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스크랩] 백두대간 위에서 1

지리산자연인 2006. 4. 21. 23:34
 

처음으로 여행을 떠난건 2001년 10월이었다

 

당시 나는 좀 악에 받혀있었다
하는 일들은 잘 안되고...
제일 친한 녀석이라고 믿었던 녀석은
(이 녀석은 내가 6살 연하를 소개시켜줘 결혼까지 했다)
내가 제일 힘들때 제일 먼저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나머지 친구들도 떨어져나가고...

 

처음 생각은 그냥 사람들이 없는 밤길을 혼자 걷고 싶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게 진짜로 될줄은... -_-
그동안 좀 집에서 쉬다가 여행이나 떠나자해서 무조건 동쪽으로
설악산쪽으로 갔다
춘천들러서 배로 양구로 가서 설악산 오색에 들러 아침에 산을 올랐다가
그동안 운동 하나도 안한게 다 드러나서 봉정암에서 수렴동대피소가는 길을
밤중에 혼자 겨우겨우 기어서(좀 뻥 섞어서) 내려갔다

 

밤에 보니 슬쩍 옆으로 사람이 앉아있는거 같은데 다시보면 나무밑둥이고...
저기에 평상이 있는것처럼 보이면 그냥 바위에 이끼낀거고...
걷다가 옆에서 소곤소곤대는거 같아서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그래도 저멀리 산에서 길잃은 자를 위해서인지 하늘에 장대세워서 전구 밝혀놓은것처럼
보이는것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전구는 아니고 별빛이었다
그 어두운 밤에 별빛이 얼마나 밝던지...

다리는 다 풀리고 그런데도 발을 내밀면 신기하게도 앞으로 나간다

 

한참 혼자 내려가다가 밤중에 '야~~호~~'하니
저쪽에서 또 '야~~ 호~~'한다
노년의 남녀와 대학생팀이 온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처지..
내가 후레쉬를 들고 있었으니 그들에겐 후레쉬가 하나 더 늘고 동행이 생기니 반긴다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8시넘어서 수렴동대피소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잔다
한사람 자리가 너무 좁은데 내옆의 어떤 사람은 버젓이 두사람 자리를 차지해서는
남들도 제대로 못자게 만든다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산에 왔으면 산에 동화되어야지... 꼭 속세의 버릇을 못 버리고...

 

그게 첫 설악산과의 대면이었다
고등학교때의 수학여행은 산행도 아니었다

거기서 그렇게 고생해서 이젠 산을 정복해보겠다는 욕심이 났다
그래서 등산에 관한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다 지리산 종주기를 읽게 되고
나도 지리산 종주를 계획했다

 

그해 12월에 산불방지기간이 끝나자마자 지리산으로 갔다
화엄사에서 올라 노고단산장에 도착해 하룻밤자고 동쪽으로 향한다
그러다 내 시계로 한시쯤 대충 짐 풀러서 밥먹고 오는데 반대쪽에서 오던 사람이
자기는 한시쯤 연하천산장에서 떠났다고 한다
내 시계가 한시인데 한시간 거리쯤에 있는 연하천에서 한시에 떠났다고 하니
이상해서 시계를 확인하니 내 시계가 얼어서 한시간정도 늦게 가고 있었다 -_-
그렇게 연하천 지나 벽소령에서 하룻밤...

 

다음날 아침 출발해서 장터목 산장으로 가는 어느 봉우리 꼭대기 옆에 큰 적송하나가
우람하게 서있었다
눈은 날려서 쌓이고... 마치 모래사구처럼 골지고 날리고 있는 그 꼭대기에서
그 소나무의 모습이 그렇게 멋있으면서도 너무 외로워보였다
그 느낌이란...
마치 너는 나처럼 홀로 고고하게 살수 있는가?
그렇게 묻고 있는듯했다
나도 학교다니며 선비정신을 배운 사람이고 세한도를 본 사람으로
그런 선비들을 동경했던게 사실이었는데...

과연 나는 그럴수 있을까?

그 고통을 다 견딜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인상이 아직도 깊이 남아있다

 

벽소령에 도착하니 세시가 넘었는데 그냥 천왕봉을 넘어 중산리쪽으로 가기로 했다
눈이 많이 쌓여 길도 제대로 안보이는데 천왕봉을 오르고 다시 내려간다
이미 날은 벌써 저물었고...
조금 헤매다가 로타리산장에서 하룻밤을 잤다
내게 첫 백두대간의 경험이었다

 

 

그 다음해 3월말에 막내 동생이 결혼을 했다
난 그냥 서울로 온다고 하고는 그 다음날로 짐을 싸서 그 전해에  봐둔 인제군 진동리로 향했다
그냥 산속에 쳐박혀 사람들 안보고 혼자 살려고...
보급문제? 그건 어떻게 되겠지...
지도상으로만 보기에도 꽤 조용히 들어가 사람들 구경안하고 살기엔 좋아보였다

