. 삶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잘 관찰하고 거기서 깨달음을 얻어 전보다 현명해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어떤 경험이 끝나면 그것을 축복하듯 고맙다고 말하고 평화롭게 떠나는 게 좋습니다."
당신과의 만남이 끝났다는 것 역시 한 세계가 이제 막을 내렸다는 것이겠지요. 그때 남은 일은 그 만남의 끝을 인정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후 평화롭게 떠나는 일이겠지요. 가슴으로 이 모든 일들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아마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화벨이 울려 수화기를 드니 아드님입니다. 혹시 어머님의 아라리 한 자락을 들을 수 있는지 여쭈었는데, 지금 내려오겠냐는 전갈입니다.
우리는 신이 나서 뛰다시피 계단을 내려갑니다. 어머님은 너와집을 구경시켜주시고, '돌과 이야기'라 이름 붙인 방에서 각각의 돌에 얽힌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주십니다.
사는 일이 팍팍하고 힘겨울 때마다 강변에 나가 줍기 시작했다는 돌이 이제는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찼습니다. 어떤 돌들은 그 이름처럼 대번에 알아볼 수 있는 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돌들은 설명을 듣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그 추상화 같은 돌무늬에 상상력을 발휘해 이름을 붙이는 어머님의 능력에 놀라고 맙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선 아라리.
아우라지 뱃사공아 날 좀 건네주오.
싸릿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강을 사이에 둔 여량리와 유천리에 살면서 사랑을 하게 된 연인들이 있었답니다. 어느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싸릿골로 동백을 따러 가기로 했는데, 그만 비로 인해 물이 불어 배를 띄울 수 없게 되자 서로를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랍니다.
애정편과 수심편, 산수편을 넘나들며 몇 곡의 아라리를 느림박과 빠름박으로 듣고, 가사를 촘촘히 엮어가며 부르는 엮음 아리랑까지 맛을 본 후에 어머님은 당신이 살아오신 이야기들을 풀어놓습니다.
앞 못보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작한 시집살이, 봇짐을 메고 팔도를 떠돌던 시절, 어느날 밤 남편 배에 다리를 올려놓고 자다가 시어머니에게 혼이 난 이야기 - 세상에 앞도 못 보는 양반이 기어와 아들 며느리가 어떤 모양으로 자나 온 몸을 더듬어 봤던 게지요 - 나중에는 중풍까지 든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한 방에서 3년 6개월을 보낸 이야기가 마치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이어집니다.
말씀을 얼마나 재미있고 실감나게 하시는지 시간 가는 줄도 몰라 11시가 넘어서야 방으로 올라옵니다.
동생은 "삶도 예술이고, 이야기 수준도 예술이네"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우리는 노래와 이야기로 이어진 어머님 삶에 대한 단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입니다.
다음날 된장찌개 백반으로 아침을 먹고 옥산장을 나섭니다.
가는 길에 아우라지에 들러 태풍으로 무너져 내린 강변 둑과 주변을 둘러봅니다. 유천리에서 자갯골로 들어가는 다리 역시 끊어져 우리는 유실된 철로변을 따라 계곡을 건넙니다.
그 앞 강물은 불어난 물로 흙탕물이 흐르는데, 자갯골로 들어서자마자 신기하게도 물은 옥빛으로 맑게 흐릅니다.
나무가 많은 숲의 계곡은 웬만한 비에도 흙물이 들지 않는다더니 사실인가 봅니다. 우리도 예고 없이 우리 삶에 들이닥칠 폭풍과 비에 흙물이 들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곳에서 진부면 신기리로 넘어가는 27km 비포장도로가 오늘 우리가 걸을 길입니다. 길은 걷기에 아주 좋은 외줄기, 종일토록 타박타박 걷고 싶도록 만드는 흙길입니다. 오른쪽으로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길을 이끌고, 양 옆으로는 숲과 낮은 산이 우거졌습니다. 길이 너무도 예뻐 도무지 속도를 낼 수가 없습니다.
사진도 찍고, 수수밭도 들여다보고, 계곡물도 떠 마셔보며 천천히 천천히 걷습니다. 정말 걷기에 좋은 예쁜 길이라며 동생도 감탄을 연발합니다.
