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설악산을 종주하다

지리산자연인 2006. 1. 2. 22:02
오래전부터 설악산 단풍구경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계획을 잘 세워서 시월 중순에 다녀오게 되었다
목표는 공룡릉 절경구경하고 설악산에만 숨어있는 큰 달(이 산에 있는 달은 실제로 크다)
구경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첫날밤을 여관에서 잘까하다가 텐트도 있겠다 한계령 정자에서
자기로 했다. 여관비 25000원 벌었다 ^^
그래서 한계령 휴게소에서 밥을 먹었다
저녁늦게 한계령 입산통제소에 도착해서 보니 사람이 지키고 있다
계획이 틀려진다
바람이 많이 불고 생각보다 춥다
국립공원에선 몇년전부터 야영과 취사가 금지되어있다
그래도 통제소에서 고작 3,40미터나 떨어져있을까한 곳에서 텐트치고 잤다
그 사람이 나와서 나보고 내려가라고 하면 내려가야 하는판인데
다음날까지 절대 나와보지도 않는다
텐트안에서 내복을 껴입고 고어텍스 재킷까지 입고 침낭을 덮으니 안춥다

 

새벽 두시밖에 안됐는데 관광버스가 도착하고 몇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올라간다
그렇게 깨어있다가 네시쯤되서 밥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밥이 영 설익고 엉망이다
양은 두끼분.. 아침하고 가면서 먹을 점심분이다
사실 설악산 내내 밥이 설익어서 엉망이었다

 

다섯시반에 출발
원래 원통에서 자고 왔으면 9시출발인데 한계령에서 잔 덕분에 3시간 반이나 출발이 빠르다
몇년전 겨울에 올랐을때는 눈이 적당히 쌓여서 편했는데 이제 올라보니 바위들이 많아서
발이 불편하다
역시 짐 무게는 20키로정도....
뒷사람들이 나보다 앞서간다.. 이럴때 제일 열받는다
짐이 무겁기도 하지만 평소 술많이 먹고 운동 안해서이다

부지런히 걸었더니 희운각산장에 11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
처음 계획으론 희운각 부근에서 텐트치고 하룻밤 자는 거였는데 너무 일찍 도착했다
그래서 힘이 들었는데도 점심먹고 공룡릉으로 출발했다

역시나 공룡릉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경치에 험난한 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깎아지른 절벽들.. 거의 수직으로 나있는 길들을 일,이백미터를 내려가고 올라가고..
앞에 보이는 저 봉우리를 설마 넘어갈까?
왠만하면 저 봉우리 옆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걷다보면 그 험난한 암봉으로만 길이 나있다

 

몇년전 백두대간 탈때도 제일 화가 나고 힘들때가 봉우리에 힘들게 올랐더니
앞에 같은 높이의 봉우리가 보이고 그 밑으로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하는거..
그 봉우리 올라가고 나면 또 다른 봉우리가 나온다.
이게 인생인가보다...
누구말이더라?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가는 거라고..

거기가 죽령에서 저수재 가는 길이었지...

그때 참 힘들었다
왜 백두대간을 헤메는지도 몰랐고 그 전날에는 표지를 잘못봐서 한시간이나 엉뚱한 길로
고도만 따져도 수백미터를 내려갔다가 다시 C+C++하면서 한시간을 다시 올라왔다가
마루금 길옆에 풀위에 텐트치기도 안 좋은데다가 텐트치고 하루밤 잤었다
게다가 더운 날씨에 풀들은 키높이까지 자라있고..
기껏 봉우리 올라가면 앞에 똑같은 높이의 봉우리가 있는데 그 밑으로 5,60미터 되는 골짜기가 있고..
다시 올라가면 또다시 그런 봉우리가 보이고...
힘은 들고...

