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야기

지리산 종주기

지리산자연인 2006. 1. 6. 20:34
18일 서울역을 출발

저녁에 구례구역에 도착하다

생각보다 작은 도시다 그래도 여관들은 아주아주 많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아침을 먹고

식량으로 떡국을 준비하고 약밥을 점심으로 먹으려 사다

화엄사에 도착하니 짐이 너무 무겁다

아직 산사람이 덜되었나보다

 

화엄사옆 찻집에서 차를 한잔시키고

떡국을 덜어내고 몇개의 짐을 포기하다

아까워라...

쓸데없는 짐들을 너무 많이 가져왔다

아직 겨울산 경험이 없어서이리라

버리기 아까운 것들은 미련하게 다 매고 올라가다

그래도 지리산 종주하면 유명하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많을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첫날 그렇게 무거운 짐을 매고 낑낑대며

역시 난 산을 싫어해

그리고 산도 나를 싫어해 하며 그렇게 투덜투덜대면서

지리산 종주중 제일 힘든 날을 화엄사 계곡을

올랐다

 

하도 지쳐서 쉬고 있는데 위에서 어느 부부의 말소리가 들린다

좀 있으면 내려오겠지...

그런데 안 내려온다

아차 여기가 능선에 거의 다 왔구나

노고단엔 그렇게 도착했다

휴...

겨우 왔네

노고단

 

노고단에서 짐 내리고 저녁준비하고...

저녁을 만두국으로 먹으니 어느 아가씨가 혼자 컵라면 들고 온다

그 아가씨와 만두국 권하기도 하다가

산에서 늘 그렇듯이 친해지다

누가 그랬지

산 좋아하는 여자치고 예쁜 여자 못 봤다고

하지만 다들 성격들은 좋다

사람들이 거의 안 다닌 왕시루봉 길을 혼자 왔다고 한다

내가 더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이메일 주소라도 얻는건데...

아쉽다

 

거기서 만난 지리산 종주를 끝낸 어느 아저씨..

종주 첫날인 나에겐 참 대단해 보였다

짐을 매고 입고해서 200-250만원어치 들고 다닌다나??@@

나도 그리 여유가 있었으면...

난 싼 미군용 고어텍스 제품들에

괜히 무거운 것들이고 침낭같은건 아직 구하지도 못했는데....

부럽다

 

노고단서 하루밤을 고어텍스 침낭커버에 대여받은 침나에서 자니

땀까지 흘리면서 잘 잤다

물론 씨끄럽긴 했지마...

다음날 출발..

그 아가씨완 연락처도 못 주고 받고 헤어지다

지리산 능선 위엔 눈들이 아직도 많이 쌓여있지만 날씨가 너무 좋았다

이런 날씨가 계속 좋으면...

열심히 혼자 걷고 걸어 뱀사골도 지나고 삼도봉도 지나고...

삼도봉에서 나를 지나쳐간 세명의 남자들이 그런다

여기선 전라남북도, 경상남도 삼도의 방송이 잡히니

나중에 돌아가서 삼도 라디오 방송 들었다고 뻥을 하란다

ㅋㅋ

좋은날 천천히 걸었다가

나중에 연하천산장 못가서 차가운 물 끓여먹으려니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 있어

'연하천 아직 멀었어요?' 물으니

'제가 1시10분에 떠나서 지금 두시니 50분 거리네요'

잉? 무슨??

내 시계는 지금 1신데....

맙소사 내 시계가 지리산 추위를 먹어서 느리게 가고 있었다!!

설악산에서 시계 하나 망가뜨리더니

여기서 내 10년전 논산 들어갈때 아버님께 받은 시계마저 고장 내놨다

이런...

그 시계를 믿고 와 내가 빨리왔구나 하고 천천히 가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

연하천 산장

 

그래서 열심히 걸어 연하천 산장에 도착하니

아까 그 세친구가 먼저 와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말이

'더 가지 마시고 저희처럼 give up하시고 play하시죠?'

