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야기

소백산 종주

지리산자연인 2006. 1. 3. 17:21
때는 2002년 2월
시간은 저녁 8시를 넘었고 집안 식구들에게 전화를 거니
어머니께서 받으신다

'어머니, 저 여기 동두천인데 친구집에서 자고 갈께요'
'응, 그래라'

성공... 너무 간단하다
이렇게 쉽게 속아 넘어가시다니...
여기?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바람이 세번째로 세다는
소백산하고도 정상 비로봉 옆에 우리나라 최대
주목 군락지 감시 막사안이다 ^^

언제까지나 이렇게 집안에서 간섭받고 살아야 하나.. 쩌비..
나도 장가가면 좀 나아질려나....
모르지.... 우리 어무이야 저리 속아주시지만 내 마눌님 되실 분도
그리 속아주실지.. 흐흐....

12월호 월간 '산'에 겨울 대종주 산행이라고 몇군데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내가 가볼려고 꼽은 곳으로 설악산 서북릉, 지리산, 소백산
덕유산이 있었다

그중 지금까지 지리산 종주하고 설악산은 서북릉 구간중 한계령에서
중청 구간만 걸었고 오늘 2월 3일 일요일에 몇주째 계속되는 감기로
콧물 질질 흘리며(-,.-) 소백산 종주에 나선 길이었다

일요일에 오후 2시반에 단양에 도착하여 하룻밤 자고 오를까 하다가
도중에 밤이 되더라도 올라가서 주목 감시막사에서 자기로 하고 올랐다
12월호 잡지에는 시내버스가 하루 세번 다닌다더니 그새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그 버스도 사라지고 대신 택시를 타다

기사 아저씨 친절하시고..... 근처에 도락산(우리 동네 뒷산이 언제 충북으로 이사왔지?)이 어떻고 황장산이 어떻고 단양팔경이 어떻고 잘 설명해주신다. 다음에 오면 반드시 들려야지...
충북이라더니 내가 듣기로 강원도 사투리다
말을 꾸밀줄 모르는 사람, 친절하고.... 예전 손님들에게 항상 친절하던 우리들의 잊혀진 모습이다

죽령에서 내려 장비 갖추고 출발하니 세시다
무거운 배낭 매고 오르니 많은 사람들이 내려오면서 날 이상하게 쳐다본다
하긴 일요일 이 시간에 오르는 사람은 나뿐이다
도로가 놓여진 길을 미련한 곰 버젼으로 오르고 오르니 중계소고 더 가니 소백산 천문대고...

그때가 5시 지나서이고 그 다음부터는 사람구경을 다음날 오후까지 못했다
어느덧 해는 지고... 주위의 함박꽃나무(?) 철쭉나무, 기타 키작고 가지많이 뻗친 나무들이
자꾸 내 배낭을 낚아챈다
어둔 길을 헤드랜턴을 밝혀서 열심히 걷고 걸었다

누가 소백산을 여자산이라고 했던감?
여자산이라면 약간 삐진 여자다
'너 나 여자라고 만만하게 봤지?' 하는 듯도하다 ^^

조그만 봉우리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리고 무릅까지 빠지는 눈길을 걷고 또 걷고...
길 왼쪽으로는 충북 단양의 불빛들이 반짝이고..
오른쪽으로는 경북 풍기의 불빛들이 반짝이고..

7시 다되서 천동계곡 삼거리에 왔는데... 눈앞에 갑자기 뭔가 검은 그림자가 후다닥하고
앞에서 지나간다 사람인가 했더니 너무 빠르고.... 귀신??
서늘해지는 걸 느끼며 다시 보니 나뭇가지에 매여진 리본이 내 랜턴에 그림자가 생겨
내가 걸으니 저기로 뛰어가는 것처럼 보였던거다 ^^

거기서 조금가니 주목 감시막사가 보인다
어둠속에서 보니 마치 '폭풍의 언덕'에 나올만한 조그만 오두막이다
휴... 다왔네.. 만약에 이렇게 밤중에 헥헥데고 왓는데 꽉 잠겨 있거나
아니면 외부인이 사용 못하게 해놨으면 낭패지만 다행이도 열려있다
안에는 방두개와 거실... 방하나는 청원 경찰 사무실처럼 되있어서
책상하고 의자 조그만 침상하고 벽에는 청원경찰이라고 쓰여진 츄리닝까지 있다
물론 난로 없다

아무도 없는 빈집 오늘밤 여기서 자야한다
짐 풀고... 저녁먹을 준비하고... 이제 물을 길으려고 나가니
책과는 달리 저쪽 주목 군락지 안에 있다는 샘으로 갈수가 없고 어디잇는지 보이지도 않고..
눈은 푹푹 빠지고...
하는 수없이 코펠에 눈만 잔뜩 퍼담아서 돌아왔다
낼 아침에 보면 지저분한 눈일지라도 이 밤에 하얗기만 하다

그렇게 해서 휘발유 버너에 슈퍼에서 파는 만두에 떡국에 끓여서 먹으려니
간할거는 소금밖에 없는데 이 소금이 수입산인지 맛도 없고...
그냥 소금국 비슷하게 된걸 맛은 없지만 억지로 퍼 먹다
바보 같으니라고.... 라면이라도 한개 가지고 왔으면 훨 맛나게 먹었을걸...

