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

[스크랩] 사라진 토종닭 (퍼온글)

지리산자연인 2009. 8. 17. 23:56


'흰 닭을 삼 년 기르면 귀신 된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십 년 묵은 닭을 기르고 있었다.

하룻밤에는 이 닭이 요망스럽게도 갑자기 주인에게

"밤새 안녕히 주무십시오"라고 인사를 했다. 주인은

깜짝 놀라 이 닭이 정말 귀신이 되려나 보다 하고 문

틈으로 닭 둥우리를 지켜보았다. 밤이 으슥해지자

둥우리에서 뛰어내린 닭은 몇 번 재주를 부리더니

예쁜 계집이 되었다. 계집은 집을 나가 산으로 올라

갔다. 주인이 살금살금 뒤를 따라가 보니 닭은 뒷산

여우 굴로 들어갔다. 귀를 기울여 엿들으니 계집이

여우에게 "우리 주인집에 내려가 세 번만 울어 주면

지금까지 내 자식들과 알을 다 먹어치운 주인을 죽

일 수가 있으니 도와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여우는 그 부탁을 듣더니 "그 까짓 거야 어렵지 않지

만 내가 울 적에 절구에 찧은 붉은 팥잎이 내 귀에

박히면 죽고 말아"하며 난처해했다.

이 소리를 들은 주인은 재빨리 집으로 내려와 붉은

팥잎을 절구에 찧어 손에 쥐고 숨어 있었다. 얼마 지

나지 않아 여우가 집 앞에와 목을 빼고 울려고 하자

쫓아나가 팥잎을 귀에 넣었다. 여우는 그곳에서 곧

죽어 버리고 계집으로 둔갑해 있던 닭은 곧바로 닭

으로 변해 둥우리로 올라갔다. 주인은 "요놈의 닭아

너를 씨닭이라고 오래 살려 두었더니 나를 죽이려

들어?”하며 목을 졸라 잡아먹어 버렸다.

임진왜란 때에 천혜의 요새인 문경새재를 버리고 충

주 달천에서 배수진을 치고 적과 싸우다가 순직한

신립 장군은 스무살 무렵 과거를 보려고 문경새재를

넘다가 밤마다 나타난 괴물에게 가족을 잃고 혼자

남은 한 처녀를 구해 준 일이 있었다.

신립 장군은 그날 밤에 처녀를 지키며 밤을 새우다

가 바람을 일으키며 나타난 괴물과 싸워 그 괴물을

잡아 죽였다. 죽여 놓고 보니 그 괴물은 집에서 기르

던 늙은 닭이었다.

그 처녀는 신립 장군을 사모하여 함께 살기를 바랐

으나 신립 장군은 오로지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목

적이었던 터라 울며 매달리는 여자를 뿌리치고 떠났

다.

여자는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 불에 타 죽었는데, 훗

날 신립 장군이 일본 장군 고니시와 싸워 지고 탄금

대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자결한 것은 한을 품고 죽

은 처녀와 닭의 귀신에 씌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나라는 닭의 나라

닭은 이처럼 우리 선조들에게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

기도 했다. 그것은 신통력 있는 짐승이라는 관념에

서 나온 얘기일 터이다. 실제로 우리 선조들은 닭을

매우 사랑하여 거의 집집마다 닭을 길렀고 달걀이나

닭고기를 상당히 귀하게 여겼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이 수 천년을 길러 왔던, 조선닭

이라고도 부르는 토종닭은 지금 거의 남아 있지 않

다. 예부터 우리 나라는 좋은 닭이 나는 나라로 알려

져 있다. 무엇이거나 우리 나라의 것은 깎아 내리고

멸시했던 중국사람들도 조선닭에 대해서는 한결같

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의 옛 역사책인 <삼국지>위지 동이전을 보면

한(韓)나라에 꼬리가 긴 아름다운 닭이 있다고 하였

고 <후한서>에도 마한의 꼬리 긴 닭은 꼬리가 5척이

나 되는데 진귀하고 아름답다고 하였다.

대략 중국 사람들은 아름답기로는 마한의 긴 꼬리닭

을, 털빛이 곱기로는 백제닭을, 고기맛이 좋기로는

평택닭을 으뜸으로 꼽았다.

