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2002년 6월 22일
그날 오후 스페인과의 일전이었나?
나는 그때 황장산 꼭대기에
있었다
6월 17일 고치령(맞나?)로 이동해와서 거기서 오래 머무르려고 했지만
적당히 텐트칠만한 그늘도 없고 공터는 헬기장이고..
덥고...
그래서 17일밤 거기 비포장도로 위에서 대충 텐트치고 하룻밤 자고
아예 소백산 국망봉으로 해서 경북 영주시로 내려와
버렸다
내려오니...
세상에나.. 라디오에서 말로만 듣던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은 얼라들이 지나다니고..
누구는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다니고... 참 대단한 경험이었다
벌써 오래전부터 저러고 있었는데
산에서 하산하니 처음으로 구경한다
그날 내 태어나서 처음(? 기억하기론 처음)으로 월드컵 경기를
티비로 봤다
물론 텐트 빨고 선풍기 틀어 말리고...
빨래하고... 정신없었다
처음에 골들어가고... 으이구.. 내가 구경하면 꼭 우리팀이 진다니까..
그래서 빨래 열심히하고...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기더라
그 다음날은 풍기로 이동해서 하룻밤 더 자고 죽령으로 올라가서...
험한 봉우리 넘고...
그 구간은 순 산행시간
9시간동안 물이 없는 구간이라
헥헥대며 갔는데 중간에 길을 잘못들어 한시간동안이나 아래로 내려갔다가
하늘을 보며 지랄지랄해대며(난
왜 맨날 이럴까? 하며) 다시 올라왔다
날은 저물고.. 텐트칠곳은 없고.. 그냥 아무데나 텐트를 쳤더니 텐트가
기우뚱하고 바닥은
올라오고...
그렇게해서 22일에는 경북 문경시 동로면에 접한 백두대간에 도착해있었다
아침에 동로에 내려가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축구경기를
볼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아예 그런것도 없어서 다시 올라와서 오후에 황장산을 그냥 올랐다
물론 라디오는 손에다 들고서...
험한길... 순 암릉이다
대신 조망이 죽여준다
거의 수직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수직으로 바윗길을 내려오고...
그러면서 축구경기를 듣고...
다시 수직으로 올라서 황장산 꼭대기에 오르니 소백산 비로봉하고 황장산이 보이고...
거기
꼭대기에 소나무아래서 조마조마하면서 승부차기를 듣고 있었다
칼등바위
결과는 승리
역시 하늘에다가 대고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혼자 지랄을 하다
음... 좋군...
그건 그렇고...
이제 끝났으니 다시 길을 가야지...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있었으니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야지
물뜨고 밥하고 잘수가 있다
황장산 정상
차갓재로 가는 길은 더 험하다
바위위에 바위가 얹혀있는데 거기를 휘돌아가야 한다
아차하면 추락
거기를 지나니
이번엔 절벽위를 가로질러 밧줄이 매어져있다
그걸 잡으니 축 아래로 늘어져버린다 겨우 반대편에 도착
다시 길을 가니 이번에는
절벽아래로 밧줄...
지팡이를 아래로 던지고 두손으로 밧줄을 잡고 내려간다
그러고 밑에 도착하니... 맙소사..
어느것이
내 지팡이지?
거기엔 지나간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바위를 오르느라 버리고 간
지팡이들이 수백개가 버려져 있었다
지팡이무덤...
하나 주워들고 다시 길을 걸으니 백두대간 마루금위로 쓰러진 수만개의
비석들... 아니 비석모양으로 쓰러진 바위돌들...
그 위를 걸으니 산이 내게 소곤소곤댄다
그래서 어? 하고 주위를 돌아보니 주변엔 나뿐...
어둠속을 홀로 걸으면 늘 그렇다
저기에 사람이 앉아있는거 같아서 다시보면 나무그루터기이고...
저기 침상이 있는거 같아서보면 바위고..
옆에서 누가
소곤소곤대는거 같고...
이것이 바로 야간산행맛이야!
겨우 차갓재에 도착
물도 없어서 개울자국위로 스며나오는 물을 그냥 떠오다
거기서 그렇게 2002년 6월 22일 밤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