그래서 안된다고 벽소령가야한다고 말하고

물끓여서 마시면서 가지고간 만두를 몇개 집어먹고

떠나려하니 그 친구들이 그럼 같이 가잔다

3시 25분 연하천산장 출발

지도에서 한시간거리로 읽었는데 벽소령까진 두시간거리란다

이런... 내 엉터리 시계를 믿고 지도를 믿었으면

고생 마니 할뻔했다

그렇게해서 네명이서 벽소령까지 험한 길을 걷다

소요시간 1시간 반

벽소령 산장

 

혼자서 걸었으면 그 속도가 안 나왔을텐데

같이 걸으니 빨리 걷게 된다

눈은 많이 쌓여있고 아래론 절벽이 있고.....

지리산 종주구간중 유일하게 다른사람들과 같이 걸은 구간이다

(나머진 전부 혼자였다)

어두워져서야 벽소령 산장에 도착하다

휴대폰은 안되고... 집으로 연락할 길은 없고...

나중에 도착한 7인의 아저씨들이 있어 보니

그날 하루에 내가 이틀에 걸쳐 뛴 거리를 그날 하루에 왔단다

그러면서 이렇게 적게 뛴적은 첨이란다

지리산을 날라다니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흐...

나도 언제나 그렇게 되나...

그날 같이 동행한 세친구와는

사진 두장을 찍다

유일하게 그 두장이 지리산 위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 친구들이 이멜로 그 사진 보내준다고 했는데...

 

그 다음날 아침 그 친구들은 종주 포기하고 내려가려하고

나는 떠나는길에

우리집에 나 잘있다고(사실은 우리 어머니 내가 지리산 종주하는거 아직까지도 모르고 계신다)

동생한테 전화해달라고 전번을 적어주니 나중에 그 전화가 왔다고 한다

좋은 사람들이다...

겨울산이 누가 위험하다 했는가?

속고 속이는 세상 손해 안보려 큰소리 쳐야하는 세상

가진거 없고 힘도 없으면

나 만만한 사람 아니야 하며

나 건드리면 가만 안 있어하고

눈이라도 부릅뜨고 다녀야하는 세상

산위에서 그런일은 없다

 

벽소령을 떠나는 아침

눈이 간밤에 눈이 조금 쌓여 있었다

그 전날 눈이 온다는데... 어떻게 하나...

나는 단순무식해서 일단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야하는데...

눈길을 어떻게 뚫고 나가나?

안 추울까?

그런 걱정을 안고 산장을 떠나다

목표는 장터목 산장

길은 멀지 않다

그런데 계속 눈이 온다 (그 다음날 까지 거의 쉬지않고 왔다 ㅜ.ㅜ)

그래도 걸으니 안 춥다

내 앞을 떠난 7인의 아저씨들이 남긴 발자욱을 20분차이로 뒤따라가다

한참을 가니 그날 처음으로 내 반대편쪽으로 가는 사람을 만나다

눈이 오니 종주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벽소령산장서 본 사람들도 내려간다 하던데...

눈보라가 치는데도 하나도 안 춥고

오히려 덥다고 고어텍스 재킷을 벗었다

난 언제나 군용이 아닌 등산용 고어텍스 재킷 사서 입어보나...

돈을 마니 벌어야지...

 

난 누가 대가성 없는 돈 마니마니 안주나??

음...

앞으로 공직에 몸담아야 할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자세가 아니지...

덥다고 장갑도 벗어버리니

뺨에 와 녹는 눈이 시원하다

거센 바람도 시원하고..

얼마나 추운지는 잘 모른다

대신 휴대폰을 켰더니....

액정화면이 얼어서 화면속 아가씨가 이상하게 찌그러진다

춥긴 추운가보다

 

세석산장에 도착하니 그 아저씨들 고기굽고 밥에 라면에 잔치 벌였다

그 아저씨들도 한사람이 다쳤다더니 포기하는 분위기 같다

난 옆에서 언 만두 몇개 입에 넣고...ㅜ.ㅜ

이거 한번 먹어보라는 소리를 계속 기다렸는데 안한다

다시 짐싸서 매니 그중 한명이

'여기 뜨거운 라면 국물 한국자라도 좀 드세요'한다

으띠.... 진작 그런말 하지

배낭까지 맸는데 이제서야 그런 소릴 하다니...

'아니 괜찮습니다'미소를 띠고 맘에도 없는 소릴하다

난 아직 걸인 근성을 덜 키웠나보다

이럴땐 그저 염치그런거 따위 없이 그냥 먹는건데...흐..

