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야기

설악산을 올랐다

지리산자연인 2006. 1. 6. 20:43
산에서..

벌써 작년부터 소백산, 덕유산, 설악산 등반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눈이 너무 오거나 비가 오거나 같이 가자던 친구넘이

연락이 없거나, 내가 감기에 걸려버리거나 해서 못가고 있었다

나는 감기에 걸려있고.. 벌써 일주일째.... 이러다 내 남은 시간

다 지나가겠다 싶어서 무조건 설악산으로 떠나기로 했다

감기는 아직 낳지 않고 있었고...

출발 전날 30달러주고산 비박색이 도착했는데...

인터넷에서 어느 사람이 내가 올라가기로 한 한계령-중청 코스에서

평상시 5시간 미만으로 걸리는 거리를 눈이 많이 쌓이고 또 내리고

또 영하 20도(20밑으론 눈금도 없었단다)해서

10시간 넘게 걸려서 겨우 살아서 도착했다는 코스라고 했다

그 소릴 듣고 전에 겁도 없이 한겨울에 혼자서

한계령 -중청-공룡릉 타려고 했던 난 뜨끔해가꼬서리

그 비박색이 도착하면 나중에 지치더라도 설악산 서북릉위에서

그냥 비박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역시 싸구려는 싸구려다!

여름에나 쓸수 있게 되어있다

대신 같이 주문한 고체 연료는 비상시 요긴하게 쓸수 있겠다

 

이번 한계령-중청코스는 내가 잘못하면 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목요일(1월 24)일? 출발해서 저녁에 한계령에서 내려 사전 답사한답시고 올라가니

계단에 눈이 꽤나 두껍게 쌓여있고 발자욱도 그리 많지 않다

원래 사람들이 잘 안 올라가는 코스고 이틀걸러 눈이 내렸으니 그럴만도 하다

내가 얻어탄 트럭기사나 식당 아줌마 한계령휴게소 직원들 다들 말린다

위에는 눈이 무릅까지 빠질텐데... 하면서 왠만하면 가지 말란다

허나 어쩌랴.... 나는... 나는 그냥 가야겠다

 

이튿날 25일 아침 일찍 일어나 오색의 식당서 황태해장국 먹고 주먹밥하나 싸고

해서 오색을 지나는 고속버스 타니 어제 나를 싣고온 그 아저씨다!

한계령에서 내려서 고어텍스 오버트라우저에 스페츠 차고 6발 아이젠 하고..

완전 무장해서 한계령 휴게소 옆으로 난 가파르고 눈에 깊게 묻힌 계단을 오른다

어제도 매표소엔 사람이 없더니 오늘도 없다! 대신 국립공원 입장료 2800원 벌었다

^^

여긴 원래 이리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구간인가보다.. 그래도 백두대간위의 길인데...

떠날때 내 짐무게가 15키로가 넘었고 거기에 물통에 물넣고 식량 넣고... 그러면 17키로 이상..

게다가 내가 입고 신은것까지 하면 거의 20키로 쌀포대 무게다

요번에도 역시나 '난 산이 싫어!'하면서 띠불띠불하며 아무도 없는 산길을 혼자 오른다

눈은 역시 많이 쌓여있지만 그래도 지나다닌 사람들 덕에 잘 밟혀져있고 걸을때마다 폭신폭신하니

오히려 눈 안내렸을때의 산길보다 더 났다!

이런... 싱겁네...

괜히 쫄았다! 난 잘못하면 위험하겠다 싶었는데... 위험할거 하나 없다!

한계령

 

오를때가 8시 50분 .. 역시나 한적한 길이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주위에 위로 보이던 봉우리들이 이제 내 눈 밑에 보일때쯤 갑자기 한 사람이 보인다

그때가 10시 6분... 이 사람도 산을 꽤나 좋아하나보다 이런길을 다니다니...

