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오셨다
손에는 꾸러미를 하나 드시고 오셨다
아마 잔치집에서 자식들 주시려고 떡하고
전을 싸서 가져오신
듯...
색색의 떡들이 나온다
추석인데도 집에 못가는 아들을 위해서
살아계셨을 때처럼 그렇게 떡을 싸들고 설악산 산속으로
찾아오셨다
추석 이틀전 아저씨께는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선
설악산으로 올랐다
집에 마지막 간건 오월 하순에 내 핸펀으로
어떤
인간들이 내 닭장 재건축 들어간다고 그거 재건축 동의 안해주면
매수청구권 행사한다고 협박을 해서이다
일년전 사둔게 갑자기
재건축이니 한다
전세금 빼줄 돈도 없어서 내 평생 소원 내집에서 큰 대자로 뻗어서 자는것도
못하고 있는데 협박을 하니 할수없이
설위성도시로 가서 해줬더니
그거 순 협박일 뿐이었다 띠부럴...(^^*)
백담사에서 오르려니 직원이 텐트는 안된다고 하는걸 인적사항
쓰고선 오르다
백담산장을 지나 영시암 그러다 길을 꺾어 오세암으로
향한다
몇분은 봉정암에서 내려왔다고 그 길 참 험하다고 하신다
가다가 힘들어 쉬고 있는데 어느 덩치좋고 사람좋게 생긴 젊은 스님이
오시길래 오세암이 얼마 남았냐고 물으니 잘 설명해주신다
여기 설악산 스님이 아니셨구나...
늘 그렇듯이 설악산을 오를때면 운수행각(雲水行却)에 나선 스님들과
마주치게 된다
오세암 넘어가는 고개에서 옆으로 사람다닌 자국이 보여서 들어가니
바위뒤로 텐트친 자국이 보인다
오늘밤은 여기서 보내야겠다
식사로는 내 특기인 밥과 찌개를 한번에 넣고 끓여 버리는 속칭 '개밥'을
끓여먹는다
쌀 씻어서 라면도 반쪼개 넣고 스프에다가
김치에다가... 그리고 이것저것
넣고 밥을 해서 먹는데 시간도 절약되고 물도 절약된다
대신 꼭 개밥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낄낄거린다
다음날 오세암 지나 마등령으로 오르니 계곡에서 젊은 스님들 몇분이
헉헉거리며 나를 지나 올라가신다 힘도 좋으셔라.
열심히
올라가니 위에서 쉬고 계신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공룡릉 넘어 대청까지 갑니다'
공룡릉만 다섯시간이라는데 진짜 힘도
좋군..
옆에 앉아서 깎아주는 배도 얻어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걸 만행이라고 하나? 수행의 하나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거 말이다
운수행각이라고도 하고...
밥없으면 탁발도 하고.. 잠 잘곳 없으면 근처 절간에서 하룻밤 신세지고...
무소유의
행복....
속세서 공부 많이 한듯한 분, 꼭 여자같이 생기신 분, 속세서 술 많이 드셨을 것
같이 생기신 분...
백담사
스님들이라고 했다
부럽다... 나도 따라가서 머리깍고 불경욀까나?
니체가 그랬지... 불교는 실증적인 종교라고...
기독교처럼 신을 중심에 두고 인간을 거기에 종속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고뇌를 풀기위해 집착에서 벗어나 해탈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
ㅋㅋ
내가 기독교 믿기 힘든거는 체질적인 것도 있지만
국민일보에서 어느 유명한 사람이(전도사던가? 육이오때 월남했는데 장님에 여기저기
불구에...)
십일조 하지 않으니까 다리부러진다고...
그래서 나 다리 부러지기 싫어서 아예 안간다
아니 어쩌다 밥
얻어먹으러 간거 빼놓곤 안갔다 -_-
그 험하다는 공룡릉 나중에 넘으려고, 아니 사실은 설악산서 추석 연휴 보내려면
천천히 돌아다녀야 하므로 스님들과 헤어지다
그
스님들 못 쫓아간건 난 병뚜껑 빨간 술(진로)하고는 빠이빠이 못하니까이다
마등령서 밥묵는데 이리저리 사람들이 지나간다
다들 공룡릉 탓거나 타러 가는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 3시간 반 걸렸단다
그래서 나도 그냥 공룡릉 탓다
가다가 길 엉뚱한데로 들어서 가야동으로 빠질뻔했는데
저어기 지나가는 사람한테 길을 물으니 거기 어디냐고 빨리 이리 오라고 한다
잘못해서 가야동으로 가서 고생 무지할뻔 했다
그래봐야 죽기밖에 더하겠나? 추석때 집에도 못가는 인생...
