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점봉산을 올랐다

지리산자연인 2006. 1. 2. 22:03

드디어 서울탈출이다

여름내내 그토록 서울을 벗어나려고 하다가 9월초에 겨우

시간을 내었다


버스타고 한계령에서 내려 점봉산을 향했다

점봉산길은 한계령에서 800미터정도 내려와 필례방향으로

나있는 길을 올라서 필례령에서 시작한다

가보니 초소가 있는데 9시가 다 되도록 아무도 없다

철망에 위는 또 철조망이다

다른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있어서 그리로

배낭을 넘기고 나도 넘는다

 


산길을 오르니 몇년동안 제대로 등산을 안해본 실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운동 거의 안 하고... 소주 댓병으로 사다놓고 마시고...

처음부터 힘들기만 하다

좀 가다가 아침에 만들어둔 밥을 꺼내서 먹고 다시 출발

좀 더가니 길이 순 가파른 바위길로 되어 있는데 기막히게도

밧줄이 없다!

별로 붙잡을 것없는 위험한 바위 틈새로 나있는 길을

무게 20키로가 넘는(늘 그랬다) 배낭을 매고 오르려니 힘든다

그래도 바위가 많으면 산타는 재미가 쏠쏠한데 이번엔 그러지도 못했다

그렇게 오르다가 중간쯤에서 바위틈새를 지나다가 옆에 대충 달아논 빨래판 매트리스의 약한 끈이 끊겨져서 저 밑으로 떨어져 버린다

미치겠네.. 어제 산 건데..

그래서 조금 더 올라가 적당한데서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내려가

주워 왔다

벌써 힘은 많이 빼고.. 그렇게 얼마를 가니 길은 좋아진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저기 수염이 길게 난 사람이 쉬고 있다

나처럼 큰 배낭을 매고 있는 사람이다

물어보니 지리산에서부터 왔단다 백두대간타는 사람이다!

크.. 3년전 내가 백두대간 떠돌때가 생각났다

물있으면 좀 달라고 해서 나도 좀 모지라긴 하지만 1.5리터짜리 페트병에 남아있던 절반정도의 물을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자기는 아까 그 초소에 누가 지킬까봐 근무시간 끝날때쯤 내려가려고 한다길래 거기 아무도 안 지킨다고 그냥 가시면 된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계속되는 산행..

몇시간을 계속 걸어서 1시가 좀 넘으니 저 앞에 두사람이 보인다

등산객은 아니고 마을 사람으로 보인다

인사를 하니 저밑에 아무도 안 지키더냐고 묻는다

그래서 아무도 없다고 하니 내가 근무시간이전에 올라와서 그렇단다

원래 사람이 계속 지키고 있고 벌금이 50만원이란다

아까 그 백두대간 타는 사람 무사할까?

그래도 대간 타는 사람들은 좀 봐주고 하니까 설마 벌금 50만원 까지야.. ^^;;

그들에게 송이따세요? 하고 물으니 약초나 좀 있나하고 돌아다닌단다

글쎄.. 주목을 몰래 캐지는 않을지..

아니면 오가피나무캐든지 하겠지...

나보고 점봉산 정상에서 너무 오래 머물지 말라한다

날벌레들이 물어뜯는다고 하지만 아마 내가 거기 있다가

산림청이나 국립공원 관리소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그러는거 같다

그러면 자신들이 산속에 들어오는게 힘들어질테니까..

 

두시 조금 넘어서 겨우 점봉산 정상 도착..

윽..

점봉산 다 오기전에 샘을 발견했어야 하는데... 클났다

물은 500미리리터밖에 안 남았고...

이거 전국산하를 주름잡던 십이월체면이 말이 아니다

너무 많이 산에 안 왔고... 너무 술을 많이 마셨고...

점봉산에서 내려가려니 다리가 알이 박혀서 힘들다

그리고 등산화속에 넣어두었던 깔창덕분에 발톱까지 아프고

발가락 등껍질이 벗겨지고 있다..

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내려오다가 텐트치기 적당한 곳이

있어서 텐트치고 쉬었다

원래는 단목령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곰배령을 넘어서 현리로 가서

조경동(아침가리)가서 또 하루나 이틀 잘려고 했는데 스케줄이 어긋나 버렸다

 

저녁에 텐트속에서 가만 있으니 참 오랜만이다

밤중에 쿠구구 쿵~ 하더니 어떤 산돼지 한마리가 자기 지나다니는

길에 텐트쳤다고 꽤애액하면서 한참이나 가지도 않고 승질을 부린다

거 녀석 적당히 놀래키고 그냥 가지...