특히 우리 나라 닭은 고기 맛이 좋기로 이름나서 성

미 고약한 중국사신이 우리 나라에 와서 닭머리탕

대접을 받고는 그 맛에 홀려 할 말을 못하고 돌아갔

다는 얘기가 있다.

약효도 우수하여 명나라의 본초학자 이 시진은 <본

초강목>에서 '중국사람들은 조선닭이 좋다하여 이

를 구하러 조선으로 나들이를 간다'고 기록하였다.

조선닭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닭들의 시조가 되

었는데, 일본 사람들은 조선 닭의 후손들을 열여덟

가지로 분류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일본의 토

종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꼬리 길이가 5미터가 넘

는 긴꼬리닭, 울음소리가 25초 동안이나 지속된다는

동천홍(東天紅) 같은 닭들이 모두 조선닭의 후예이

다. 우리 나라 닭은 그 가짓수도 많아 대략 20여 종

쯤이 있었던 것 같으나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두세 종뿐이다. 옛날에는 침계라는 아주 작은 닭이

있어서 속이 빈 베개 속에 이 닭을 넣고 자면 자명종

처럼 울음소리로 새벽을 알려 준다고 했고, 고려시

대에는 궁중에서 세 종류의 닭을 길렀다고 했다.

시계가 없던 때라 닭울음으로 시간을 알았는데 일명

계, 이명계, 삼명계로 부르는 닭이 있어 이 닭들은

저마다 자시와 축시와 인시에 정확하게 울어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이것 말고도 훌륭한 싸움닭이 조선에 많다는 기록도

있다. 이같은 진귀하고 우수한 닭들이 하나도 옳게

전해지지 않은 것은 퍽 애석한 일이다.
 
왜정시대 거치며 토종닭은 자취를 감춰

우리 나라의 재래종 닭이 점차 자취를 감춘 것은 일

본의 침략과 때를 같이 한다. 간악한 일본인들은 한?

일합방 이전부터 조선의 재래종 가축과 곡물들의 씨

앗을 말살하려는 종자멸렬 정책을 폈다.

한일합방 직전에 우리 나라에서는 일본 사람들이 시

키는 대로 권업모범장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일본에

많이 보급되어 있던 백색 레그혼과 나고야, 플리마

종을 들여와 민간에 나누어 주고 기르도록 장려했

다. 그러나 곧 나라가 망하고 일본이 우리 나라를 다

스리게 되자 뜻있는 백성들과 우국지사들이 궤그혼

종과 나고야종을 왜닭이라고 부르며 일본 사람을 보

듯이 싫어했고, 울긋불긋한 조선닭을 기르던 사람들

이 '본디 흰 닭은 귀신으로 둔갑을 잘 한다'는 말을

퍼뜨려 사람들이 개량종 닭을 싫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알을 많이 낳고 덩치가 큰 개량종 닭은 차츰

그 숫자가 불어나 1930년대에 6백만마리, 2차대전

무렵에 7백만 마리로 늘어났다. 1957년에 나온 한 통

계에 따르면 나라 안에 있는 1천4백만마리의 닭 가

운데 조선닭이 6백만마리쯤이고 개량종 닭이 8백만

마리쯤이나 되어 개량종 닭이 65%를 넘게 차지했다.

1960년대 이후 양계 봄을 타고 조선닭은 급격히 줄

어들어 지금은 나라 안에 순수한 혈통을 지닌 재래

종 닭은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할만큼 그 씨가

끊기게 되었다.

토종의 우수함과 중요성을 뒤늦게 서야 깨달은 요즈

음에 와서 토종닭 사육에 힘을 쏟는 사람들이 나타

나고 유원지 같은 곳에 토종닭을 요리해 준다는 글

을 써 붙인 음식점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으나 요즈

음 그 사람들이 '토종닭'이라고 내세우는 닭을 우리

조상들이 수 천년 전부터 길러 오던 재래종 닭이라

고 보기는 어렵다. 거의 모두가 재래종 닭파 개량종

닭 의 잡종인 '튀기'들일 뿐이다.
 