배는 부르고... 뭐 할까하다가 책상위에 놓여진 아까보기에 근무일지 같이 생긴걸
주인 허락없이 보는것같아 미안해하다가 열어보니.... 방명록이다
단양에서 여기 지나가는 객들을 위해서 개방해 놓은 것이 이 막사이고
몇년전부터 다녀간 사람들의 이름 주소들이 잔뜩 적혀있다
그래서 나도 내 흔적남기려니.. 펜이 없다

그래서 책상안에 혹시 있나하고 책상을 뒤지니... 맙소사...
그 안에서 나온 건 안성탕면 네개, 신라면 스프한개, XX원 순창 고추장, 가스통 여러개,
언 달걀 하나, 쌀 잔뜩, 그리고.... 귤까지???
분명 여기서 자고 간 사람들이 남겨놓고 간것들이고 저 귤들은
어제 토욜저녁에 자고 간 사람들 것일게다
으흐..... 미치...
진작 발견했으면 그렇게 맛없는 떡만두국이 안되었을건데... ㅜ.ㅜ
아쉬운 마음에 고추장을 한수저 떠먹어본다
그러고 매우니 귤 몇개 까먹고....
역시나 맛있다

방명록에 내 이름 주소 적고... 밑에다가 천랸 십이월/사슴벌레/메데백/디셈버 라고 적다
(그새 통신 생활하면서 대화명 많이도 바꿨다 -.-)
다음에 누가 이곳을 지나가면 한번 보시기를....
작은 막사지만 꽤 괘안타

나는 여태 통신 이년에 번개 한번도 안 햇지만 언제 번개한다면
나중에 아는 사람들 번개쳐서 여기로 모이자고 해도 좋을 듯하다
고기 싸들고 쌀에다가 야채에다가... 기타등등 먹을거에 침낭에 매트리스 들고...
물론 술도 잔뜩 짊어지고... 흐흐흐....

여기가 아니더라도 설악산 수렴동 대피소나 희운각 대피소로 번개쳐도 좋을듯...
만약 아무도 안오면 거기 다른 투숙객들이나 대피소 쥔장도 있으니 그 사람들하고
마셔도 좋고.....
도시속에서 사람들이 잘 싸우는 이유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습성이
있어 그 때문에 싸운다고 누가 그랬던가? 깊은 산속에서야 공간이 넓으니
그렇게 싸울일도 없고 서로 인심이 좋아져서 빈손으로 와도 사람들이 있으면
밥과 술이 고플일은 별로 없다 ^^

역시나 011 가입하길 잘했다 여기가 동두천이라고 거짓말할수도 있고...후후
자려고 자리펴고 누우니 잠이 안온다 춥지는 않고.... 침낭밖으로 상반신을 내놓고
버스안에서 산 오천원짜리 FM라디오를 듣는다
역시나 세상사는 요란타 아예 라디오를 안 사는건데...
밤은 깊고.... 우리나라에서 세번째로 바람이 세다는 소백산의 바람이 가끔 문을 두들기고...
창밖으로 달이 휘엉청 밝고....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다

비로봉


다음날 아침 해뜨기전에 작은 가방만 들고 비로봉 정상에 오르니 소백산 바람이 헛소문만은 아니다 역시나 세다
어두운 저 너머 산들이 해가 뜨니 운무에 가려진 모습올 내보인다
사방이 붉은 기운으로 타오르고.. 저어기 칼구름도 아침 햇살에 타오르고...

다시 내려가 아침준비를 하다
어제완 달리 떡국, 만두에 거기다 고추장도 넣고 라면도 반개넣고.... 신라면 스프도 넣고...
그렇게 끓여서 먹으니.... 아흐...... 맛이 엄청나다 이렇게 맛있을 수가.....
어제도 라면 일찍 발견햇으면 이리 먹는건데....
이제 출발이다

어제보다 더 먼길이 내 앞에 있다
8시 40분 출발해서 국망봉을 거쳐 신성봉쪽에 가니 표지판들도 제대로 없고
500미터마다 세우는 말뚝도 안 보인다
에고... 잡지에 나온 코스는 여기가 맞는데.... 원래 사람들이 제대로 안다니는
코스인가보다... 차라리 신성봉전 삼거리에서 백두대간쪽 능선을 타서 형제봉
쪽으로 갈걸 그랫나?