아까 올라올때도 돼지가 울더니 하여간 점봉산 우리나라에서

산돼지가 젤 많은 산중에 하날꺼다

숲이 깊고 먹을게 많으니까..

점봉산은 우리나라에서 산나물에 젤많은 산중에 하날꺼다

나중에 나 여기들어와서 살게 되면 저놈들 몰래몰래 잡아서 단백질과 생활비 보충해야지..

그 생각하니 돼지 소리도 반갑다 ^^

 

다음날 단목령에서 잠시 쉬다가 진동리에 가보기로 했다

얼마나 변했을까.. 하늘찻집은 아직도 거기 있을까?

이백진 목사님이 말씀하신 화가분도 만나보고 해야지..

진동리는 몇년전 모님 아우분이 펜션하신다길래 소개시켜 드렸던 곳이다

그렇게 30분정도 남쪽으로 걸어서 내려와 첫 만난 집부터

예상을 훨씬 넘는 것이었다

전에는 적당히 적당히 주변 자재들 가져다 대충 지어진 시골집이었는데... 거의 펜션형의 서양식 주택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더 내려오니 펜션이라고 쓰여진 간판도 보이고..

더 내려오니 전에 찻집이 있던 곳에 전원형 황토벽돌 주택이 있다

 

맙소사!

전에 내가 알던 그 운치 있던 그 마을이 아니다!

하긴 여기 경치가 워낙 좋긴 하다

전에 그 찻집은 어디 시골학교 같은데서 뜯어낸 듯한 문짝하고

유리창들을 대충대충 판잣집 비슷하게 엮은 천정도 낮은 그런 집이었다

그게 더 운치있고 좋았는데..

새로 지어진 집은 황토벽돌집이라지만 그거 황토에 시멘트 섞은

무늬만 황토인 집이다

그리고 그 옆에 개울건너 있던 집도 통나무형이나 목조형 주택이

들어서있다

 

그 황토집에서 여기 가게 없냐고 하니 없단다

그래서 휴지있으면 좀 달라고 해서 하나 얻었다

그리고 거기서 좀더 내려와보니 매점이 있다

일명 설피민국!

라면 막걸리 맥주를 파는데 인제막걸리(너 못본지 오랜만이다!)를 5000원에 그리고

두부안주를 5000원해서 만원에 혼자 마셨다

매점 주인은 옆에서 무슨 효소(아마 백초술 그런걸거다)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서 술친구가 되주지도 못한다

백초술은 봄에 이 풀 저풀 뜯어다가 설탕에 재서 만든다

그래서 술을 마시며 여기 땅값 많이 올랐겠네요 하니

평당 30만원이란다 윽 살인적인 땅값이다!

3년전만 하더라도 15만원수준이었는데...

맙소사 내가 나중에 늙으면 들어와 살려고 했는데 망했다

이렇게 좋은 곳을 찾기 힘들텐데...쩝..

가게 주인에게 조금 한탄을 했다

주인이 그런다  '그러니 얼른 사고쳤어야지..'

그리고 술취해서 다시 올라 오다가 아까 그 펜션이라고 쓰인데를

찾아가니 주인이 어디서 왔냐고 한다

그 사람하고 잠시 얘기하고..

다시 내려와 전에 찻집있던 곳 옆 목조주택을 가서 구경하다

거기 주인은 안양 사람으로 6년전부터 여기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민박도 가끔하고 그러는 모양이다

참 좋은 곳에 산다

내가 바로 그러려고 했는데...

그런데 만난 사람마다 화가분에 대해서 물으니 그런사람 아무도 모른다

 

다시  곰배령쪽으로 오른다

중간에 강선리라는 곳이 있다

전에 듣기로 전기도 안 들어오는 우리나라 오지중에 오지라는데..

아니 도로가 나있고 차다닌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전봇대...

여기도 3년새 많이 변했군..

그렇게 30분을 오르니 집들이 몇채 보인다

더 올라가니 어느 집에 커피 1000원 냉커피, 아이스티 2000원 식으로 써붙인곳이 있는데 사람은 없다

대신 시베리아 허스키만 한마리..

 

더 올라가니 새로 짓고 있는 집이 있다

커다란 나무기둥들이 있고 지붕도 있고..