두 시간 남짓 걸은 후 첫 삼거리에서 동생은 차를 가지고 오기 위해 돌아나가고, 저는 혼자 걷기 시작합니다.
얼마 걷지 않아 냇가 옆에 새로 지은 귀틀집이 보여 어슬렁거리며 구경을 합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지 1년 된 부부가 손수 지은 집입니다. 들어가 차 한잔을 얻어 마시고 나온다는 게 염치없이 라면에 밥까지 한 그릇 말아먹고 나오고 맙니다.
두 분은 동강에서 한강까지 동강댐 반대 래프팅을 하는 과정에서 인연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내려와 폐가에 살림을 차린 후 1년에 걸쳐 손수 집을 짓기까지의 과정이며, 철마다 약초와 버섯과 산나물을 캐며 지내는 이야기를 하던 중 "시골에 내려오면 소비를 줄여서 사는 수밖에 없지요"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서울에서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자연이 주는 것들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겠지요. 그렇게 한 가지를 철저히 버린 후에 얻어지는 마음의 평안과 행복은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것이리라 여겨집니다.
이 집 안방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눈부십니다. 맑은 계곡과 녹음이 우거진 숲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숲이 앞마당이고 정원이라는 주인의 말이 실감납니다.
봄에는 철쭉이 피고,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찾아들고, 겨울이면 흰 눈이 소복이 쌓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는 집주인의 자랑이 이해가 갑니다. 울타리로 경계를 나누는 일도 없이, 철 따라 자연이 주는 것들로 삶을 일구고, 지나는 낯선 이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 이 부부의 삶은 넉넉해 보였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집을 나서니,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고 봉산리까지 태워다주겠다고 하십니다. 대광사를 지나 봉산리 고갯길에서 두 분은 돌아가고, 저는 다시 혼자 걷습니다. 봉산마을은 현재 4가구가 살고 있는데 봄부터 가을까지만 들어와 농사를 짓고 눈이 녹지 않는 겨울에는 바깥으로 나간다고 합니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고개가 시작됩니다. 이제 계곡은 멀어지고 산들은 가까이 다가옵니다. 공기는 맵고 맑아지고, 팔에 소름이 돋을 만큼 추위가 느껴지는 것이 산 속 깊이 들어왔다는 것을 실감케 합니다. 길은 점점 높아지고, 높아지는 만큼 가파르게 굽어집니다. 숨이 차 오르는 대로 헉헉거리며 한 시간 남짓 쉬지 않고 오르니 고갯마루입니다. 저 멀리 올라온 길과 내려가야 할 길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릅니다. 이렇게 숨이 턱밑까지 차 오를 쯤이면 걷는 동안 내내 마음을 어지럽히던 수많은 생각의 갈피들도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머릿속이 말갛게 비워집니다. 아무런 상념도 없이 무심하고 담백한 눈으로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이 순간을 저는 사랑합니다. 이 찰나의 비워짐을 잊지 않는 한, 걷는 행복을 포기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고갯마루를 돌아서니 바로 내리막길입니다. 멀어졌던 계곡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살거립니다. 늦여름 오후의 햇살은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잎 넓은 나무들을 희롱합니다. 혼자 오롯이 걸을 수 있었던 길도 이제는 끝나고, 넓어진 길 끝에 마을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동생을 만나기로 한 신기리까지는 4km. 멀지 않은 곳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어쩌면 짐을 꾸려 낯선 길 위에 오를 수 있는 것도 돌아올 곳이 있고, 기다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부재를 견디고 기다려주는 이들 중에 이제 당신의 얼굴은 없습니다. 얼마나 더 멀리, 혼자 걸어가야 당신의 부재에 익숙해질 수 있을지, 오늘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일상, 평온하기를 기원합니다.
평창군 진부면 박지산에서 발원한 봉산천 물줄기는 두루봉 기슭을 스쳐 정선 땅으로 들어와 정선군 북면 유천리에 이르러 송천으로 흘러듭니다. 상원산 북동쪽 기슭 상자개와 하자개를 잇는 구간을 자개골이라합니다. 서울에서 정선까지 온 후 정선에서 구절리까지 갑니다.