 

내가 과연 왜 여기에 있는걸까?
산을 며칠 타다보면 머리속은 텅 비어버리고 머릿속으로는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는 LP판 모양 계속 똑같은 자리로 돌아와서 같은 구절들만 계속 부르고 있었다
그때 노래는 지오디의 '나는 왜 여기 서있나? 이게 과연 나의 길일까?'하는 가사의 노래였다

 

백두대간길이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고도 하고 인생길이라고도 하지...
현재의 나는 항상 고독하고 무거운 짐을 메고 있고 바람이 쉴새없이 불어올 뿐이다
늘 그랬다 현재는 거의 언제나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기 봉우리 위에 올라가기만 하면 뭔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열심히 올라가면 아무것도 없고 다시 저기 앞에 봉우리가 있고...
다시 그 봉우리를 향해 걷고...

그래 '그것'은 없다...
처음부터 그것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좋으련만 인간의 어리석음인지 항상 나는 '그것'을 찾는다
누구는 인생 저 어딘가엔 '그것'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인간이 불행한 이유중 하나는 길이 반드시 저 봉우리 저길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거...
인생이란 얼마든지 다른 길들도 있는데...
아니면 인간은 반드시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때문에 불행한거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짊어지고 있는것은 나의 자아일뿐...
내 짐이 무거운 이유는 200ml소주병과 캔맥주 무게의 자아때문인지도 모른다
털털 털고 가벼이 나서면 되는걸...

맨앞에서 내가 설악산 온 목적중에 한가지...
그건 인생은 이런거라고... 어차피 무거운 짐 지고 먼 길을 가는거라고
짐이 무겁다고 불평하지 말고, 길이 험하다고 불평하지 마고, 바람이 불지 않길 바라지 말고
꿋꿋하게 길을 걷는 것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래 그냥 걷는거야
그렇게 인생끝날때까지 걷는거야
게다가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경치 좋기로 몇손가락으로 꼽는 공룡릉이잖아?
그래도 경치가 좋아서인지 백두대간 탈때같은 짜증은 나지 않는다
전에는 마등령에서 희운각으로 걸었는데 이번엔 희운각에서 마등령쪽으로 간다
왜 희운각에서 하룻밤자고 공룡릉타는가? 했더니
이쪽으로 가는 길이 더 경치가 죽인다
기암절벽들...

가다가 1275미터 봉이 어디냐고 물으니 한사람이 저 앞에 높은 봉우리를 가르키며
'저기가 1275미터 봉이잖아'하신다
윽... 높다
게다가 절벽... 걸어서 올라갈수는 있지만 거기서 보자니 좀 까마득하다
그 길을 올라간다

지도에 3시간 반거리라고 적혀있는 거리를 짐무게를 핑계삼아 다섯시간 걸려서 마등령에 도착했다
텐트치고 있으려니 옆에 네사람이 도착해서 텐트를 친다
날은 어두워져가고 마등령 근처의 샘터로 가서 물을 길어온다
그런데 전에는 물이 많았는데 이번엔 너무 적게 나온다
돌틈에 나뭇잎하나 박아놓고 거기 흘러내리는 물을 페트병으로 받는다
500미리 한통을 4,5분걸려서 받다보니 시간이 한참지나서 완전 어두워져서야 텐트에 도착했다
그러고 나서 밥을 하는데... 한시간이 지나도 물이 제대로 안 끓는다
이번에도 설익고 맛이 없다 ㅜ.ㅜ

 

저녁때 바람이 많이 부는 가운데서 밖에 나가 속초시 야경을 구경한다
멋지다!
속초시내의 불빛들과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불빛과 어선의 불빛이 보인다
달은 아직 보름이 아니라 전과 같이 크진 않고...
속초시내 바라보며 소주 생각이 간절한데...
어제 저녁 이 200ml의 소주와 캔맥주를 어떻게 들고 갈까? 하다가
뱃속에 넣고 가기로 결정해버렸다. 그래서 없다.