중청으로 향하는 길... 나무마다 눈꽃들이 피어있고 경치가 좋다 대신 길위에

리본이 별로 없어서 눈이 내리면 길을 잃기 딱 좋겠다

한참을 가니 남학생 둘에 여학생 한명의 일행이 보인다

그 여학생 나보고 앳된 목소리로 '저 물 있으면 조금만 주실래요?`한다

흐... 그 목소리에 갑자기 남성 호르몬이 내 뒷통수를 갈기며 '얌마 얼렁 장개가!'한다 -.-

그날 중청까지 가는 길에 만난 사람이 10명 내외..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산을 좋아하는 산꾼들이거나

멋모르고 지도에 나와있는길을 따라 한계령이나 서북릉 종주하겠다고 나서는 초보들 두 종류다 ^^

안됐군... 한계령까지 두시간 반 거린데 물은 다 떨어지고.... 여학생은 짐을 안매고 있는데 보니까

산은 완전 초보인거 같다. 물 마시면 더 힘든데... 군대서 행군할때 하는 말이 물 마시면 더 힘드니

왠만하면 그냥 물 안 마시고 끝까지 가라고 했지... 그래도 그 이쁜 목소리에 그 옆 남학생까지

물을 주니 얼마 안 남았다.. 난 역시 여자에 약해~ -.-

중청봉

 

중청에 도착하고.... 소청을 가서.. 그 다음엔? 흐흐...

소청에서 미끄럼 몇번타고 내려가니 1.3키로거리 희운각이다

겨울산행은 역시 눈위로 미끄럼 타는게 최고다

그런데 넘 가파른 길을 미끄럼타니 처음에는 브레이크도 안 걸리고

과속에 힘들더니 재밌다

대신 희운각가는 마지막 계단에서 넘 가파르고 바위가 튀어나와있는길을 내려가다

호박에 깍두기 국물 흐를(대꿀빡 뽀사질) 뻔하다

옆에 철계단을 두고 언덕을 미끄럼으로 내려가다 브레이크가 안 걸려서 과속이 되더니

한쪽옆에 나무 뿌리 나와있는 데를 발로 걸쳤는데...

브레이크가 왼쪽에만 걸리니 스핀을 먹어서 몸이 회전을 하더니...

그만 몸이 45도로 기울어져서야 겨우 멈췄다 흐...

뒤에맨 배낭은 17키로 이상.. 벗을수도 없고 밑으로 쳐진다..

자세도 어정쩡해서 다시 옆으로 바로 설수도 없고 배낭은 벗겨지지 않고... 조금만 움직이면

스핀먹어서 머리부터 저 밑에 바위에 부디칠 판이다

저 밑에 산장에 사람들이 보이고...

이런 꼴 당해서 살려달라고 하긴 쪽팔리고...

그래도 작은 목소리로 '사람살려~' 외쳐보지만 아무도 못 들었나보다

겨우겨우 왼손을 눈위에 짚으니 몸을 조금 움직여도 될거 같다

그래서 왼발을 밑으로 조금 내리고 몸의 균형을 잡고... 그 다음엔 배낭을 겨우 벗어서 밑으로

던져버리고.... 그러고 미끄러져 내려왔다! 살았다!

그래도 방금전까지 크게 위험할 뻔했는데도 별 느낌이 없다

ㅎㅎ

그렇게 희운각까지 내려왔다

대청봉

 

희운각 산장에 그렇게 내려와서보니 한적하고 지나는 사람도 적다

아까 내 앞을 미끄럼타고 지나갔던 그 학생들도 와 있고..

나도 짐풀고 식사 준비를했다

지난주 걸린 감기로 콧물이 사정없이 떨어지고 훌쩍이고...

그러면서 불 붙이고... 식량이랍시고 가져간 만두를 보니 그만 달라붙어서

배가 다 터져있다... 그래도 먹어야 산답시고 넣어서 끓이고...

그런데 불이 잘 안 붙는다.. 휘발유 버너를 가져왔는데 바람막이가 없으니 잘 안탄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서 빌리고... 그렇게 밥먹고...

 

여기 희운각 산장은 불도 안 들어오고 전화도 안된다

산장은 한사람만이 지키고 있고....

6시가 지나고 어두워지니 할일이 없다 그래서 침낭펴고 커버씌워서 잠을 청하고..

아래층에선 아저씨하고 그 사람 쫄병이라고 데꼬 다니는데 항상 한마디 하면

두마디한다는 그 아저씨 뷘하고 산장지기분하고 여러사람이서 소주에

고기굽는다 맛나겠다 쩝.. 그래도 달라는 소리는 하기 싫고 그냥 잠을 청하니

옆에 자던 사람도 한두시간후 깨어나 새로온 사람들과 이리저리 이야기하다가

팩소주 사와고... 이리저리 반찬으로 들고온 것들 꺼내고....

이리저리 모이고... 아래층에서 자던 사람도 올라오고...