어떤데는 눈이 무릅위에까지 오고.... 그래도 내 앞에 어제 그제 다닌 사람들이
몇 있었는지 러셀이 되있어서 나는 편히 갔다
어떤곳은 바위 위로 난 아슬아슬한 길인데 내린 눈이 녹고 다시 얼어서 얼음인데
발 디디기도 힘들고... 미끌어지면 좀 많이 아프겟다... 후후
아무도 없는길을 한참을 걸어 12시가 넘으니 그때서야 맞은편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온다
아저씨 아줌마들... 이 지역 사람들인가? 말투가 어제 단양 사람들이 쓰던 내가 듣기엔 강원도 말씨를 쓴다 와... 이런 한적한 길을 다니는 사람들이 다 있군...
그 사람들도 그날 내가 처음인가 보다. 날 보더니 참 신기해 한다
그 사람들은 짐도 거의 없는데 큰 배낭에 짐 잔뜩 진 나를 의아해 한다
그 사람들 말고는 그 길에 아무도 없었다!

또 한참을 걸어 민봉을 지나 안부에서 좌측으로 빠지는 구인사 길이 나온다
그 안부에서 바라보니 '구봉팔문'이 왜 구봉 팔문인지 알겠다
아홉개의 봉우리가 수문장들처럼 서있으니 구봉이고 그 중간으로 계곡들이
여덟개니 팔문이고... 그래서 '구봉팔문'인가보다
그 사이로 보이는 속세.....

구인사


그렇게 약 5시간 반 걸려 속세로 내려왔다
아마 그 길을 눈내리고 처음 간 사람은 고생 많이 했을거다
10시간이상 걸렷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눈이 많이 왓으니...
그래도 티비에서 누가 죽었다는 소리 없엇으니 살아서 도착햇겟지...
한국천태종의 총본산이라는 구인사로 가려다가 그 옆 골짜기로 내려와
올만에 밥다운 밥 먹고 다시 경사진 길을 걸어올라 구인사 구경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지쳤지만 그래도 위대한 대고구려의 산성을 구경하고자
'온달산성'앞까지 한참을 걸어서 내려가니 어두워 지려 한다
매표소에서 입장료 3천원이라고 쓴걸보고 지금 저위로 올라갈까 말까하니
어떤 아가씨가 약간은 퉁명스럽게 들릴듯도 한 사투리로
왕복 한시간 거린데 그냥 올라가시면 되요 한다
친절하다! 객지 사람을 생각해주눈 마음씨가 보이고...
어제 택시 기사 아저씨도 그랬지만 다들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내가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자 산을 다니고 여행을 다니는 것일게다
예전 어느 커피 광고처럼
'마음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밑에서 저 위에 산성을 어떻게 오르나 하다
지친몸에 중간에 오르다 배낭 그냥 내려놓고 오르니 의외로 작은 성이다
높이도 그리 안 높고... 그래도 천년이상을 버틴 고구려의 축성 기술이 보인다
고구려 성만의 특징인 치도 보이고....
식인종 당나라의 100만 군대를 막아내던 위대했던 제국...
누구말로는 적들의 목을 베어 해골탑을 쌓았다던 사람들..
어느 학자는 이 성을 신라의 성이라고도 하는데....
하긴.. 왜 고구려 성이라면서 북쪽을 바라보는지....
그런데 신라의 성이 천년이상 제대로 버틴 성이 있나? 삼년산성빼고?
천몇백년전 고구려의 위대한 장수 온달은 나처럼 저기 남한강을 내려다 보았겠지....
하지만 육세기 후반 하늘은 신라쪽 손을 들어주고 있었으니...
우리 집안이 경주김씨에서 갈라져 나왔지만(믿거나 말거나다...
하도 조선시대나 갑오경장때 족보위조가 심했으니...) 그래도 난 고구려가 좋다!

온달산성


산성위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누구는 신라의 승리 이유가 신라사람들이 쓴 '자살전법'이라고 했지..
관창처럼 전투때마다 한사람 용맹히 나서서 거의 자살수준으로 뎀비다 죽으면
나머지 사람들이
'이 문디 자슥들 감히 우리 XX를 죽여? 오늘 니 죽고 내 죽자'뎀볐다나?
문득 우리 어머니 갱상도식 과장법이 생각나 웃음짓는다

그날 저녁은 원주까지 가서 하룻밤 자고...
소백산 종주하고도 좀 싱겁다 느꼈는지 그 다음날 화요일 치악산에 가다
그런데 비로봉이 언제 여기로 이사왓는지 여기도 비로봉이 있다
구룡사위 물품보관소에 배낭 맡기고 작은 가방만 매고 사다리 병창길로 오르니
여기가 '악'산은 '악'산이구나 하며 악을 쓴다
오르기 싫다! 하지만 여기 산이 있으니 올라야지...
눈은 미끄럽고.... 아이젠은 가져올걸....
힘들게 오르고 오르고.... 마지막엔 누구말처럼
산도 마지막 발악을 하고 사람도 마지막 발악을 하고.....
그렇게 오르고 김밥먹고.... 이제 내려가야지 하고 내려올땐 옆으로 난
계곡길로 내려오다
치악산... 내 오늘 지쳐서 비로봉만 오르다 가지만 다음에 올때는 한쪽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일박이일 종주다!
내 오늘 가지만 다시 또 오마!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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