 

이번엔 올라오는 사람이 없어서 6시까지 푹잤다
그리고 7시에 출발해서 미시령으로 향한다
거리는 지도상으로 5시간 20분정도다
그런데 이게 사람잡는 5시간 20분이었다
공룡릉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 비슷하게 암봉들을 좌로 넘고 한참을 내려가다가 다시 한참을 올라서
우로 넘기를 여러번 한다

지도에 있는 예상 시간을 누가 만들었는지... 으이그... 확
가다보니 백두대간 타는 사람들을 만난다 반갑다
등산객들마다 다들 작은 배낭을 매고 있었는데 올만에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만난것이다
한참을 가서야 저항령에 도착한다
다시 출발해서 고생고생해서 황철봉을 지나니 엄청난 너덜지대(바윗돌들이 마구 쌓여있는 곳)가 나온다
위에서보면 저 아래는 보이지도 않는 수백미터를 바위에서 바위로 다니며 길을 찾는다
다행히 백두대간 타던 사람들이 표시해놓은 돌무더기와 페인트표시가 군데군데 있어서 조금 헤매긴 했어도
길을 찾을수 있었다
백두대간에서 그런 너덜길은 설악산이 유일하다!

네시쯤 되서야 미시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5시간 남짓 걸린다더니 9시간이 걸린 셈이다 ㅜ.ㅜ
거기서 제대로 된 밥을 먹으려했더니 밥은 없고 대신 해물라면을 두개시켜서 먹었다

 

원래 계획은 미시령에서 내려가는 거였는데 온김에 진부령까지 가기로 한다
그리고 감자전을 시켜서 넣고 봉평메밀꽃술 한통을 배낭에 넣는다
그러고 상봉쪽으로 오르는데 힘이 든다
중간에 샘터가 있는데 여기도 최근에 비가 안왔는지 물이적다
또 하룻밤을 잔다

 

그런데 여기서도 극성스런 등산객들이 새벽부터 올라와서 잠을 깨워놓는다
그런데 이쪽 구간은 등반이 금지된 구간이 아니었던가?
아침에 6시쯤 일어나서 밥해서 먹고 출발준비하려는데
어떤 부부가 올라와서 잠시 쉬었다 간다
그러면서 수고한다고 감을 하나준다
맛있다! 아마 내가 백두대간 종주하는줄 알았나보다
이틀이나 고생해 걸었는데 상봉올라가는 데 생각보다 힘이 안든다
아자!

오늘 걸을 거리는 지도상으로 7시간 이상이다
어제 험한 길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 고생했지만 이번 코스중에서
대간령까지는 전에 가본적이 있다 그때는 시간이 남아서 상봉꼭대기에서
설악산에 숨어있는 커다란 달밑에서 속초항의 오징어잡이 배들 불빛을 바라보다가
잤었다
세시간만에 대간령(큰 새이령)도착해서 아침에 해두었던 밥을 먹고 남은건 버리고..
그리고 짐을 줄이려고 남은 쌀과 김치를 다 버렸다
백두대간때부터 항상 궁리하는 거는 어떻게 하면 단 일,이백그램이라도 무게를 줄일까 하는거다
열심히 또 걸어서 병풍바위 지나고 마산봉을 지났다
두시 조금 넘어서 알프스 리조트 도착했다

백두대간 안내책자에는 마산봉부터 바로 알프스 리조트인거 같이 나와있는데 사실은
안 그렇고 저 밑에 고작 몇백미터만 스키장이다
알프스 콘도안에 있는 매점에서 콜라 한병과 과자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걷는다
여기서부터는 백두대간 지도가 전혀 틀린다
리본만 따라가야 하는데 리본도 잘 안 붙어있고 옆에 군부대보초한테 백두대간길이 어디냐고 물으니
여기가 백두대간 길인지도 모른다
전혀 엉뚱한 길들을 리본만 따라가니 몇키로나 되는 농로가 나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몇번이나 물어서 겨우 찾아간다
백두대간 길에서 이토록 도로를 많이 따라가는 코스는 없다
겨우겨우 차가 다닐수 있는 산길을 따라 들어가서 진부령에 도착하니 4시가 다됐다
바로 원통가는 버스타고 원통가서 진짜 오랜만에 식당에서 순대국먹고
인제막걸리 두통 배낭에 넣어서 서울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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