母性 강해 몸바쳐서 새끼 돌보는 어미 닭

조선닭은 그 성질이나 생김새가 개량종 닭과는 사뭇
다르다. 개량종 닭은 어느 종류거나 알을 제대로 품

지 않고 새끼를 잘 돌보지 않는 편이지만 조선닭은

새끼 욕심이 많아서 알을 품으면 매우 열심이고 병

아리가 깨어 나오면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지극하

다고 할 정도로 돌본다.

'암탉이 제 새끼를 품안에 모으듯 한다'는 말은 지극

한 모성을 상징하는 말이다. 다산 정약용도 조선닭

의 모성보호본 능에 감격하여 '어미 닭과 병아리'라

는 시를 지었다.
 
         목털은 곤두서서

         고슴도치를 닳았고
        
         제 새끼 건드리면

        꼬꼬댁 쪼아대네…

         낟알을 찾아내면
 
         쪼는 체만 하고

        새끼 위한 마음으로

        배고픔을 참네
 
낟알을 찾아내면 쪼는 체만 하고 새끼가 먹도록 남

겨 둔다는 표현은 정약용의 관찰력이 매우 예리하였

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당시 엄격한 유교

사회에서 닭의 모성이 윤리의식을 고취시키는 한 상

징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농촌에서 병아리를 가장 많이 해치는 것은 쥐와 새

매와 까마귀다.

특히 까마귀는 사람 죽은 곳에 나타나는 불길한 새

이기도 하려니와 병아리를 잘 나꿔 채는 얄미운 새

이기도 하다. 어쩌다 병아리를 거느린 어미 닭이 까

마귀를 발견하면 급하게 새끼들을 불러 품안으로 모

으거나 안전한 집안으로 피난을 시키지만, 어미 말

을 안 듣는 병아리가 있어 까마귀가 낚아채는 일이

생기면, 어디에 그런 힘과 민첩함이 숨어 있었던지

대번에 하늘로 치솟아 크게 싸움을 벌인다. 사람보

다 되려 새끼에 대한 사랑이 더한 짐승이 조선닭이

아닌 가 싶다.

암탉의 새끼 욕심보다 더 자랑할 만한 것이 수탉의

고운 생김새와 맹렬한 투쟁 정신이다. 개량종 닭은

벼슬이나 몸짓만 달랐지 암컷이나 수컷이나 털빛이

비슷하지만 조선닭은 암탉과 수탉의 털빛이 유별나

게 다르다. 암탉은 꼬리털만 좀 검고 몸 털은 황토색

에 밤색 점이 박힌 단조로운 빛깔이지만 수탉은 오

색이 찬란하여 장끼와 견줄 만큼 아름답다. 벼슬은

주홍 빛 맨드라미처럼 우뚝하고 목에는 붉은 빛과

노랑 색 털이 적당히 어울려 싸였고 몸은 갈색 털로

덮여 있다. 날개 깃은 까만 색이고 목털과 비슷한 색

깔의 털이 날개 깃을 감싸고 있다. 꼬리털도 날개 깃

과 같은 빛깔이면서 그보다 훨씬 길고 찬란하게 아

름답다.

이놈은 몸을 치장한 만큼 암컷에 대한 욕심이나 정

력도 대단하여 암탉 열 마리쯤을 거느리고도 이웃집
암탉을 넘보고 먹이나 우렁찬 복청으로 유혹하기 일

쑤다. 또 제 암컷을 넘보는 다른 수탉을 만나면 온통
피투성이가 될 만큼 치열한 싸움을 벌여 기어이 승

부를 보고야 마는 지독한 싸움 근성도 가졌다.
 
고소하고 졸깃졸깃한 고기 맛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이란 속담이 있어 서로 무관

심함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지만 조선닭은 제 식구들

을 잘 알아본다. 어쩌다 낯선 닭이 제 집에 들어오면
온 집안 닭들이 다 달려들어 금새 피투성이로 만들

어 버리고 낯을 익힐 동안에는 며칠이고 기를 못 펴

게 텃세를 부린다.