그렇게 공룡릉을
넘었다
갱치 쥐긴다 역시 이름값을 한다
그러고셔 희운각에 도착을 하니 뭐 그냥 거기서 텐트치고 자기도 뭐해서 걍 내려갔다
5시간 공룡릉 거리 3시간 정도하고 3시간 하산거리 2시간하고...
나도 산사람 다됐다 25키로는 될 짐을 지고 그렇게
다녔으니...
그렇게 하산해서 추석을 속초서 보냈다
추석 다음날 택시로(윽 거금 이마넌 들었다) 미시령으로 올랐다
미시령에서 대간길을 따라 올라간다
한두시간만에 샘터에 도착
오늘밤은 어디서 잘까하고 둘러보니 샘터 주위에 대간 종주했던 사람들이
텐트쳤던 자국이 있다
거기서 잠시 서있는데 등산객들이 올라온다
어느 남편
'여기서 텐트치고 하룻밤 잤으면 좋겠는데...'
그 부인
'아니 몇시간이면 올라올거 왜 아까부터 자꾸 텐트 얘기는해??!!'
거 참...
그 남자는 원래 우유부단한 성격인가보다
어렸을때부터 야단을 많이 맞고 자라서 기도 못펴고 자랐을거고..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세상에서 이리저리 잽 잽 잽 스트레이트를 얻어맞다 보니
더욱 기가 죽었을거고...
그러는 남편이 답답해
아내는 점점 그런 남편을 무시하게 되고...
그러면 애들까지 덩달아 아버지를 무시하게 될거고...
왜 사냐??
아지메요
남편 무시하고 집구석 아~주 잘 될겁니다요
남편분은 자기 하는일에 대해 긍정해줄 것을 바라고 있었을뿐인데..
그리고 아제요
그냥 주무시고 싶으시면 마눌님이 뭐라카든 걍 나 오늘 여기서 잔다
너 갈테면 가고 여기서 잘테면 자라!
그러면 되는거지 뭘...
걍 텐트 들고 오셔서 함 주무이소
그때 그 남자가 내게 묻는다
'어디로 가십니까?'
'저요? 전 오늘 여기 샘터 주위에서 하룻밤 자려고요'
부러워하는
눈치...
내가 저래서 여태 혼자다
글쎄...
다시 생각해보니 이리저리 싸우고 지지고 그렇게 사는것도 괘안타는 생각도 든다
글쎄...
다시 생각하니...
마눌과 새끼는 중력의 정령(Spirit of the Gravity)...
내 맘대로
머리와 발로 춤을 잘 추기를 방해하는 것
자유로이 훨훨 날아가지 못하게 땅으로 끓어내리는 추..
그날 거기서 잠시 텐트치고 있다가 아직 날도 안 어두워졌고...
다시 짐꾸려서 올라갔다
역시..
내 기대에 맞게 신선봉 꼭대기 쪽에 공터가 있었다
공터 없었으면 어두운 길을 대간령까지 갈 뻔했다
백두대간에서 공터라 하면 거의 대개 헬기장이다
주위엔 무너진 암봉들이 비석들처럼 너덜로 쓰러져 있었다
추석 다음날 신선봉 꼭대기는 휘엉청 달이 밝았다
왜 설악산 달은 늘 저리도 클까?
달까지 40만키로 내 발로 10만시간을
걸어야 닿을수 있는 거리...
고작 1000미터 더 올라왔다고 저리 큰걸까?
아니면 속세의 때가 덜 끼어서 그런가?
커다란 너덜바위 위...
하늘엔 보름달..
저 멀리 용대리서 올라오는 자동차의 불빛들...
저 멀리 속초 앞바다에선
오징어잡이 불빛들....
제길 소주를 안가져왔군...
신선봉과 울산바위
2002년 추석무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