구절리역 못 미쳐 유천 1교를 건너면 자갯골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자갯골에서 봉산리 고개 정상을 지나 평창군 신기리까지는 비포장도로 27km. 숙박은 대광사 못 미처 홍석창, 박영아씨가 운영하는 두루산방 (전화 033-52-0186)에서 가능합니다. (장작 때는 방) 자갯골 입구에서도 몇 가구가 민박집을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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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개골에서 신기리로 가는 27km 길은 숲에 둘러싸인 비포장길로 이어진다. |
ⓒ2003 김남희 |
며칠째 청산에 와 발을 푸니
흐리던 산길이 잘 보인다
상수리 열매를 주우며 인가를 내려다보고
쓰다 둔 편지 구절과 버린 칫솔을 생각한다
남방으로 가다 길을 놓치고
두어번 허우적거리는 여울물
산 아래는 때까치들이 몰려와
모든 야성을 버리고 들 가운데 순결해진다
길을 가다가 자주 뒤를 돌아보게 하는
서른 번 다져두고 서른 번 포기했던 관습들
서쪽 마을을 바라보면 나무들의 잔 숨결처럼
가늘게 흩어지는 저녁 연기가
한 가정의 고민의 양식으로 피어오르고
생목 울타리엔 들거미줄
맨살 비비는 돌들과 함께 누워
실로 이 세상을 앓아보지 않는 것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
이기철 / 청산행
정선 가는 길목에서 그대에게 씁니다. 금요일 오후의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습니다. 빈 고속도로 위로는 비 그친 후 깨끗하게 개인 하늘이 누워 있습니다. 한 번도 메밀꽃이 핀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동생을 위해 우리는 봉평으로 길을 돌아갑니다. 절정을 지나 지고 있는 메밀꽃밭을 둘러본 후 메밀국수와 메밀묵으로 이른 저녁을 먹었습니다.
봉평에서 정선 가는 길은 새로 놓은 길인 듯싶은데 산 사이로 호젓하게 난 길입니다. 그 길을 나와 오대천을 끼고 도는 51번 국도도 어여쁩니다. 동생은 이 길이 좋아 두 번이나 자전거를 타러 왔다고 합니다.
정선으로 가는 길은 태풍이 훑고 지나간 흔적으로 처참합니다. 불보다 무섭다는 물과 바람의 힘을 새삼 느낍니다. 우리가 오늘 머무를 곳은 이제는 여량의 명소가 되어버린 전옥매 할머님의 옥산장입니다.
옥산장으로 가는 여량 시내에서 동생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립니다. 그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헤어클럽 단발령"이라는 미장원 간판이 보입니다. "절묘한 작명이지 않아?" 정말 재기 넘치는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덩달아 웃음을 터트리고 맙니다. '단란주점 사파리' 골목으로 들어서니 바로 옥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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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개골 길옆으로는 이처럼 작은 물줄기들이 곳곳에서 흘러내린다(왼쪽). 1년간 폐가에 머물며 손수 지은 귀틀집 '두루산방'의 문고리는 나무 줄기를 그대로 살려 만들어 다 제각각이다. |
ⓒ2003 김남희 |
이름을 꽤 얻은 곳인데도 주인 할머니는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 주십니다. 차가운 식혜 한 잔을 대접받으며 내일 우리가 걸을 길을 여쭤보고 방으로 올라갑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입구며, 소파가 놓인 마루를 중심으로 배치된 방들이 여관이라기보다는 가정집 같은 느낌을 줍니다.
깨끗하고 넓은 방에 짐을 풀고, '무탄트 메시지'를 읽습니다. 마치 저를 위해 예비된 것 같은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모든 인간은 이 세상을 잠시 방문한 영혼들이지요. 다른 사람과의 모든 만남은 하나의 경험이고, 모든 경험은 영원히 연결됩니다.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나쁜 감정을 품고서 그와의 경험을 마무리짓지 않고 그냥 떠난다면, 훗날 당신 인생에서 그 일이 되풀이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고통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당신이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끊임없이 계속될 겁니다. 삶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잘 관찰하고 거기서 깨달음을 얻어 전보다 현명해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어떤 경험이 끝나면 그것을 축복하듯 고맙다고 말하고 평화롭게 떠나는 게 좋습니다."