뭐 도움받는다고 부끄러워할거 없이 나중에 나도

다른사람에게 베풀면 되는걸...

이런데서 뜨건 라면 국물 한국자가 어딘데... ㅜ.ㅜ

두고 두고 후회하다..

장터목 산장

 

또 열심히 걷고 걸어 장터목 산장에 세시쯤 도착하다

목적지는 도착했는데 아직 해는 좀 남았고...

더 가기로 하다

이제 앞엔 지리산 제일봉인 천왕봉이다

거기만 넘으면 하산길이다

취사실에서 뜨건 물 혹시 얻어마시려했더니 없댄다

아까 그 라면국물이 또 생각난다

그새 조금 쉬었다고 몸과 손이 얼어붙는다

3시 20분쯤 천왕봉을 향해 출발

500미터마다 박힌 말뚝들...

노고단에서 01-01로 시작해서 이젠 몇개 안남았다

역시 거칠다

천왕봉 풍경

 

지리산 중에서도 제일 거칠었다

700미터 남았다고 아주 좋아했다가

한참 걷고 오르고 돌고 했는데....

한참 지났는데.... 다음 푯말엔 500미터 남았단다

지리산 꼭대기..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어

사막에 사구(沙邱)가 바람에 생기듯

꼭대기에 설구(雪邱)가 생겼다!

투덜대면서 천왕봉에 겨우 도착

그런데 天汪봉?? 왠 천주봉?

아닌가? 저게 주자가 아니라 왕자인가??

그 위에 오르려니 바람에 몸이 휘청한다

칠선계곡길은 막혀있고...

대원사길은 나중에 함 들르마 하고...

중산리길로 내려오다

 

험하다!

날은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내린 눈들로 인해 길은 지워지고 보이질 않는다

너무 쌓였다!

미끄러지고 주저앉고

흐....

설악산서도 밤중에 헤맸는데...

요번에도 밤중에 지리산 꼭대기서 헤매다

그때완 달리 눈도 심하고 멈추면 생명에 지장이 바로오는데...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서였는지 걱정이 안된다

어두워져서 헤드렌턴을 머리에 쓰니

그리 밝지도 않다

그래도 없는것보단 낫다

그런데 설악산에선 리본이 많던데 별로 없다

길을 잃엇나했더니 다시 나오고...

산불방지한다고 경고장 붙어있는 철망을 지날까 말까하다가

지나니 길이 나온다

거기서 다른데로 향했으면 고생 엄청 했지.... ㅋㅋ

가져간 스틱(지팡이) 두개 다 고장나고 휘어지고 버리고

하나만 자꾸 접히는거 아예 구부려서 짚고

겨우겨우 살아서 로타리 산장에 도착하다

로타리 산장

 

 

6시...

휴....

며칠전 개장한 칠불사옆 산장엔 나까지 세명의 등산객과 한명의 직원

오랜만에 햇반을 사서 라면에 끓여먹으니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또 없다

내가 말하는 속칭 개밥이란거

암캐가 임신했을때 영양식으로 라면에 밥넣고 김치하고 이것저것 넣어서

먹는거... 너무너무 맛있다

고난의 행군도 다 끝나고...

그날밤 자고 일어나니 눈보라가 엄청나다

세상에 어제밤에 저 위에선 저보다 더 춥고 바람도 셌을텐데.... ^^;;;

그곳을 내려왔구나...

다시 그 맛 좋은 속칭 개밥을 끓이려니

올라가다가 밥먹으러 들른 사람이 자기 버너 쓰란다

고맙다

산에서 인심은 참 좋다

다른 두명의 등산객은 천왕봉으로 올라가고

나는 내려왔다

내려오니 아래선 눈이 거의 안왔다

다시 올려다보니.....

맙소사

지리산은 온통 눈에 쌓여있고 엄청난 눈구름이 산위에 있다

내가 저길 지나왔구나!

그렇게 3박4일의 종주는 끝났다

여름에 다시 온다면 일박이일도 가능하리라

또 다시 가고 싶어진다

이젠 어디로 갈까?

소백산 종주? 덕유산 종주?

아니면 사람을 몇이나 잡아먹었다는 설악산 공룡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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