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스크랩] 바다 위에 펼쳐진 검고 푸른밭

지리산자연인 2006. 3. 6. 21:24
바다 위에 펼쳐진 검고 푸른밭
넙도 매생이
김창헌 기자  

▲ 발에 엉겨있는 매생이. 매생이 채취는 12월20일쯤부터 시작한다. 남자는 배를 몰고 아녀자
셋이 배 위에서 손을 뻗어 매생이를 뜯어낸다.
ⓒ 전라도닷컴

매생이 철이다. 김창헌
매생이는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만 먹던 음식이었다. 파래나 감태처럼 식초를 쳐 무쳐 먹지 않고 굴을 넣어 국으로 끓여 먹는다. 매생이국을 처음 먹는 이들은 대부분 입천장을 데고 만다. 매생이국은 펄펄 끓어도 김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운 사위에 매생이국 준다”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입안 가득 퍼지는 남도의 싱그러운 바다냄새’가 전국에 알려지면서 겨울 초입부터 매생이국을 찾아 호들갑 떠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매생이는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상상할 수 없다고, 입안에 부드럽게 감겨들며 칼칼한 속 시원하게 하는 데 그만이라며 식도락가들은 ‘겨울철 최고의 별미’로 손꼽는다. 바닷가의 바람과 물결이 그 안에 다 들어 있다고 말을 아끼지 않는다.
매생이가 제일 많이 나는 곳이 완도 넙도다. 전국의 40%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장흥 내저리가 30% 가량 생산해 내고 있다. 넙도는 매생이 양식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양식에 성공해 인근 해안 마을에 보급했다.

김에 엉겨붙는 쓸데없는 ‘잡태’에서 겨울철 별미로
넙도는 완도 고금도에 딸려 있는 작은 섬이다. 오씨 집성촌으로 1500년쯤 고금도에 살던 사람이 들어와 살았다. 양쪽에 날개가 달린 듯한 섬의 형태로 조류 소통이 좋다.
학교도, 공공기관 출장소도, 물건을 파는 가게도 없다. 마을 하나만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은 광주에 있는 친척집에서 살다 나중에 자취를 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 채취한 매생이를 배 위에서 작업하고 있다. 바닷물로 헹궈낸 뒤 어른 주먹 크기만한 모양으
로 다듬는대 이 한 뭉치를 ‘재기’라 한다.
ⓒ 전라도닷컴

행정상 주소는 ‘완도군 고금면 윤동리’이다. 마을 이름이 따로 없어 본섬 고금면 윤동리의 마을 이름을 빌려 쓴다. 그러나 우편물을 보내고 받을 때는 ‘강진군 마량면 넙도’를 사용한다. 섬에서 가까운 강진 마량이 생활권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자신의 배를 이용해 마량으로 장을 보러 가고 결혼식장도 간다. 작년부터 마량항에서 넙도로 들어가는 여객선 뱃길이 열렸으나 마을 사람들도 외지인도 이용하기가 힘들다. 여객선 회사측이 ‘운임 사정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승선 자체부터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넙도는 김과 미역을 기르고 고기를 잡아 생활을 해 왔다. 그러나 지금 넙도 앞바다는 매생이가 넘쳐난다. 매생이를 기르는 대나무 장대가 무수히 꽂혀 있다. 물이 나면 검고 푸른 매생밭이 펼쳐진다. 마을 주민 오영규(77)씨가 매생이 양식에 성공하고 높은 소득을 내면서 마을주민 전체가 매생이 양식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일이 없는 여름철에는 낚싯배를 운영한다.

“86년인가 87년인가 시작했어. 전에는 지주식 김발을 했는디 김이 안되고 썩고 김금도 안 좋고. 석화 단가도 안 좋은게 매생이를 해 보믄 어쩔까 생각했제. 김발 댓가지에 매생이 엉기믄 그것 뜯어다 팔고 했거든. 완도, 강진, 해남, 장흥 목포 일부. 고 사람들은 사먹고 했는게 돈이 쪼가 됐어. 그때는 광주까정은 안 올라가고 바다 사람들이  묵었제.”
매생이는 김 양식에서 쓸데없이 김에 엉겨붙는 ‘잡태’였다. 귀찮아 뜯어버리고 했으나 집에 가져가 국을 끓여 먹거나 채취한 것을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나오는 양이 적어 곧장 팔렸다. 

ⓒ 전라도닷컴
3년 실험 끝에 매생이 양식에 성공한 오영규씨

오영규씨가 매생이를 본격적으로 생산해보자고 생각한 데는 당시의 어려운 어촌 현실이 있었다.
“남의 동네 가서 빚내고 수협 대출 받고 허구한 날 한숨만 쉬었제. 김 양식 한 사람들 다 그랬어.”
산 아래 돌이 많은 ‘개착지’에 3등지로 나눠 발을 넣고 실험에 들어갔다.
“수위에 따라 (해초) 엉기는 것이 달러. 맨 위에 매생이, 그 아래 김허고 파래, 맨 아래는 파래만 엉겨. 근게 수위를 맞추믄 매생이가 엉기겄다 생각허고 실험용으로 3곳을 막아봤제. 매생이 채묘(씨를 받아내는 것)을 받아 갖고 김 길러내는 것처럼 뜯어먹는 본종(본격적으로 해초를 길러내는 깊은 바다)으로 옮겼는디 하나가 됐어. 그래서 되겄다 확신을 했제.”

