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눈이 많이 왔어요

지리산자연인 2006. 1. 2. 21:22

내가 설악산 근처 산속에서 지낼때의 눈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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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눈 내리기 시작해서 3일 계속 내렸다 흐...
아침에 일좀 하려고 하니 눈와서 아래까지 내려가 책하고
소주들고 왔다 나눔지(www.jaonanum.net)가 무사히 도착

다음날...
계속 온다 저러다 얼마나 더 올지...
아침에 문을 여니 문이 잘 안 열린다
그 만큼 많이 내렸다
어제 저녁 삽하고 장화가져다 놓기 다행이다
아직 어두운데 화장실 다녀오는데...
장화속으로도 무지하게 눈이 들어온다
길을 만들면서 헤치고 나갔다
다녀오는데 옆집 부억에서 불이 보이길래 누구냐고 물으니 대답을 안한다
으...
저 아가씨 아예 나하고 얘기 안하기로 했나?
내가 나무해주고 도끼질까지 다해줬는데....
그거 고맙다는 소리는 안해도 인사라도 할것이지..
왜 아는체도 안하냐고 따지다 역시 묵묵부답
나중에 가보니 묵언수행중이라고 써놨다
말걸지 말란다
으..
백도사님이 명상배우고 했으니 오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 많더니
저런다
산 할아버지는 그 아가씨 인사도 안하더라고 나한테 얘기한다

발밑에도 눈이 쌓여있으니 일미터 이상이다. 지팡이는 지게 작대기로 쓰이는 물푸레나무


세째날..
미치...
드디어 지붕처마위까지 눈이 쌓였다
일미터 이십센티 이상이다

아침에 밖이 조금씩 밝아온다 싶어서 완전히 밝을때까지 기다리는데 한참

지났다 싶었는데도 밖이 안 밝아지는 거다 그래서 창을 열어보니

눈이 너무와서 처마까지 쌓여서 햇빛이 안들어온거다

 


내 배꼽 위선이고 어디는 가슴팍까지 경사진곳은 아예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간다
아침에 창문밖으로 겨우 기어나가 삽으로 굴을 파니
에머랄드빛이 눈속으로 파고든다
머 에스키모집이 따로 있나 그냥 굴파고 지내면 되지... ^^
어릴때 만화속에서 눈이 많이 오니 굴을파고 옆집까지 가고 그러는 장면이 나오는데...
좀만 더오면 그래도 되겠다
너무 많이 왔따
맙소사...
전에는 눈많이 와도 이월에 그렇게 오곤 했다는데...
벌써부터 이런다
내 김장김치는 저 높이 쌓인 눈속에 파묻혀 있다
나중에 삽들고 가서 발굴작업끝에 겨우 꺼내 옮겨놨다
샘터까지의 길을 뚫다
미군용 고어텍스 재킷에 오버트라우저 그리고 장화 그위에 스페츠(눈 들어가지 말라고 끼는 각반) 그리고 장갑등으로 무장하고 눈위를 헤엄치듯이 팔을 휘휘 저으며
몸으로 뚫고 나가며 두어번 오가니 길이 생긴다

산할아버지네 집앞 화장실 앞에서.. 산할아버지께서 직접 사진찍으셨다


몇번 헬기소리가 들린다
고립된 마을이 많다더니 보급물자 날라주러 가나?
여기요 여기!!
여기 보급물자가 부족해요
소주 한병만 던져주고 가시면 안되남요??
아무래도 여기 산속에 소주도둑이 있나보다
1.7리터 한병이 삼일을 못간다
설마 그 도둑이 내 뱃속에 있을라나?
내 원래 주량이 병소주 한병이 안되는데....
설마 내가 다 마셨을라고..

그 아가씨 하루종일 안보인다
살았나 죽었나?
거 추운데 자꾸 나와서 쳐다보게 만드네... 흐...
살아있으면 인기척이라도 낼것이지...

당분간 아무도 안 오겠군...
그리고 다섯째날..
그렇게 눈이 많이 쌓였는데 산할아버지는 하산하시겠다고 하신다
10-15분 걸리던 작은 새이령을 설피를 신고도 다 가지 못하시고
중간까지만 가시다 오셨단다
여섯째날은 드뎌 작은 새이령까지 진출
도중에 노루 세마리 발견
'좀만 젊었으면 쫓아가서 잡는건데...'
눈이 많이 쌓이면 짐승들이 쫓아가도 잘 도망 못간덴다
그래서 쫓아가서 잡곤 했다는데...
왜 나한테는 한마리도 안 보이고 발자욱만 보이는지...