와~하고 감탄을 하고 있다가 가려고 하니 옆에 의자에 누가 기대 누워있는게 보인다

그래서 인사를 하니 환하게 인사를 한다

집을 짓고 계세요? 하니 그렇단다

나이는 20대 후반정도? 처음엔 일꾼인줄 알았는데

자기가 혼자 짓고 있는 거란다-_-

그리고 나이도 30대중반아니냐고 넘겨짚어 물어보니

그렇단다

실제로는 40도 될수있는 나이다

 

이럴수가.. 바로 내가 이렇게 살고 싶었는데..

잠시 쉬어가라는데 갈길이 바쁘다고 떠나려하다가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 사람 그런데 웃는 모습이 어떻게 보면 덜떨어진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아주 천진난만하다

그러다 차를 준다기에 짐을 내려놓고 그 짓고 있는 집안으로 들어가

보이차라는 차를 얻어마셨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고 부럽다고 얘기하니

그 사람말이 산속에는 한달에 20만원만 있어도 된단다

그리고 부럽다고 대단하다고 이리저리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고

그 집 짓는데도 인건비가 안드니 2,3천만원정도면 된단다

그러면서 나보고 자기처럼 이렇게 산속에 들어와 살란다

집평수는 12평정도.. 겉에서 보기보단 작다

그래도 방 두개에 욕실이 하나 있다

기둥은 낙엽송이고 바닥은 공사판에서 콘크리트 부을때 쓰는 나무판이 재활용되어 있다

하긴 그런데 살면 등산온 사람들이 술들은 들고 오니

술하고 안주는 술 고프지 않을 만큼 먹기 참 좋을거다

그리고 산에 온 사람들이 내려갈때 쌀하고 부식을 놔두고 가기도 하고..

내가 3년전 왔었다고 하니 자기는 그보다 더 오래 있었다고 한다

여기는 겨울이 일년에 절반이라고 한다

5월에도 눈이 안 녹고 있어서 등산객들 지나가다가 저기 스치로폼 있다고 한단다. ㅋ

하긴 마장터에도 4월 중순까지 안 녹고 있었고 높은데서는 6월까지 눈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그 사람이 몇년째 지내고 있는 곳을 들여다보니

없는거 빼곤 다 있다

난로랍시고 돌과 황토로 미니 벽난로 비슷하게 되어 있고

자는곳에는 전기장판도 있고

LPG가스렌지도 있고.. 간이 싱크대도 있다

그리고 집 자체는 언덕경사면에 공사판에서 쓰는 쇠파이프

구조물같은것 위에 나무판자와 단열재를 써서 오두막을 지어놨다

거기서 겨울을 몇년째 지낸 모양이다

나보고 집 지을 돈 없으면 그렇게 오두막 지어놓고 지내도 좋다고

권한다

이래저래 부럽다!

땅값만 안 올랐어도 내가 저 사람처럼 사는건데...

나보고 늙을때 들어와 살지 말고 젊을때 자기처럼 들어와 살라고 권한다

자기는 늙으면 일하기 힘드니까 내려가 살거라나?

하긴 그렇다

 

잘 얻어마셨다고 하며 보이차 그거 나중에 사서 마셔보겠다고 했더니

그거 단가가 무지 비쌀거란다 윽

백화점에서도 안 판다나?

크...

여기서 많이 마시지 못한거 후회할거라고 한다 ㅎㅎ

 


그렇게 강선리를 떠났다

집은 모두 10채정도.. 스님도 살고 노인네들도 살고..

그런데 자급자족해서 먹고 살기는 힘들어보인다

해발 850미터 부근이라 농사도 잘 안되고 사실 땅도 별로 없다

민박을 하면 모를까..

 

곰배령가는 길은 순 고속도로처럼 길이 아주 잘 나있다

중간에 산돼지를 봤다

산돼지 맨눈으로 보기는 쉽지 않은데 돼지가 워낙 많으니

눈에 띄나 보다

비를 맞으면서도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12시경 곰배령 도착..

텐트를 치고 있는데 밖에서 으르릉~하는 소리가 들려

왠 개소리? 아니면 산돼지? 해서 밖을 내다보니 아무것도 안보인다

저녁을 먹고 나니 밖에서 또 산돼지 꽤애액 하는소리가 들린다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는 실망이다

나중에 들어가 살 곳들을 돌아보려는 계획이었는데..

그리고 조경동(아침가리)는 가보지도 못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발..

저밑에 귀둔리 초소에 감시인이 오기전에 초소를 지나야 한다

열심히 걸었더니 8시경에 초소를 지났다

그리고 현리로 나와서 서울로 왔다
 
배낭속에는 서울서 맛 못보는 인제 막걸리 한통하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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