고기가 귀했던 옛사람들에게 조선닭은 우리 민족이

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던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따로 모이를 주지 않아도 마당이나 집 주변을 쏘다

니며 지네 굼벵이 지렁이 메뚜기 구더기 따위의 벌

레와 솔씨 등 갖가지 곡식의 낱알과 식물의 씨앗들

을 주워 먹으며 자라서 살이 호지게 붙은 조선닭. 가

난한 서민들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고기 밑천

이었다.

그 때문에 손님이 오면 닭을 잡아 대접했고 며느리

가 아들을 낳으면 수탉을, 딸을 낳으면 암탉을 잡아

미역국을 끓여 먹이는 풍속이 있었다. 조선닭의 고

기 맛은 요즈음 많이 먹는 양념통닭이나 캔터키프라

이드치킨 따위와는 견줄 수도 없을 만큼 맛이 있었

다.

최근에는 개량종 닭의 고기 맛을 좋게 하기 위해 항

생제와 성장촉진제를 먹이지 않고 인삼 해초 비타민
같은 특수사료를 먹이고 철망에서도 해방시켜 놓아

먹인 닭과, 동맥경화의 원인이 되는 콜레스테를의

수치를 낮춘 특수계란 따위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지

만 그것들의 맛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조선닭을 당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 없는 토종닭, 연변에는 많아

조선닭은 덩치는 작지만 고기 맛이 고소하고 담백하

며 졸깃졸깃한 맛이 일품이다. 중국 연변에 사는 조

선족들은 아직까지 개량종 닭보다 조선닭을 많이 기

르고 있는데, 연변대학의 류충걸 교수는 "연변에서

조선닭을 먹다가 한국에 와서 닭고기를 먹어보니 맛

이 없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

또 예전에 독일인 교수와 함께 조선닭을 독일식으로

요리해 먹어 보았더니 그 독일인 교수가 조선닭으로

요리한 것이 독일닭으로 요리한 것보다 맛이 휠씬

뛰어나다는 얘기를 하면서 토종 가축이나 곡식 야채

과일들의 맛이 다른 나라에서 난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이 '이 땅만이 가 진 신비이며 보물'이라고 했다.

토종계란 역시 노른자위가 개량종 알보다 많고 고소

한 맛이 있어 연변에서는 토종계란이 훨씬 인기가

있다고 한다. 조선닭은 약으로도 신비하다고 할만큼

쓰임이 많고 효과도 좋다. 중국 사람들은 약용 닭은

조선닭이 제일이라 하여 일부러 우리 나라에 와서

닭을 자주 구하여 갔다.

<동의보감>에서는 붉은 수탉, 횐 수탉, 검은 수탉,

오골계로 나누어 각각 그 효험을 설명하고 있다.

붉은 수탉은 여자의 대하(帶下)를 다스리며, 몸을 보

하고 독을 없애며, 상서롭지 못한 것을 물리치며 목

을 매어 혼절한 것과 벌레가 귀에 들어가 생긴 병,

연주창을 다스린다고 하였고 횐 닭의 발톱과 뇌는

난산에 도움을 주고 검은 닭의 쓸개는 눈이 어두운

것과 피부병을 치료하며, 염통은 오사(五邪)를 다스

리고, 벼슬의 피는 젖을 잘 나오게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검은 암탉의 날개는 어린아이가 밤에 우는

것을 고치고, 날갯죽지는 하혈을 막고 대머리와 부

스럼을 고치며, 닭똥은 중풍으로 말을 못하는 증상

을 치료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닭고기는 혈압이 높은 사람이나 심장병, 신

염(腎炎), 간염(肝炎), 피부병이 있는 사람이 먹어서

는 안된다. 대개 혈액형이 O형인 소양체질의 사람도

닭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몸에 열이 생기거나

풍(風)을 일으킬 수가 있다.

닭은 민간이나 전문 의약인들이 구급약이나 보신약

으로 널리 다양하게 썼는데, 그 대략을 알아보면 다

음과 같다.
 
민간약으로 됐던 토종닭의 쓰임새

수탉의 벼슬은 익사한 사람을 소생시키는 효력이 있

다. 벼슬을 잘라 나오는 피를 코 입 주위, 인중에 바

르고 피를 목구멍으로 넘기면 곧 깨어난다.

