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설피민국 이상곤씨

지리산자연인 2006. 1. 2. 00:17

 

 

 
 

길은 어디나 뻗어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산 가까이에 이르자 길은 본연의 속내를 드러내며 쉽게 달려온 이들의 발걸음을 무색하게 한다. 몇 번 도로인지, 어느 건물인지 이정표로 삼을 만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 산길, 작은 갈림길에서도 좁은 다리 앞에서도 자꾸만 머뭇거리게 된다. 바로 그 산으로 가는 길, 강원도 인제군 곰배령으로 가는 길과 단목령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작은 삼거리에 도시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간 이상곤 씨(48세)의 소박한 보금자리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보금자리 앞에는 작년부터 문을 연 컨테이너 점포가 있다.

“나이 스물에 제빵기술을 배워 수원에서 제과점을 했었는데 너무 지친거야.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한 열흘 쉬었다 온다고 텐트 빌려서 도봉산에 들어갔는데, 신선놀음 같더군요. 그때가 87년, 그냥 몇 달을 눌러앉았어요. 죽을 거 같았는데 산에 들어가니까 정말 살 것 같은 거예요. 갑갑함도 없고 각박한 것도 없고. 중간에 사회에 나와서 6개월 정도 살았는데 도로 산엘 들어갔어요. 도저히 못살겠더라구요.”
7남매 중 막내로 경주가 고향인 그는 나이 스물에 성공적으로 서울 입성을 했다. 그러나 너무 이른 인생의 도전이 가져다 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일상에 지쳐갔고, 심신의 휴식을 위해 들어갔던 산에서 그만 그의 운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산에 들어갈 때 주머니에는 몇 만 원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산에서도 먹고 사는 방법이 있더라구요. 깊은 산 속 암자들까지 지게를 지고 올라가는 거였죠. 음식, 연료, 기와 한조각도 모두 지게로 날라야 하는데 제일 먼 데는 연탄 한 장에 2천 원, 가까운 데는 5백 원 받았어요. 도시에서는 매일 벌어 매일 먹기도 바쁜데 산에서는 하루 벌어서 열흘을 먹으니 뭐하러 내려가요?”

짐을 나르며 텐트생활을 하다 겨울에는 암자에서 처사생활도 하면서 지낸 세월이 어언 8년. 그러다가 95년 8월에 이곳 점봉산으로 옮겼다. 등산을 다니다 알게 된 이곳이 너무 아름다워 눈도장 찍어놓고 1년에 대여섯 번씩 오던 걸음 끝에 아예 터를 옮긴 것.
“도봉산은 사람도 많아서 아예 일로 왔어요. 여기는 지게질 일도 없지만 산에 살다보니까 돈 없이도 살 자신감이 생기더라구. 집도 움막이면 되고 것도 안 되면 갈대 베어서 지붕 만들면 될 것 같았지요.”
처음엔 버려지다시피 한 마을에 유일한 집, 지붕에 구멍 뚫린 함석집에서 별보며 살았다. 2년 후 30분은 걸어야 이웃을 만날 수 있던 그곳에서 더 산으로 올라가 집을 지었다. 생전 처음 지어보는 집. 슬레이트 지붕 얹고 흙벽을 바르고 문을 달았다. 땔감으로 난방을 하던 인적 없는 산에서 살기 위해 그가 한 유일한 문명생활은 전화를 놓은 것이었다. 쓸 일이 없으니 한 달에 요금은 불과 1만 원. 그런데 그걸 못 내 툭하면 끊겼다. 도봉산과 달리 수입은 없었지만, 대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었고, 산행으로 왔다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그를 외롭지 않게 했다.


 

 

 


그런 그가 작년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산행하는 사람들이 잠시 목을 축이도록 커피며 라면 등을 파는 쉼터. 그나마도 일요일이나 문을 열었는데 작년 가을, 집을 비워달라는 땅주인의 요구에 이곳 삼거리로 터전을 옮기면서 매일 열어놓기 시작했다. 이렇게 산생활을 통해 새로운 벌이를 하게 된 것은 가게만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시작한 한봉과 스님에게서 배운 효소, 산에서 직접 채취한 2백여 가지의 약초들을 발효시킨 식초도 그의 산생활을 바쁘게 만들고 있다. 며칠에 한 번은 벌통 밑바닥 청소도 해줘야 하고, 봄가을로는 약초들을 채엽하러 산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만든 식초는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가장 좋은 접대차이기도 하다. 우편물을 배달하러 온 김남현 집배원(50세) 역시 식초 한 사발을 시원한 음료수 마시듯 마신다.
“이 오지 마을에서도 저이는 아주 유명해요. 설피민국, 이러면 우편물이 여기까지 배달되잖아요.(웃음) 혼자 살아서 적적할 것 같은데도 자기가 좋으니까 보기 좋아요.”
이상곤 씨는 자칭 타칭 ‘설피민국 추장’이다. 한 겨울 눈길을 걷기 위한 이 지역 필수품인 설피에서 따온 이름이고, 비록 국토는 그가 머물고 있는 공간 외에 인터넷 카페 사이버 공화국이지만, 엄연히 한 나라의 수장이다. 몇 십여 명의 국민들까지 있는 온·오프라인 공인 국가로 산에서 만난 벗들이 그를 추장으로 옹립한 것.

“처음 올 때 가져 온 것은 불과 책 몇 권, 옷 몇 벌, 등산장비, 코펠 몇 개였는데 지금은 재벌이야 재벌. 그래도 한 나라의 추장인데 재산이 적은 거죠? 세금도 안 걷고 뇌물도 안받기 때문이죠. 국민들을 잘살게 하는 책임? 정신적으로 어려운 건 내가 도와주지만 물질적으로는 자립 갱생해야지.”
호탕한 웃음과 함께 내뱉지만, 흘려듣기만 할 수 없는 농담 속에 거칠 것 없는 그의 산 생활이 녹아있는 듯 하다. 결혼도 할 뻔 했지만, 아직도 혼자인 그. 그러나 결코 외롭지 않다는 그를 누구보다도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고 있는 것은 바로 산이었다.
“사람 팔자가 있어요. 속세에서 산 것이 나는 팔자를 어긋나게 산 거죠. 내 길이 산 속에 사는 길이구나 느꼈을 때는 그렇게 살아야 행복한 거예요. 무엇보다도 산에서는 게을러 터져도 되는 게 젤루 좋지요. 게으름이란 욕심을 안내도 된다는 거지. 얼마나 마음이 편해요?”
어언 산 생활 20년. 도시는 떠났지만 사람을 위해 살고 싶다는 설피민국 추장 이상곤 씨. 앞으로 장학사업을 하고 싶다는 그의 가슴은 어느덧 모든 것을 품어주는 넉넉한 산을 닮아 있는 듯 하다. 아직도 길 위에 서서 산으로 향하는 산사나이의 삶이 단풍빛 가을처럼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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