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을 신청합니다2
시가 쓰고 싶어서
삼양동 철거 촌에서 꼬박 삼 년을 살았습니다.
정말 좋은 시를 쓰고 싶었지만 언제나 가난했고
제대로 쓰여 진 시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연탄불 꺼져 냉골이 된 방바닥에 엎드려
밤마다 사랑 시를 썼습니다
퉁퉁 불어버린 라면을 먹으며 쓴 시를
아침이면 버려야 했습니다
어두워지면,
언 강아지 똥 떼굴떼굴 구르는 가파른 골목길을
꼬불꼬불 힘겹게 올라온 산동네 사람들이
저마다 글썽이는 밤하늘별로 돋고
빨래줄에서 바람 춤을 추는 얼은 내복이,
목이 쉰 개 짖는 소리가,
꽁꽁 얼어붙은 수도꼭지가,
벽에 그려있는 아이들의 분필 낙서가,
떠나간 이웃들의 불길한 풍문들이,
한데 버려진 낡은 세간들이,
춥기 만한 서울 변두리의 삶이,
점점 아득해지는 꿈들이,
자꾸 내게 시를 쓰게 했습니다.
그 겨울 나는
벼락 같고 혁명적인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시는 하나도 없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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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 시 클럽에 갑자기 나타나신 분의 시인데... 내공이 상당하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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