나도 저기 떨어져 있다가 가서 끼고...

역시 이런 산장에서 사람만나는 재미도 꽤 괘안타

 

빙벽등반대회때문에 왔다가 그 대회가 연기되서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

작년 3월에 제대하고 아직 복학도 안하고 복학 해야하나 사회경험을 쌓아야하나

하고 심란한 마음에 여행을 와서 무식하게 청바지입고 그냥 산에 올라온 사람

(누구 말대로 겨울에 죽을려고 환장했다)

가게는 마눌님에게 맡기고 삼겹살 몇근하고 야채하고 싸들고 산장에 올라온

산장지기의 인터넷 산악회 동호인

삼수해서 미대 들어갔다가 졸업하고 학원강사하는 사람

그리고 미대 들어갔다 마음에 안 맞아 제적당하고 다시 제적에서 벗어나 아직도

학교 다니는 그 강사의 친구...

그리고.....

음...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이 심란해서 산에 온 발령을 기다리는 백수 (그게 나다)

그렇게 모여서 술 권하고... 이야기 이리저리 나누고...

서로 자기 고민들도 이야기하고....

어느 산이 좋으니...어느 코스로 오르면 어떻다느니...

공룡릉이 어떻다느니....

 

역시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산다

학원강사는 언제까지 그 일을 할수 있는지... 이리저리 심란할거고...

그래도 이사람이 부럽다

내가 혼자 산에 다니는건 원래 솔로 체질이기도 하지만 같이 다닐만한 마음에 맞는

사람이 없어서이기도 한데 그래도 좋은 친구가 있어 산에 같이 다니니 참 부럽다

내가 딱 마음에 맞는 사람 있으면 그 공룡릉이나 용아장성릉이나 다 다니는건데...

빙벽탄다는 사람은 헤드헌팅 업체에 있다가 다쳐서 집에서 하는 여관이니 지키고 있는데

어린 여학생들이 와서 방달라 그러고 민증보자 하면 '어유` 재섭써'하고....

'산에 오면 마음 복잡한거 사라지니 좋지만 내려가면 또 머리 복잡해지고...'

그런 소리 하고..

 

그렇게 밤은 깊었다

그러다 누가 담배피러 나가자 하고...

나보고 담배 피냐고 물어서 하루 두갑피다가 끊었다고 하니까

와~ 하고 쳐다보는 저 존경의 눈빛들... ㅎㅎ

이주일때문인지 요즘 금연이 유행이라더니

저사람들도 담배 끊는 문제로 고민 많이 했구나 싶다 ㅎㅎ

조금있다가 나도 바깥에 나가보니 몇사람이 서있다

 

그러고 하늘을 보니....

와~ 역시 설악산이다

전에도 그랬지만 설악의 밤하늘은 환상적이다

그때 10월에 겨우겨우 살아서 설악의 계곡을 내려갈때 내 앞을 밝혀주던

가로등처럼 밝던 세상에서 젤 아름답던 그 별빛들에 오늘은 휘엉청

달빛이 너무나도 크고 밝다

지리산에서도 이런 밤하늘은 못 봤는데....

그렇게 설악의 밤은 깊었다

그날 내가 공룡릉을 타려고 오래전부터 계획했다고 하니

어느 한 사람은 아 거기 길 좋다고 가라 그러고

다른 사람은 거기 혼자 가면 위험하다고 아리까리한 곳이 몇 된다고

여름에나 혼자가지 겨울엔 혼자서 처음 가는길인데 가지 말라고 하고....

그래서 갈까말까.... 오래전부터 준비했는데... 고민하다가

결정적으로 다른 사람하나가 또 나보고 가지 말라고 해서 결국 포기했다

그러고 다음날 내려오는데 전날 그 아저씨하고 그 쫄병부인이 내려가길래

'어제 마등령 타셧다고 하셨죠?' 하니

그 사람들 공룡릉릉 탔덴다 그러면서 길이 잘 나 있덴다

전날 이 사람들 말들었으면 나 혼자서 공룡릉 타는건데....

그렇게 후회하고 있는데 일기예보에서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더니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계속온다

역시 공룡릉 안타기 잘했나보다

그래도 아쉽다

가다 어찌되더라도 가슴속에 검은연기내며 타들어가는 그 무엇

그걸 잠시라도 꺼뜨리려면 그냥 공룡릉 타는건데....

 

 

2002년 2월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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