첫날은 현리에서 버스타고 방태산자연휴양림을 찾아갔더니 아직 개장을 안했단다
그래서 그 아래에 텐트치고 잤다


그 다음날 내가 전날 저녁에 떠먹은 물을 보니...
위로 공사중이어서 좀 흙탕물이다... -_-
거기서 진동리쪽으로 무조건 걸어갔다
도중에 계곡물이 내려오고 길에서 안보이는 곳이 있길래 여기에 쳐박혀도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텐트치고 자고...
그다음날 보니 밖에서 누가 올라가고... 좀있다 다른 사람들이 올라간다
텐트에서 나와 올라가보니...
산길인데 처음엔 길이 안보이더니 올라가니 전봇대도 있고 위로 몇집이 있었다
오지구나...
집들은 예전 흙집에 폐교에서 떼어온것 같은 문짝이나 창문같은걸로 밖을 막았다
그럼 어제 마신 그 물 품질이??--;;

 

그래서 거기도 포기하고 다시 진동계곡을 올랐다
지금은 개발이 많이되어 황토벽돌집에 펜션들이 많지만 그때만해도 그렇게 개발이 많이 안되어있었다
가다가보니 등산잡지에서 본 세쌍둥이 집이 보이는데 그 집 들어가는 입구에
아빠, 엄마, 세쌍둥이를 굵은 철사로 인형을 만들어놓은게 참 좋아보였다
마치 동화속 마을같은 분위기였다
그때는 삼거리에 지금은 없어진 하늘찻집이 있었다
역시 폐교에서 떼어낸 문짝같은걸로 지붕이 낮은 찻집을 지었는데
나름대로 운치있고 좋아보였다
나도 이렇게 살았으면...
라면을 사먹을까하니 아직 장사를 안한다고...
물좀 달라고 하니 저 개울물 그냥 떠서 먹으면 된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깨끗해보이고 찻집남자도 바께스로 그물 퍼가길래
나도 한잔 마시고 1.5리터 페트병 두개에 담아서 올라가는데...
위에서 퇴비를 정리하면서 같이 섞여있는 돌들을 개울에 던져넣고 있었다... 푸헐...

 

 

 


단목령... 사진속의 사람은 저 아닙니다


 

그 위로 30분쯤 올라가니 전에 지도에서 보았던 개울두개가 모이는 지점이 보인다
그곳이 단목령 근처다
거기는 우리나라에서 몇손가락에 꼽히는 숲이 우거지고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점봉산 능선인데 주위 능선들이 다들 완만해서 거의 평지같이 되어있고
산죽이 많았고 얼레지나 다른 꽃들이 많았다
그리고 나무마다에는 겨우살이들이 그렇게 많았고...
아마 우리나라에서 겨우살이가 제일 많은 곳인가 한다
아직 3월말이라 곳곳에 눈과 얼음이 있고
멧돼지가 뿌리 파먹으려고 땅을 마구 파헤친 흔적에다가
내 주위로 노루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얘들이 좀 멍청한거는 내가 여기 서있으면 저쪽으로 도망가야하는데
굳이 내쪽으로 뛰어와서 내 옆쪽으로 두마리가 도망가는거다
거기 단목령은 세상일이 싫을때 들어가 쳐박히기 좋은 곳이다
나중에 마장터에도 쳐박혔지만 두번째로 쳐박힐만한 좋은곳 찾는다면 단목령을 권하고 싶다
물 구하기 쉽고...
보투할려면 오색쪽으로 내려가면 가게가 있다
그 위에 텐트를 치고 이주정도 그곳에서 살았다

 

그런데...
인간들이 싫다고 떠났는데 막상 혼자 지내니 인간들이 그리워졌다
가져간 라디오를 틀으니..
자동으로 채널스캔하는 방식이라 바로 고장이 나버렸다
그래서 휴대폰 통화를 해보려고 서쪽 백두산 방향이라고 되어있는 쪽으로 40분 이상을 가니
겨우 문자메세지만 받을수 있다
그 다음날은 반대쪽 동쪽 지리산 방향이라는 쪽으로 40분정도를 가니...
북암령 근처인데 통화가 안된다

 

그렇게 며칠있다가 보투(보급투쟁)라도 가겠다고 단목령에서 오색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니 마침 가게가 있어서 거기서 갈근(칡뿌리 말린거)하고 쉰김치 두덩이하고 과자를 조금 샀다
거기서 술마시던 한 분이 내가 고추장이 필요하다고 하니 나보고 저산넘어에 머무느냐며
거기에 술친구가 있다며 나에게 고추장을 주시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개울건너 자기집에서 집에서 만든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있는 고추장을 공짜로 주면서
배낭까지 빌려주신다

백두대간을 다니며 이렇게 덕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늘 고맙게 생각한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줘야지...