다음해에는 일의 수고를 덜기 위해 개착지에서 채묘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본종에 발을 막았다. 그러나 오씨의 기대와는 달리 매생이가 전혀 엉기지 않았다.
세 번째 되던 해는 첫 해 했던 방식으로 다시 시도했다. 역시나 매생이가 엉겼다. 그러나 매생이 나오는 시기가 너무 늦었다.

“너무 늦게 올라와. 일찍 나와야 생산단가가 비싸고 돈이 된디…. 늦게 나오믄 매생이 질이 나쁘다고 상인들이 안 사가거든. 아하 시기만 잘 맞추면 되겄구나 인자 알었다 했제.”
실험한 지 4년째 100% 성공을 했다. 수위를 찾아내고 시기를 알아내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발 관리하는 법을 알아냈다. 

“그 후로 4년간 나 혼자 해먹었어. 마을 사람들한테 이것 허믄 돈 된다고 혀도 안 따라줬어. 김보다 소득이 10배는 좋았어. 근게 내가 자꾸 설득을 했제.”
마을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에 김발 반 매생이발 반을 막으며 매생이 양식을 시작했다. 오씨의 말처럼 김 양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소득을 올렸고 주민 모두가 매생이 양식에 참여했다. 장흥 내저리를 비롯해 인근 지역에서 넙도에 와 양식 방법을 배워 갔다.

마을 살려 낸 귀하고 귀한 보물
매생이는 10월1일쯤 채묘지(개착지)에서 매생이 포자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김 양식처럼 인공 채묘하는 것이 아니라 발을 담가두면 자연적으로 씨가 엉긴다. 돌 틈에 있던 매생이 씨가 발에 달라붙는 것이다. 주민 오일곤(38)씨는 “채묘지는 아무 곳에서나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채묘지가 없는 마을은 매생이 양식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말한다.

넙도의 채묘지는 씨가 잘 되는 1등지에서 9등지으로 나뉘어 있다. 또한 각 등지는 17개로 나뉘어 있다. 마을 17개  가구 수에 맞춘 것이다. 주민들은 1등지에서 9등지까지 한 곳씩 9개의 채묘지를 공평하게 나눠 가진다.
“9월에 상자에 번호 적힌 종이를 넣고 추첨을 해요. 1등지에서나 9등지에서나 잘 되고 덜 되는 곳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죠.. 두 가구는 늙은 할머니만 살아요. 매생이를 못 하죠. 그 자리는 다른 사람이 그분들에게 세를 냈고 양식을 하는 거죠.”

▲ 넙도 주민 오일곤씨가 매생이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질 좋은 매생이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수심 온도와 시기에 따라 발을 내려주고 올려주는 '수위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전라도닷컴

▲ 매생이밭.
ⓒ 전라도닷컴

잘 되는 1등지에 최대한 많을 발을 겹쳐 생산성을 높인다. 포자는 15일에서 20일 정도면 엉기고 그것을 본격적으로 길러내는 본종에 옮긴다. 긴 장대로 바다에 말뚝을 받고 대발을 고정한다.
“만조 때 두 사람이 배를 타고 채묘지에서 걷은 발을 본종에 펴요. 10일 정도 작업하는데 예전에 김발 하던 자리죠. 채묘지는 추첨을 하지만 본종은 ‘이녁 자리’(자기 땅)가 다 있어요. 발을 막을 때는 매생이가 잘 자랄 수 있는 수위를 잘 맞춰야 하는데 우리 마을은 바닷물이 선창에 닿을 때 발을 고정해 맞춰요.”

매생이는 물이 빠지며 발이 드러나 햇빛을 받고 물이 들면 바닷물에 잠겨 영양분을 섭취하며 2달 정도 자란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또한 수위 조절이다. 수심 온도와 시기에 따라 발을 내려주고 올려주고 해야 한다.
채취는 12월20일쯤부터 시작한다. 남자는 배를 몰고 아녀자 셋이 배 위에서 손을 뻗어 발에 엉긴 매생이를 뜯어낸다. 작업 시간은 발이 물에 떠 있는 시간에 이뤄지고 물때에 따라 하루 한 차례 두 차례 작업을 한다.

채취한 매생이는 포구로 가져와 바닷물로 헹궈낸 뒤 어른 주먹 크기만한 모양으로 다듬는다. 이 한 뭉치를 ‘재기’라 한다. 재기로 만들어 놓은 매생이는 마치 여자의 윤기 흐르는 뒷머리 모양하고 똑같다. 
판매는 배를 타고 강진에 나가 중간상인에 넘기기도 하지만 주로 전화상으로 이뤄진다.
“매생이 날 때가 되믄 전국에서 전화가 와요. 개인한테도 오고 식당에서도 오고 상인들한테도 오죠. 통장번호 불러주고 택배로 보내 주죠. 찾는 사람이 많아 물량 대기가 힘들어요.”

바다를 생존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매생이는 자식만큼이나 값진 것이다. 넙도 사람들은 높은 소득원이 된 매생이 양식을 처음 시도하고 이웃 마을에 기술을 보급했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바다는 차고 바람은 거세지만 매생이의 상큼한 향기 속에 일하는 맛이 절로 난다.
“매생이 아녔으믄 진짜 어떻게 살아야 헐지 망막했을 거예요. 김 할 때는 빚만 늘어가고 자식들 키우고 살아갈 대책이 없었어요. 근디 매생이가 우리 마을도 살리고 이웃 마을까정 살리고 했잖어요. 참말로 귀하고 귀한 것이지라.”

출처 : 촌라이프
글쓴이 : 촌여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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