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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어디나 뻗어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산 가까이에 이르자 길은 본연의 속내를 드러내며 쉽게 달려온
이들의 발걸음을 무색하게 한다. 몇 번 도로인지, 어느 건물인지 이정표로 삼을 만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 산길, 작은 갈림길에서도 좁은 다리
앞에서도 자꾸만 머뭇거리게 된다. 바로 그 산으로 가는 길, 강원도 인제군 곰배령으로 가는 길과 단목령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작은 삼거리에
도시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간 이상곤 씨(48세)의 소박한 보금자리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보금자리 앞에는 작년부터 문을 연 컨테이너 점포가
있다.
“나이 스물에 제빵기술을 배워 수원에서 제과점을 했었는데 너무 지친거야.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한 열흘 쉬었다 온다고 텐트
빌려서 도봉산에 들어갔는데, 신선놀음 같더군요. 그때가 87년, 그냥 몇 달을 눌러앉았어요. 죽을 거 같았는데 산에 들어가니까 정말 살 것 같은
거예요. 갑갑함도 없고 각박한 것도 없고. 중간에 사회에 나와서 6개월 정도 살았는데 도로 산엘 들어갔어요. 도저히
못살겠더라구요.” 7남매 중 막내로 경주가 고향인 그는 나이 스물에 성공적으로 서울 입성을 했다. 그러나 너무 이른 인생의 도전이 가져다
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일상에 지쳐갔고, 심신의 휴식을 위해 들어갔던 산에서 그만 그의 운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산에 들어갈 때
주머니에는 몇 만 원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산에서도 먹고 사는 방법이 있더라구요. 깊은 산 속 암자들까지 지게를 지고 올라가는 거였죠. 음식,
연료, 기와 한조각도 모두 지게로 날라야 하는데 제일 먼 데는 연탄 한 장에 2천 원, 가까운 데는 5백 원 받았어요. 도시에서는 매일 벌어
매일 먹기도 바쁜데 산에서는 하루 벌어서 열흘을 먹으니 뭐하러 내려가요?”
짐을 나르며 텐트생활을 하다 겨울에는 암자에서 처사생활도
하면서 지낸 세월이 어언 8년. 그러다가 95년 8월에 이곳 점봉산으로 옮겼다. 등산을 다니다 알게 된 이곳이 너무 아름다워 눈도장 찍어놓고
1년에 대여섯 번씩 오던 걸음 끝에 아예 터를 옮긴 것. “도봉산은 사람도 많아서 아예 일로 왔어요. 여기는 지게질 일도 없지만 산에
살다보니까 돈 없이도 살 자신감이 생기더라구. 집도 움막이면 되고 것도 안 되면 갈대 베어서 지붕 만들면 될 것 같았지요.” 처음엔
버려지다시피 한 마을에 유일한 집, 지붕에 구멍 뚫린 함석집에서 별보며 살았다. 2년 후 30분은 걸어야 이웃을 만날 수 있던 그곳에서 더
산으로 올라가 집을 지었다. 생전 처음 지어보는 집. 슬레이트 지붕 얹고 흙벽을 바르고 문을 달았다. 땔감으로 난방을 하던 인적 없는 산에서
살기 위해 그가 한 유일한 문명생활은 전화를 놓은 것이었다. 쓸 일이 없으니 한 달에 요금은 불과 1만 원. 그런데 그걸 못 내 툭하면 끊겼다.
도봉산과 달리 수입은 없었지만, 대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었고, 산행으로 왔다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그를 외롭지 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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