 

숲속에 혼자 있으니 정말 많이 외로웠다
외로울땐 한번 진동리쪽에 내려와 사람사는 집을 멀리 보기도 하고...
어쩌다 찾아오는 나물뜯는 사람들도 만나고...
일요일 아침에 혼자 텐트속에 있으면 지나가던 등산팀이 내 텐트보고는
'와 부럽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고도 했다
내 처지 되봐라 그런소리 나오나...-_-

 

그러다 일주일만에 다시 오색에 내려와 양양까지 버스타고 가서 또 보투를 했다
이번엔 참치에 소세지에... 반찬에... 많이 가져왔다
그게 산에 들어간지 일주일만에 전기구경한 때였다
모처럼 피시방에도 들르고... 인터넷 카페에 글도 남기고...
그래도 가까운 친구들이 떠났지만 인터넷친구들은 나를 잊지않고 있어서 눈물나게 고마웠다

 

그곳 생활은 단조롭고 외로웠다
백두대간 위가 항상 그렇듯이 바람이 항상 끊이지 않고 불었다
점봉산을 넘어서 나무들 하나하나를 산죽들을 흔들면서 저멀리서 오는게 들리고...
그렇게 와서는 끝내 내 텐트를 흔들고는 저기 북암령으로 갔다가는 다시 돌아왔다
저 바람은 왜 나를 가만두지 않고 불까?
그게 백두대간을 떠돌며 항상 생각한  좀 멍청한 주제였다
결국 그 바람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이주정도 되었을때 진짜로 휴대폰 통화하겠다고 북암령쪽으로 한시간 이상을 가니 휴대폰이 터졌다
그래서 제수씨에게 전화를 하니 집에서 많이 걱정하더라는 이야기...
그리고 전해에 같이 7급시험에 합격해서 산업자원부에 발령받았던 사람에게 전화를 하니
자기는 태백 광산보안사무소인가에서 탱자탱자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강원도가 고향이라 그쪽에 발령신청을 했는데 그게 태백이었다
나? 난 기술고시 보다가 일차시험은 영어때문에 쉽게 붙는데 꼭 이차에서 한과목씩을 망쳐서
7급 붙었는데 별로 뜻도 없고 심경이 복잡해서 임용유예를 시켜놓고 있었다

다시 집에 전화를 하니... 집에 오란다
내가 사놓은 집 세입자가 일년만에 다른 세입자 구해놓고 계약서 쓰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이게 내 백두대간 방랑기 첫번째다
서울올라오긴 했는데... 집에서 동생하고 어머니께서 세입자와 계약서를 써버려서 난 집에 갈 필요가 없었다
괜히 올라왔네... -_-

 


아래는 내가 단목령에 있을때 느낌을 그때 그냥 적은 시다
이것도 시랍시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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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령

두물머리 내 작은 터에

다시 저 저주스런 바람이 불어온다

천미터 높은 산을 넘은 저 바람은

저 멀리서 부터 느릿느릿 황소걸음을 하며

박달고개 참나무 높은 가지

긴 겨울 초록빛 따스했던

겨우살이를 채어 내던지고

드넓은 산죽밭 이리저리 뒤집어

숨어있던 얼레지 여섯꽃잎을 괴롭히며

공포로 걸어온다


결국 내 천막앞까지 도달해서는

'여기까지 도망왔느냐?'

'여기오면 내가 못 찾을줄 알았느냐?'

그러며 북암령위로 넘어가서는

또 금새 뭔 할말을 못했는지

다시 저 산을 돌아 이리로 향하는 발걸음을 한다

그렇게 그 폭군은 오후내내 내게로 오고도

밤을 새워 소리치고 홍수처럼 휩쓸려왔다


눈이 채 다 녹지 않은 사월의 고개

노루마저도 암수 정답게 뛰는 이곳에서

난 기대어 마음놓고 울 그 무엇도 없어

홀로 내안의 바람과 어울려 놀고 있었다


여기도 이제는 너무 오래 머물렀나 보다

내일이면 떠나야지

낮에 잘 다듬어 놓은 박달나무 지팡이

하나 짚고 떠나야한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나?

길은 십자로

서쪽으로 높은 산 너머 백두산으로 갈까나

동해 푸른 바다 보면서 지리산으로 갈까나

아니면 깊은 오색의 계곡길 내려 속세로 갈까나

단목령 위에서 나는 그렇게 서있었다

 


 

2002.4.10 십이월

 


 

출처 : 촌라이프
글쓴이 : 십이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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