닭벼슬의 피를 계관혈(鷄冠血)이라 하는데, 중국 문

헌인 <본초비요>에서 크게 놀란 증세와 양기부족에

효과가 있고 몸 안의 독을 풀어 준다고 하였다.

닭벼슬은 정력제로 이름난 비약(秘藥)이기도 하거니

와 어린이의 경기(驚氣), 갖가지 피부치 독창(毒瘡)에

신기한 효과가 있다.

닭똥집 속의 노란 부분은 계내금(鷄內金)이라고 한

다. 이것을 오래된 기와 위에 얹어 태운 다음 가루를

내어 먹으면 요도염이나 전림선염에 효과가 좋다.

부스럼 독창 종기 등에 발라도 잘 낫는다.

닭똥의 윗부분 하얀 것은 계분백(鷄糞白)이라 부르는

데 토종닭의 계분백은 신장암, 심부전 ,신장염, 전립

선염 등을 치료하는 신약(神藥)이 된다. 민속의학자

인산 김일훈 선생은 계분백에는 석회정(石灰精)이 있

어 계분백과 신곡(神曲 : 누룩), 맥아(麥芽)를 함께 볶

아 가루 내어 우려낸 물이 신부전 신장암 방광암 전

립선암을 고치는 최고의 약이라 하였다(자세한 사항

은 <신약본초>6백98~6백99, 7백83~7백84쪽 참

고).

계분백을 불에 태우면서 그 연기를 생인손, 독창, 족

지암, 뾰루지 같은 곳에 쏘이면 환부에서 물이 흐르

면서 신기하게도 효과가 크다. 이를 닭똥훈증이라

부르며 이 방법으로 치질 자궁암 등도 완치가 가능

하다.

닭똥훈증 방법은 닭똥의 횐 부분을 태워 연기가 나

면 양철통을 거꾸로 씌우고 양철통에 구멍을 내어

그곳으로 나오는 연기를 쐬는 것이다. 앞으로 난치

병 치료에 연구 응용해 볼 만한 가치가 큰 치료법이

라 할 수 있겠다.

자궁암 유방암을 닭똥 무더기 속에 마스크를 하고

속옷만 입고 들어가 목만 내 놓고 30분씩 땀을 내기

를 3~5일쯤 해서 고쳤다는 사람이 있다. 아무튼 닭

똥의 종기와 암종 치료효과는 신효하다.

여기에 쓴 것 말고도 닭이나 달걀을 이용하여 갖가

지 질병을 고치는 방법들이 무수히 많다. 잘만 이용

하면 닭 한 가지로 만 가지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그 쓰임이 다양한 것이다.
 
이제는 조선닭 되살리는 일에 힘써야

아무튼 조선닭은 약용으로나 고기 맛으로나 다른 어

떤 것으로 보건 그 가치를 함부로 말할 수 없을 만큼

우리 겨레에게만 주어진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러나 속담에 나오는 '소경 제 닭 잡아먹기'라는 말

대로 우리는 씨닭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다 잡아먹

어 버렸다. 닭의 수는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조선닭

은 완전히 없어졌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절실한 일은 옛 조선닭과 가장 닮은 놈이라도 찾아

내어 그것을 되살리는 일이다.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병지방리에 사는 이철규(62)씨

는 할아버지 때부터 기르던 조선닭을 지금까지 보존

해 오고 있는 사람이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생

겨나고 또 그가 키우는 조선닭들이 널리 퍼져 우리

농촌 어디서나 아침이면 조선닭의 우렁차고 목청 좋

은 울음소리와 함께 잠을 깨고, 새끼들을 오손도손

데리고 집 주위의 땅을 발로 파헤치고 있는 암탉을

흔히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낮닭 우는소리를 듣고 문득 큰 깨달음을 얻은 서산

대사의 오도송(悟道頌)을 소개하며 졸필을 마치고자

한다. 원하노니 모든 사람들에게 이 짧은 닭 울음이

오도(悟道)의 기연(機緣)이 될진저.
 
털은 희었으나 마음은 안 희는 것

옛날 사람이 이미 말하였네

이제 닭이 우는소리를 듣고

장부의 할 일 모두 마쳤네

출처 : 닭 자료실
글쓴이 : 오정근(NATURA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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