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중학교 일학년 때 쓴 글이다
하하
그때 우리 큰 형이 뭐 지금도 그랫지만
펜팔을 했다
가요책 뒤에보면 나오는 펜팔을 구한다는
주소들을 보고 열심히 편지를 쓰곤했다
내용이..
'어두운 밤 이 밤도 **님 생각하며 펜을 듭니다'
'어느덧 가을이 깊어져 낙엽들이 하나둘 쌓이네요'
주로 이런 내용이었다
좀 유치한 그런 내용들...
그런 내용의 편지들을 썼다
주로 소녀취향의, 그렇고 그런 글들...
그렇게 쓰다가 글발이 딸리니까 나보고도
그런 글들 쓰라고 했다
^^
깊은밤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펜을 듭니다...
제 마음 편지에 띄어 멀리 계신 님께 보냅니다
뭐 우리형이야 장남이랍시고 형제들에게 폭군이었고
몇 대 얻어맞지 않으려면 그냥 쓰는수밖에 없었다
그거 보구 형 친구는 또 얼마나 웃던지....
하하
그래서 글 쓰는걸 싫어했다
괜찮다는 글들도 결국 그렇고 그런 글들 같아서...
이름 붙이자면 '김일병 고참편지 대필체'
주로 군대가서 원초적 본능으로 돌아가서 쓰던 그런 편지들
누구나 한번씩은 그런 기억들이 있을거다
먹는거 따뜻한거 자는거
그리고 여자들에 대한 호르몬의 발광 또는
사제인간(민간인 특히 여자)들에 대한 그리움...
그래서 편지들을 썼다
뭐 저녁에 시간 있을때 펜팔란에 올라온 주소보고
열심히들 쓴다
못 쓰는 사람들은 쫄병들 동원해서 쓰라고 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이 쓴 글을 원본으로 해서
글자하나 안 틀리고 베껴쓰고...
지금은 멜로 보내는 시대니까
간단히 복사해서 보내면 되니 쫄병들 고생이 덜 하겠다
어느땐 학교있는 친구에게서 그 과 학생들 주소록 가져와서
여자이름한테는 무조건 서너명씩 편지를 보내다가
남학생들이 받기도 하고 여학생들이 편지왓다고 자랑하다가
내용이 똑같아서 베낀거 들통나고....
또 어떤 친구는 어느 여고생이 편지로 자기 힘든 얘기 하고 그래서
별 관심은 없었지만 용기내라는 식으로 편지보냈더니....
그 다음주에 부모님 데리고 잔뜩 싸들고 면회를 왔다
'이 분이 그 분이에요'
^^;;;
김일병 고참 편지 대필체도 너무 심각하게 쓰면 안된다
형은 아직도 그런 편지를 쓴다
30대 후반에 나이는 들어가고 특히 가을이니 지금도 열심히 쓴다
형수도 안다
나보고 하는 말이 ....
'수준이 좀 그렇죠?'
아직도 소녀들에게나 쓰는 그런 편지를 쓰다니...
'가을비 내리는 날 가만히 젖은 은행나무 잎들이 깔린 길을
가벼운 팝송을 들으면서 커피잔 들고 내려다 봅니다'
더 으아한거는 그런 편지 지금은 멜로 보내지만
그런 편지에 20대30대 아짐들이 넘어온다는 거다
여자란 뇌구조가 남자들하고는 달라서일까?
그 나이 또래 좀 배웠다는 여자들이 오히려 가벼이 친구가 되서
형하고 펜팔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몇명이서 번개도 하고....
그런데...
괜히 감상에 빠지기 좋아하는 것도 유전인가보다
조카딸 녀석도 괜히 비오면 나가서 비 맞으며 감상에 젖곤 한다고
형수가 으이구.... 하신다
그 녀석도 자기 아버질 닮아가려나..ㅋㅋ
나의 형 글들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여전히
자기 내면을 드러내거나
자기 생활의 단면들을 마음이 가는대로 적은 글들이 아니라서...
양파껍질 같이 화려한 포장지에 포장지...
결국 읽고나면 그 사람의 마음은 없고
연예인이나 정치인같은 꾸며낸 모습들이 있을뿐이다
하긴..
정치인들도 표를 얻기위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고 하고
그러기 위해서 정치를 했다고 하고
나중에는 자기자신마저도 그 말에 속아넘어간다고
무식한 내가 유일하게 읽은 유식한 철학책에서 '에릭 프롬'이 그랬지...
내가 다시 글을 쓰게 된건 일년 반전 쯤이다
채팅으로 만난 친구들하고 갈등이 생기고 거기서 나와서
그 채팅방을 워낙 좋아했었는데 헤어진 허전한 마음에
자유게시판 가서 이런글 저런 글들 쓰고....
그러다가 글 잘 쓴다는 엽기적인(?) 소리도 듣게되고...
이른바 사이버 앤이랍시고 아짐하고 공식앤으로 친구도 하고...
(그런데 얘 얼굴을 일년 넘도록 아직도 못봤다)
그 친구때문에 시도 쓰게 되고...
어이쿠...
세상에 무식한 공돌이를 자청하던 내가 시를 다 쓰다니...
그러다 한동안 안 가다가 아뒤 바꾸고 또 쓰고...
다시 일년쯤 안가다가 다시 쓰고...
난 여전히 내 글들이 부담스럽다
내 글들이 옛날 그 '약속이나 한듯이 불빛들이 하나둘 꺼지고...'
그런 따위의 글들이 아닐까해서...
진실치 못한 글들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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