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랍시고

심천님의 밤이 밤에게

지리산자연인 2006. 2. 19. 20:04

천리안 클럽 이메에서 퍼왔습니다

 

밤이 밤에게




                  
1
천문대에 들어서자 한 사내가 급히 밖으로 뛰어나가면서 외치고 있었다.
[“당신도 언제인가는 사라질 날이 올 것이고, 당신이 사라진 기억도 사라질 것이요.”]
바로 그때, <잡아요! 저 강도를 잡아요!>라는 테마를 바탕으로
먹구름이 물밀듯이 밀려 와 방금까지 보였던 별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


2
사방이 촉촉이 젖어가고
잊을 수 없는 눈초리 하나가
다가왔다가 별빛 속으로 날아갔다.
밤이 밤에게 안녕을 묻는 밤에는
그리움은 노래 속에 그리움을 묻는다.
외로움은 슬픔 속에 외로움을 묻는다.


3
외로움만큼 성숙해지는 골짜기
그 위에 별이 산다.


4
하얀 빛 가루가 가슴에 남아 속삭이고 있었다.
저를 담아보세요.
(나의 긴 여행에 당신이 동반할 수 있는 느낌이 들 때까지요)
아니면...아니면..그것도 아니면 말에요....
(마음속으로 가만히 꿈속으로 배웅해 주어도 좋고요)
가슴을 쫘-악 벌리고 별을 살폈다. 별 하나가 희미한 빛이 작게 반짝이다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반짝이고 있었다. 별을 쳐다보면 볼 수록이
은회색으로 길게 뻗은 꼬리가 보일 듯 말듯해 저절로 굉장하다는
감탄이 나왔지만, 눈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한순간의 어떤 감탄과 놀람의 기억으로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5
갑자기, 육안으로 본 별과, 마음으로 본 별의 차이를, 누구하고 나누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고 있었다. 문득, 별이 보고 싶어 퇴근하자 말자 곧 바로
김해에 있는 천문대로 왔기에 아무 준비가 없었다.
2월 2일 내일 모레가 立春이라고 하지만 바람은 매서웠다.
서둘러 차로 돌아와 시동을 걸었다. 금새 따뜻한 바람이 솔솔 기어오르고
있는가했는데, 눈이 감겨오고 있었다.
희미한 그림자 별님이
내 곁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고 있었다.
[너무 추워요. 그런 밖에서 밤을 샐 수도 없고요. 제가 말 동무해줄 테니...
저 여기 타면 안 될까요?]
나는 가만히 손을 내밀어 내 손만큼이나 차가워진 별님의 손을 살며시 잡고
자동차 문을 열었다. 차안에 이불을 깔아놓은 듯이 푹신푹신했고,
머리 쪽으로 베개 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처럼 가슴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불을 켤까요?]
[아니요. 켜지 마세요.]
불안과 초조 속에 아무 말 없이 흐르는 시간을 태우고 싶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여태 것 엉덩이를 주저앉히지 못하고 있던 별님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담배를 빨 때마다 희미하게 보였던 별님의 얼굴이
붉은빛으로 보였다가 다시
흐릿하게 지워졌다가, 다시 환해지고 있었다.
[저 모르겠어요?]
별님이 나직한 목소리로 다문 입을 열고 있었다.
[당신이 오시는 것을 보고 따라온 저를 모른 체 하시다니 섭섭하군요.]
[누구신지요?] 
[당신이 아까부터 보고 싶다고 한 별 에요]
[아니, 그럼 말 에요...별을 보고 싶은 턱없는 기대를 접고 내려온
내가 불쌍해 따라온 혜성이란 말인가요?]
별님은 아무 대답도하지 않았다.
난 서 있는 사람 옆에 눕고 싶지 않은데 어쩌지요 그 말에 가만히
자리에 앉는 별님의 손을 잡았다. 내 손이 따뜻했을까?
별님은 손을 빼지 않고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인가 봐요.]
[그러게요....]
대답해 놓고 아무 말 없이 또 그렇게 한참동안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전에도 절 찾아왔다 그냥 가신 적 있었지요?]
네 어떻게 그걸 아시 나요 묻고 싶었지만, 그 말은 차마 묻지 못하고
덮고 있는 이불을 별님의 발에다 덮어 주자, 별님은 가만히 무너지듯
자리에 앉자 말자 이불 속으로 발을 넣고, 그렇게 한참 있다가
긴 한숨 끝에 몸을 눕혔다. 내 숨소리가 거칠어지듯
별님의 숨소리도 거칠어지고, 내 숨소리가 가깝게 들리듯 별님의 숨소리도
내게 가깝게 들렸다.
조금 전에 별님이 서 있던 시간만큼 우리는 길게 숨만 쉬고 있었다.
[무얼 생각하세요?]
긴 한숨 끝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중년의 사춘기를 생각하고 있었나 봐요.”


6
중년을 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중년을 안다는 말은
무책임한 말이다.
나뭇잎 하나 피었다 지는 까닭을
산에게 들어보지 않고는


더구나
울지 않으면서 울고 있는
말하지 않으면 말하고 있는
시를 안다는 말은
무서운 것이다
라고 뇌까리고 있었다.
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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