여섯째 금요일날 아침에 산할아버지께 작별인사하려고 했더니
벌써 일찍 하산하셨다
와~ 그 길을 내려가시다니...
저녁때 뜻밖에 백도사님 출현.. 윽
40분거리를 산할아버지께서 만드신 길로 설피신고 두시간 반이 걸려서
왔덴다 대단하다...
물론 소주 한병(여기서 한병은 1.7리터짜리로 하나)
그 아가씨 부억에도 들락거리고 주변에 다녔어도 백도사님도 그 아가씨
얼굴 못봤다 ㅋㅋ

12월 20일 그 아가씨 내려간덴다
나도 마침 소주가 고푸던 참이다
13일날 백도사가 들고온거 14일날 부터 마셔서 16일날 거덜났다
나 원래 술 잘 못마시는데...
소주먹고 촛불켜고 자다가 촛대에 불붙어서 불날삔했다 휴...
그런게 벌써 몇번 된다
여기서 촛대란 내가 통나무 잘라서 방안에 가져다 논거...
촛대가 커서 불 안났다

그런데 그 아가씨 그냥 장화신고 내려갈 생각인듯
내가 스페츠 빌려줬다
이 아가씨 대체 정신이 없는 아가씨네.. 죽을려고..
겨울에 산에 암것도 모르고 들어왔다간 클난다
보급이 끊기면 굶어죽고
내려가다 그날안에 도착 못하면 죽고...
내가 앞장서서 걸어가고 그 아가씨는 내 발자욱 따라찍고...
설피는 내가 할아버지거 보고 칡넝쿨로 만들었는데 못쓰겠어서 나두고 왔다
아래에는 할아버지가 내려가시면서 맡기고 간 설피가 있을거다
그 아가씨 내려가는데 네시간 생각했단다
맙소사... 겁없는 아가씨네.. 힘도 없더구먼..

보급끝내고 다시 아지트로..
그 뒤로 또 얼마씩 눈이 오다
22일 드뎌 건축시작...
삽으로 눈을 파서 한곳에 크게 쌓고 있는데 그 눈을 뚫고 두사람이
왔다
전에 소주하고 고기들고 종종 놀러와 며칠 산할아버지 오두막에서 자고 가고 했단다
그러는 사람들이 많다
산에서 살면 산을 닮아가나보다
대간령 고개위에서 늦가을 황사바람에 잔뜩 움츠리고 앉아있던 할아버지는
지리산 종주길에서 본 그 외롭고 쓸쓸하지만 꿋꿋하게 서있던 그 붉은
소나무를 닮았고
기쁘나 슬프나 찾아가면 언제나 맞아주는 할아버지는 산을 닮았다!

23일 드뎌 이 산속에 내 집 한칸 마련! 아자!
드뎌 내집마련에 성공하다! 꿈은 이루어진다
거의 한평 가까이 되고 세명까지도 누워자도 되겠다

12월말 또 대설...
미시령이 76센티이니 여기는 90센티는 될거다 으...
보급을 더해야하는데...
20일 이후 산속에 나홀로 있다
난 왜 여기 있나
난 왜 속세가 싫고 사람이 싫어서 여기에 와있나
이거 대인공포증 없애버리든지 해야지 원..
그래도 여기 엄청 죽인다 ㅎㅎ
이렇게 내 세상 여행 구름처럼 떠돌다 갔으면...

일월 일일 며칠후 눈온다는 소식에 겁부터 먹고 또 보급하러 내려오다
내려와서 나눔대장님께 전화 잘 계신가 보다
보급물자는 커피 두통에 소주 두통(물론 큰거로... ㅋㅋ)
삼일만에 하나 거덜 사일째는 거의 병소주 세병분량 하루에 마시고
오일째 금주 육일째 마저 없애다
윽... 삼일에 소주 한병이네...
처음에 이산에 왔을때 산할아버지 소주 페트병으로 드시는거 보고
무지 놀랬는데 내가 그런다

누르빠와 함께.. 옆은 내가 지은 이글루(눈집)... 등산온 사람이 찍어줬다. 누르빠는 내가 마지막 봤을때 배에 무슨 혹시 생겨있었는데 ... 죽었는지 살았는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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