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십이월(디셈버) 밀리터리 매니아로서 한국군이 저지른 일에 대해선 인정하기가 어렵지만.. 이건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고.. 또 우리는 비슷한 처지의 베트남을 도와야 했는데 현실적으로 미국을 도왔다는 생각에 이 글을 올린다
‘언니들’, 평화 쫓아 베트남에 가다 | ||||||||||||
우리가 몰랐던 ‘베트남 여성’ <1> 남부 여성박물관을 가다 여행 전 떠올렸던 베트남 여성의 모습이란, ‘베트남 여성과 결혼하세요’라는 현수막에서 떠오르는 스테레오타입의 아오자이를 입은 순종적인 여성? 혹은 막 자본주의 물살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아시아 한 후진국, 한류 스타에 열광하는 젊은 여성들?
호치민시에 위치한 여성박물관에 당도해서 베트남 여성에 대한 선입견은 하나 둘씩 깨지기 시작한다. 하긴, 우린 베트남 여성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선입견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그야말로 선입견에 불과했을 터. 베트남 호치민시에 위치한 3층 건물로 된 여성박물관(정식명칭 남부 여성박물관)은 1천년 중국 지배, 1백년 프랑스 식민지, 20여년 항미전쟁(베트남인들인 베트남전을 항미투쟁이라 부른다)을 거치는 베트남의 역사 내내 베트남 여성들의 삶은 투쟁의 삶, 그 자체였음을 보여준다. 전장과 뗄 수 없는 여성의 삶, 그리고 결국 승리한 전쟁에서 영웅이 된 여성들에 대한 기록에 한국에서 온 여성들은 다소 낯설었고 어리둥절했음을 먼저 고백한다.
여성박물관 전시장 가운데선 무엇보다 ‘총을 든 어머니’ 동상이 인상적이었다. 베트남전 당시 6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게릴라전에 참전했던 이 여성은, 아이를 많이 낳아 유격대에 보내는 것이 여성들의 의무라고 말하며 전쟁에 임했다고 한다. 총을 들고 싸우는 일은 전쟁 당시 베트남에서 남녀를 가릴 것이 없었다. 프랑스 식민시대 항불 투쟁에도 여성들은 선두에 섰다. 이때 최초의 ‘여성전사단’이 탄생하고 이는 ‘긴머리부대’로도 이어진다. 항미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여성포병대’가 공식 출범하고 여성들은 총을 들고 탱크를 운전하며 전장에 참여한다.
우리가 베트콩이라 부르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부총사령관(응옌 티빈)도 여성이었는데, 여성 전사들과 함께한 사진에서 온화한 미소를 띠던 응옌 티빈이 미국과의 평화협정에선 당당하고 단호하고 얼굴로 사인하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베트남전 당시 ‘전략촌’(미군이 주민들을 베트콩과 분리하기 위해 마을단위로 한꺼번에 이주시켜 철망을 치고 주민들을 관리하던 대 인민 전략) 반대 투쟁에서 “1cm도 내 땅에서 안나가겠다”고 외치며 울타리를 붙들고 싸웠던 이들은 여성, 특히 나이든 여성들이었다. 전장에 나간 남성들을 대신해 농사를 짓던 여성들에게 땅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싸움보다 더 큰 투쟁이 있었을까. 베트남 역사 속 여성에 대한 기록은 세계 어느 나라를 압도할 만 하다. 중국 1천년의 지배의 역사 가운데 베트남의 최초 독립을 가져온 것도 여성 왕조인 ‘쯩 자매’(기원후 42년)였다. 당시 독립 투쟁에 함께했던 75명 여성장군들의 이름도 베트남 역사는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와 비슷한 봉건사회 유교의 영향아래 있던 역사 속에서 베트남 여성은 당연히 차별받는 존재였다. 과거시험을 볼 수 없던 때 남장을 하고 과거를 보러간 여성들이 있었으니, 후에 이들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능력을 높이 평가받아 이후 예조학사의 자리까지 오른다. 만약 한국의 역사였다면 어떠했을까.
출산휴가, 출산수당을 쟁취하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에도 베트남은 훨씬 앞서 있다. 프랑스 식민지 하였던 1930년대, 고무공장 여성노동자들을 포착한 그림에는 출산휴가, 출산수당을 요구하며 어린아이를 안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젖먹이 투쟁을 벌이던 여성들의 모습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고작 16살에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으로 향하던 길에 하얀 꽃 한 송이를 귀 뒤에 꽂고 사뿐히 걸음을 옮기던 보 티 싸우의 천진한 얼굴(역설적이게도 그의 마지막 모습은 프랑스인에 의해 씌여졌지만), 법정에서 20년 형을 선고받고 나서 “20년 뒤에도 당신들이 여기 있을지 두고 보겠다”며 당당한 미소를 지어 ‘베트남의 미소’로 불리는 보 티 탕의 모습은 투사의 얼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앳되고 아름다웠다. “베트남의 혼은 어머니의 ‘자장가’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베트남 여성의 역사를 파노라마로 그린 벽화의 시작점도 바로 해먹에 뉘인 아이를 재우는 어머니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한다. “한국군에 의한 학살지역인 꽝하이성 한 마을에 갔을 때였다. 늙은 할머니가 자장가를 부르는 것을 듣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가야 이 말을 기억하거라. 한국군이 이 곳에 와서 웅덩이를 파서 사람들을 죽였단다’라는 내용의 노래를 아기에게 불러주고 있었다.” 현지 통역을 맡은 구수정씨(베트남 호치민대 베트남 현대사 박사과정)가 들려 준 이야기는 한편으론 섬뜩했지만, 베트남, 기억의 역사가 여성의 음성을 통해 전해 내려오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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