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유치마을

지리산자연인 2006. 1. 21. 23:43



억지 희망이라도 붙들고 다시 '시작'으로

장흥 유치 수몰마을의 겨울

지난 여름 어느 날 비가 왔습니다. 이렇게 몰아치는 비는 수년만에 처음이라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대리 마을에 아직도 옮겨가지 못한 사슴농장들이 있습니다. 거칠게 쏟아지는 비를 보고 사슴농장에 물이 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어제까지 수자원공사 직원들과 지원사업소 직원들이 농장에 들어있는 사슴을 옮겨달라고 농장 주인들에게 이야기했지만 오늘 아침까지도 사슴농장의 주인들은 사슴을 옮기지 않았습니다. 농장으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고귀한 생명을 가지고 수자원공사와 샅바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사슴농장의 주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사슴농장 주인의 아내가 전화를 받아 남편에게 전화를 건넸지만 주인은 끝내 말없이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전화마저도 받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물이 차 오른 사슴농장의 사슴들이 궁금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따라 뱅뱅 돌아 농장에 도착했습니다. 한 군데 사슴농장의 사슴들은 가슴까지 물이 차 올랐지만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 있었습니다. 또 한 군데 사슴농장은 물이 완전히 차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슴을 키웠던 하우스 밖에 사슴 두 마리가 어떻게 나왔는지 먹이를 찾고 있었고 다른 사슴 두 마리는 배가 퉁퉁 부어 올라 죽어 있었습니다. 사슴 농장에서 조금 떨어진 오복분교로 갔습니다. 오복분교 마당에 또 꽃사슴 한 마리가 배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어 올라 죽어 있었습니다.

탐진댐으로 수몰되는 유치마을의 풍경은 늘 이렇게 비참하고 처절한 ‘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길고 긴 여름이 가고 겨울입니다. 수몰지역의 마지막 겨울입니다. 유치의 옛마을 입장에서 보면 겨울도 끝입니다. 수장된 마을에는 계절의 변화도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이제는 사슴농장도 그 사슴농장을 지켰던 마을 주민도 없습니다. 모두 제 갈 길을 따라 강제로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보상에 불만이 많았던 주민들과 수공의 싸움은 끝날 것 같지 않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모두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살았던 집과 마을과 논과 밭, 골목 따위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천년이 넘는 시간이 일군 농촌공동체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자취를 감춘 것입니다. 마치 시간의 끝, 정지된 시간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지 가끔씩 남아있는 골목길의 흔적만 이 곳이 마을임을 알게 합니다. 댐은 결국 사람들이 필요하여 만든다지만 또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아픔을 주고 있습니다. 마을을 사라지게 하고 집안을 붕괴시키며 가족까지도 서로가 돈으로 적이 되는 원수지간을 만듭니다.

이곳 유치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혹독한 6·25 전쟁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 험한 전쟁보다 더한 것이 댐이라고 말합니다. 댐 건설이 유치사람들에게 많은 보탬이 되었다고 외지인들은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유치 사람들은 댐 때문에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치를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드나들고 있는 제가 생각해도 댐은 유치사람들에게 6·25보다도 잔혹한 전쟁인가 봅니다. 사람들이 변했습니다. 이유는 돈 때문입니다. 어느 날 자신들이 지키고 살았던 모든 것들이 돈으로 환산되면서 본래의 순수했던 마음들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순수의 시대도 끝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소재지가 들어선 수몰민들의 집단 이주단지인 조양마을, 그리고 일부 비수몰지에는 아직도 유치가 있습니다. 1700여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유치 파출소가 새로운 건물을 짓고 새롭게 단장하여 파출소 개소식을 가졌습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많은 지역의 인사들이 참석을 하여 유치의 미래를 보다 잘사는 유치로 만들자고 합니다. 오직 유치가 살 길은 관광이라고 말합니다. 관광객을 유치하여 ‘유치’하게 살자는 것 같아 마음이 영 불편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유치는 지금 지푸라기 같은 억지 희망이더라도 붙잡아야 할 처지입니다. 끝을 시작으로 만드는 댐보다 더 큰 ‘공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마동욱<마을사진가>

마동욱님은 10여 년째 장흥 탐진댐 관련 영상 기록작업을 하고 있는 사진가로, 고향인 장흥에서 분식집을 하면서 그곳 마을과 사람들을 필름 속에 담는 일을 하고 있다. 인터넷사이트 ‘유치마을(www.uchimaul.com)’에 가면 마동욱님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기사출력  2002-12-04 16: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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