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집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시나 엮음/다산초당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남지용 북백석이라 하면 억지 춘향일까?
토속적인 향이 넘쳐는 시들이 문득 그런 비유를 떠올리게 한다.
세상의 모든 시집은 시인의 거울이다.
시인은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거울에 새겨 놓았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
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흰 바람벽이 있어)
시인의 그러한 슬픔으로 가득찬 사랑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잘 표현되어 있다.
눈이 푹푹 나리는 그날 밤
가난한 내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나타샤에게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고 하지만 끝내 나타샤는 나타나지 않는다.
시인은 또 다른 사람을 찾아 <통영>으로 떠난다.
거기서도,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남자에게로 떠나는 냉혹한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난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든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통영 2)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내가 생각하는 것은)
절망한 시인은 중국으로 떠난다.
사랑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도피에 다름 아니었다.
세상 어딘들 사람이 살지 못할 곳이 있으랴.
사람이 사는 그 어딘들 작은 기쁨 하나 없으랴.
시인은 그 곳에서
아전노릇을 그만두고 밭을 노왕한테 얻(귀농)어 농사를 시작하며 기대에 차 있다.
나는 가슴이 이 무슨 흥에 벅차오며
노왕은 밭을 주어 마음이 한가하고
나는 밭을 얻어 마음이 편한하고......(귀농)
시인은 국수, 특히나 메밀 국수를 좋아했었나 보다.
<북신>, <야우소회>, <산숙>, <야반>, <백화>, <개> 등 곳곳에서
메밀 국수에 대한 구절이 빠지지 않더니만
아예, <국수>라는 이름의 찬가마저 실어 놓았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
또 수육을 삶은 육수국 내음새 (......)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긴 겨울 밤 뜨거운 육수에 담아낸 국수와 동치미국을 곁들여 먹고 싶다.
시인은 거칠고 토속적인 언어들을 섬세하게 엮어 내고 있다.
(......) 밤이면 무엇이 기와골에 무리돌을 던지고 뒤우란 배나무
에 쩨듯하니 줄등을 헤여달고 부뚜막의 큰솥 적은솥을 모조리
뽑아놓고 재통에 간 사람의 목덜미를 그냥그냥 나려 눌러선
잿다리 아래로 처박고(외갓집)
그의 시들은 분단의 아픔으로 인해 한때 잊혀졌던 때도 있었다.
북한에서 1960년대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던 시인이
최근 1995년에 팔순을 넘어 사망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그는 눈을 감는 날까지 나타샤를 애타게 그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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