당신과의 만남이 끝났다는 것 역시 한 세계가 이제 막을 내렸다는 것이겠지요. 그때 남은 일은 그 만남의 끝을 인정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후 평화롭게 떠나는 일이겠지요. 가슴으로 이 모든 일들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아마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화벨이 울려 수화기를 드니 아드님입니다. 혹시 어머님의 아라리 한 자락을 들을 수 있는지 여쭈었는데, 지금 내려오겠냐는 전갈입니다.
우리는 신이 나서 뛰다시피 계단을 내려갑니다. 어머님은 너와집을 구경시켜주시고, '돌과 이야기'라 이름 붙인 방에서 각각의 돌에 얽힌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주십니다.
사는 일이 팍팍하고 힘겨울 때마다 강변에 나가 줍기 시작했다는 돌이 이제는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찼습니다. 어떤 돌들은 그 이름처럼 대번에 알아볼 수 있는 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돌들은 설명을 듣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그 추상화 같은 돌무늬에 상상력을 발휘해 이름을 붙이는 어머님의 능력에 놀라고 맙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선 아라리.
아우라지 뱃사공아 날 좀 건네주오.
싸릿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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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추밭 사이에 둘러싸인 신기리의 외딴 집. |
ⓒ2003 김남희 |
애정편과 수심편, 산수편을 넘나들며 몇 곡의 아라리를 느림박과 빠름박으로 듣고, 가사를 촘촘히 엮어가며 부르는 엮음 아리랑까지 맛을 본 후에 어머님은 당신이 살아오신 이야기들을 풀어놓습니다.
앞 못보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작한 시집살이, 봇짐을 메고 팔도를 떠돌던 시절, 어느날 밤 남편 배에 다리를 올려놓고 자다가 시어머니에게 혼이 난 이야기 - 세상에 앞도 못 보는 양반이 기어와 아들 며느리가 어떤 모양으로 자나 온 몸을 더듬어 봤던 게지요 - 나중에는 중풍까지 든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한 방에서 3년 6개월을 보낸 이야기가 마치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이어집니다.
말씀을 얼마나 재미있고 실감나게 하시는지 시간 가는 줄도 몰라 11시가 넘어서야 방으로 올라옵니다.
동생은 "삶도 예술이고, 이야기 수준도 예술이네"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우리는 노래와 이야기로 이어진 어머님 삶에 대한 단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입니다.
다음날 된장찌개 백반으로 아침을 먹고 옥산장을 나섭니다.
가는 길에 아우라지에 들러 태풍으로 무너져 내린 강변 둑과 주변을 둘러봅니다. 유천리에서 자갯골로 들어가는 다리 역시 끊어져 우리는 유실된 철로변을 따라 계곡을 건넙니다.
그 앞 강물은 불어난 물로 흙탕물이 흐르는데, 자갯골로 들어서자마자 신기하게도 물은 옥빛으로 맑게 흐릅니다.
나무가 많은 숲의 계곡은 웬만한 비에도 흙물이 들지 않는다더니 사실인가 봅니다. 우리도 예고 없이 우리 삶에 들이닥칠 폭풍과 비에 흙물이 들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곳에서 진부면 신기리로 넘어가는 27km 비포장도로가 오늘 우리가 걸을 길입니다. 길은 걷기에 아주 좋은 외줄기, 종일토록 타박타박 걷고 싶도록 만드는 흙길입니다. 오른쪽으로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길을 이끌고, 양 옆으로는 숲과 낮은 산이 우거졌습니다. 길이 너무도 예뻐 도무지 속도를 낼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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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밭 |
ⓒ2003 김남희 |
두 시간 남짓 걸은 후 첫 삼거리에서 동생은 차를 가지고 오기 위해 돌아나가고, 저는 혼자 걷기 시작합니다.
얼마 걷지 않아 냇가 옆에 새로 지은 귀틀집이 보여 어슬렁거리며 구경을 합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지 1년 된 부부가 손수 지은 집입니다. 들어가 차 한잔을 얻어 마시고 나온다는 게 염치없이 라면에 밥까지 한 그릇 말아먹고 나오고 맙니다.
