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온주가 새벽에 30도까지 내려가는 날들...
아침에 보급투쟁에 나서겠다고 주위에 보이는 옷들
걸치고 맨위에 고어텍스 재킷에 바지위엔 스페츠(각반)에
미군용 전투화에다가 아이젠까지 차고 지게작대기들고
가방매고 나선다
내게로 다가오는 녀석
누르빠...
산속에서 겨울을 벌써 혼자서 세번이나 보낸 녀석이다
늘 그렇듯이 슬금슬금 쳐다보면서 와서는
그러고선 발라당 눕는다 긁어달라고...
누르빠와 나
너 수줍어서 그렇지? 니 맘 다 안다
그러고 배를 긁어준다
'됐다 이제 일어나라'
하니 몸을 일으켜선 좋다고 이리로 마구 뛰어갔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저리로 뛰어간다
이 녀석 기뻐서 어쩔줄을 모르는 구나.
내가 배도 긁어줬으니 이제 마을까지 혹시나 따라오지 않을까?해서
누르빠~ 하면서 부르니 안온다
벌써 눈치로 내가 보투 내려갈거라는 걸 아는거다
저녀석 속세를 싫어한다
도로가 싫고 차가 싫겠지
만나는 사람들이 싫을거고.. 그래 무서울거다
그 맘 다 안다
나도 그래서 산속에 들어왔으니까..
전에 진도개 있었을땐 산아래까지 내려갔다오는데 따라나서곤해서
심심하지 않고 좋았는데...
하긴 그 녀석도 두번 내려가니 벌써 속세가 싫다고
**터로 향하는 길로 미리 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석 좋았는데... 그런데 쥐약먹고 몇주만에 죽어버렸다
할수없이 혼자 내려간다
바람...
이 놈의 바람은 안 불수가 없나?
바람이 초속 일미터에 체감온도 일도씩 내려가니
체감온도가 영하 50도 가까이는 될거다
바람속에 눈발이 섞여있으면 더 한다
이 놈의 바람은 영동과 영서를 넘는 바람이다
점봉산 단목령을 넘고.. 태백산을 넘고...
광동댐 이주단지를 넘던 그 독한 바람이다
무장을 단단히 했다고는 해도 11월에 내가 옷입던 정도이니 춥다
겨울준비를 철저히 하는건데...
눈은 최소 일미터씩은 쌓여있다
자주 다니는 길은 그래도 얼어있어서 단단한데
그것도 낮에는 녹아서 빠지고 발 잘못디디면 빠지고...
엎어져서 장갑에 눈들어가면 금새 녹아서 얼어버리고...
숨은 점점 쉬기 힘들어지고...
콧물은 항상 흘러내려서 동상걸린 코아래는 땡기고..
그래서 다 죽어가며 아래에 도착한다
그렇게 몇주만에 가게에 가서는... 문을 열고...
'아줌마~~ 술주세요~~ 소주가 고파요~~' 하고 외친다
소주 두병 넣고...(물론 댓병으로..ㅋㅋ) 안주넣고...
초코파이 넣고...
그러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반찬 필요하면 밖에
부식차 있으니 거기서 사란다
웬일??
그랬군... 부식차가 오고 있었꾼..
거기서 두부 세모하고 고등어 두마리를 산다..
세상에... 고등어다! 감동... 훌쩍...
다시 고생고생해서 올라온다
올라오며 깡소주로 댓병들고 마셔댄다
크.. 좋다
그러고 또 걷고..
그러다 또 병나발 불고...
이러다 오두막에 도착못하면??
그렇게 고개마루를 넘다가
물푸레나무에 취한 몸 기대서니
고어텍스 재킷 소매위로 눈이 내린다
어릴적 탐구생활속에서만 보던
육각형 결정체의 그 형형의 눈이 내린다
그리고 오두막 다 도착해서
누르빠를 부른다 그런데 안온다
어디서 너구리하고 놀고 있겠군...
짜아식.. 그래 외롭지...
어디 짐승 한마리 잡아올줄도 모르면서 오두막 근처에
짐승이 오기만 하면 그렇게 짖어댄단 말이야
그래서 다시 크게 부른다
'야! 누룽지~~~~' --;;;
그랬더니 겨우 나타난다
그러고선 다시 그 누르빠 전매특허 수줍은 시선을 던지며 와서는
발라당 눕는다
취했지만 어쨋든 불을 때야지...
불 안때고 저기 눈집(이글루)에서 잘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가 죽을까봐 여태 못했다
아궁이에 마른 솔가지에 불붙이고... 거기에 불쏘시개 올리고...
그리고.. 낙엽송 장작을 올린다
밥을 해야지..
역시 솔가지에 불붙여 화덕에 넣고
숯을 넣고 열심히 부채질을 한다
화덕은 양철바께스에 황토로 칠하고... 아래에 구멍뚫고...
중간에 굵은 철근 몇개 넣고...
난로하고 원리가 같다
그 위에 밥을하고 찌개를 끓인다
그러고 나니 술에 취한다
불이 잘 붙었을때 가지고 있는 양미리를 석쇠에 올려서
뻘겋게 타고 있는 아궁이에 넣는다
겨울은 역시 양미리가 있어서 아름답다
소금도 안뿌리고 그냥 먹는다
그리고 다시 병나발 불고...
그러는 동안 누르빠는 아궁이 위쪽에
매운눈 게슴츠레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전에는 영하 30도 이하로 내려가도 따스한 내 부억으로 안 들어오고
밖에서만 자더니 전에 그 진도개 때문에 자기 집 뺏기고
내 부억으로 들어왔다
그래 녀석... 너도 자유가 좋지?
문닫힌 부억은 싫지?
그러고 나서 아궁이를 막고 방에 들어가 밥을 대충 먹고 쓰러진다
보통 밥에 찌개 하나...
이번엔 오랜만에 보투를 다녀와서 고등어까지 있다
고등어..
정말 환상적인 맛이야
이 고등어는 피난내려오신 아버님이
군산서 먹을거 제대로 못 드시고 거의 돌아가실뻔하다가
겨우 드시고 기운차리셨다는 그 고등어...
참으로 오랜만에 구경하는 제대로된 음식...
앞으로 고등어 많이많이 먹을거다
몇번 죽을뻔도 했다
술 하도 취해 물버리려고 밖에 나갔다가 엎어져서 얼어 죽을뻔했고..
자고 있는데 촛불에 불이 크게 붙어서 타죽을뻔했고...
이렇게 자다가 아궁이속 불이 밖으로 기어나오면 죽는다 ㅋㅋ
자다가 저녁늦게 깨어난다
벌써 이홉짜리로 세병이상 마셨을거다
라디오는 계속 틀어져있고..
밤은 깊고...
사방 몇키로이내엔 아무도 없고..
그래도 내겐 누르빠가 있지..
그래서 초코파이 하나 꺼내 방문을 열고 누르빠를 부른다
기특한 녀석
관악산 아래 뻐꾸기 아침마다 쓰레기달라고 울어대는 아침...
빨간 병뚜껑 굴러다니는 방안..
다시 너를 생각한다
네가 나의 거울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