두 분은 동강에서 한강까지 동강댐 반대 래프팅을 하는 과정에서 인연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내려와 폐가에 살림을 차린 후 1년에 걸쳐 손수 집을 짓기까지의 과정이며, 철마다 약초와 버섯과 산나물을 캐며 지내는 이야기를 하던 중 "시골에 내려오면 소비를 줄여서 사는 수밖에 없지요"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서울에서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자연이 주는 것들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겠지요. 그렇게 한 가지를 철저히 버린 후에 얻어지는 마음의 평안과 행복은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것이리라 여겨집니다.
이 집 안방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눈부십니다. 맑은 계곡과 녹음이 우거진 숲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숲이 앞마당이고 정원이라는 주인의 말이 실감납니다.
봄에는 철쭉이 피고,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찾아들고, 겨울이면 흰 눈이 소복이 쌓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는 집주인의 자랑이 이해가 갑니다. 울타리로 경계를 나누는 일도 없이, 철 따라 자연이 주는 것들로 삶을 일구고, 지나는 낯선 이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 이 부부의 삶은 넉넉해 보였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집을 나서니,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고 봉산리까지 태워다주겠다고 하십니다. 대광사를 지나 봉산리 고갯길에서 두 분은 돌아가고, 저는 다시 혼자 걷습니다. 봉산마을은 현재 4가구가 살고 있는데 봄부터 가을까지만 들어와 농사를 짓고 눈이 녹지 않는 겨울에는 바깥으로 나간다고 합니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고개가 시작됩니다. 이제 계곡은 멀어지고 산들은 가까이 다가옵니다. 공기는 맵고 맑아지고, 팔에 소름이 돋을 만큼 추위가 느껴지는 것이 산 속 깊이 들어왔다는 것을 실감케 합니다. 길은 점점 높아지고, 높아지는 만큼 가파르게 굽어집니다. 숨이 차 오르는 대로 헉헉거리며 한 시간 남짓 쉬지 않고 오르니 고갯마루입니다. 저 멀리 올라온 길과 내려가야 할 길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릅니다. 이렇게 숨이 턱밑까지 차 오를 쯤이면 걷는 동안 내내 마음을 어지럽히던 수많은 생각의 갈피들도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머릿속이 말갛게 비워집니다. 아무런 상념도 없이 무심하고 담백한 눈으로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이 순간을 저는 사랑합니다. 이 찰나의 비워짐을 잊지 않는 한, 걷는 행복을 포기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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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리로 넘어오면 길은 점점 넓어져 마침내 포장도로가 나타난다(왼쪽). 옥빛 맑은 물이 흐르는 자개골. |
ⓒ2003 김남희 |
이곳에서 동생을 만나기로 한 신기리까지는 4km. 멀지 않은 곳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어쩌면 짐을 꾸려 낯선 길 위에 오를 수 있는 것도 돌아올 곳이 있고, 기다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부재를 견디고 기다려주는 이들 중에 이제 당신의 얼굴은 없습니다. 얼마나 더 멀리, 혼자 걸어가야 당신의 부재에 익숙해질 수 있을지, 오늘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일상, 평온하기를 기원합니다.
평창군 진부면 박지산에서 발원한 봉산천 물줄기는 두루봉 기슭을 스쳐 정선 땅으로 들어와 정선군 북면 유천리에 이르러 송천으로 흘러듭니다. 상원산 북동쪽 기슭 상자개와 하자개를 잇는 구간을 자개골이라합니다. 서울에서 정선까지 온 후 정선에서 구절리까지 갑니다.
구절리역 못 미쳐 유천 1교를 건너면 자갯골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자갯골에서 봉산리 고개 정상을 지나 평창군 신기리까지는 비포장도로 27km. 숙박은 대광사 못 미처 홍석창, 박영아씨가 운영하는 두루산방 (전화 033-52-0186)에서 가능합니다. (장작 때는 방) 자갯골 입구에서도 몇 가구가 민박집을 운영합니다.
출처 : 집사모생태건축사무소
글쓴이 : 용이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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