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야기

산속 이야기

지리산자연인 2006. 1. 4. 15:44
산속의 밤은 길다
낮에 술 묵고 자다가 일어났더니 저녁 7시다
아침 7시 해뜨기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작년에도 부주의로 등산복 옆구리를 태워먹었는
며칠전에도 자다가 이상해서 깨니
팔이 따땃하니 이상타
그래서 깨보니 오른팔 소매가 타고 있다
촛불이 왼쪽에 있으면 왼손이 타야지... 으이구..
그거 인터넷 경매사이트에서 아웃도어 용품으로
맘먹고 장만한건데... 아깝다...
내가 그때 두벌을 산건 선견지명이 있어서였던가?

밖에는 부엉이 울고 누르빠는 내 오두막 앞 낙엽더미에서 졸고 있다가 깬다
지 수술도 안해주는 인간들을 위해서..

이런 밤중엔 그저 불장난이 최고다
드럼통 쪼개놓은 것에 솔잎에 불붙이고 장작을 넣는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라디오를 켰다가 사색에 방해되는 것같아 끈다
그리고 마지막에 타는 두개의 장작..

혼자서 타면 외로이 타다 스러지겠지...
그래서 둘이서 다정히 탄다
나는 너를 태우고
너는 나를 태우고..
그렇게 마지막 재로 될때까지 뜨겁게 타겠지..

그렇게 태우고 있는데
천정이 빨갛다.. -_-
이 불씨라는게 저혼자 날라다니더니
어느새 천정 밑을 파고 들어가 마른 볏짚들 속에서
빨갛게 타고 있었다
벌써 몇번째 불낼뻔 한건지.. 으이구..
눈이 별로 안내리니 저 모양이다

물 부우려니 안되고
손가락을 집어넣고 파냈다
불장난도 못하겠군..

다시 9시 뉴스 듣고..
맨날 똑같은 소리라 별거 없다
다시 끄고..
이런 저런 생각 하다보니 12시가 다됐다
그런데 은은히 들려오는 독경소리..

 


몇주만에 올라오신 아저씨 오두막에서 들린다
심심해서 놀러가고 싶었지만 하도 폐를 많이 끼치는 것같아
삼가고 있다가 마침 나도 불교 공부를 하고 있던 참이라
궁금해서 간다
혹시 주무시면 어쩌나 해서 조용히 불러보니 안 주무시고 계셨다
들어가서 이런저런 얘기 나눈다

'불경 소리에 와봤습니다'
'이거 들으면 답답한 가슴이 확 터지는 것 같거든..'

아저씨도 답답하신 것들이 있으신가 봅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신선처럼 사시니 그런거 없으실줄 알았는데..
커피라도 줄까? 하신다 잠 못잔다고 하니 누가 주고간 미숫가루를 타 주신다
늘 주려고 하시는 분..

신선같으신 분..
불교에서 무아를 말한다
자아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평생을 고생하며 걷는게 인간이라고..
내 재산, 학벌, 친구, 자존심, 감정, 명예, 지위...
털털하게 호주머니 털듯 털고 가라고..
내가 만난 사람들중 가장 그에 가까운 사람들이 용대리 산사람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제일 자아에 집착해서 자기 생각, 자기 감정, 자기 것에
매달려 사는 사람?
그 백 모시기...
평생을 라즈니쉬 밑에서 그리고 전세계(안 다닌 나라들보다 다닌 나라가 더 많을 듯...)
를 떠돌며 수행을 했다는 사람..
그러고서도 자아에 집착하는 사람.. 동네 인심은 다 잃어버린 사람..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마지막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
연금술사엔 세가지 종류가 있다고..
연금술이 어렵다고 포기한 사람
그저 연금술사인 척하는 사람..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연금술사로 살고 있는 사람..

내 생각엔 백모씨는 두번째이고 아저씨는 세번째 분이라 생각한다

노자는 무위를 이야기하고..
에릭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를 이야기하고..
(정복, 지배, 소유, 집착의 삶을 살 것인가? 주고, 나누고, 사랑하는 삶을 살것인가?)
기독교에서는 우상숭배를 이야기한다
탐욕도 우상이다라고..
다같은 이야기일거다


http://www.ssangyongcement.co.kr/kor/zine/2004_11/ju10.php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설악산 토왕성폭포에서 여기 놀러왔던 사람이 찍은 사진을 보다 산 이야기가 나오니
보라고 월간 '산'을 꺼내 주신다
그러면서 2002년 10월호에 나왔던 신선봉 기사를 보여주시니
거기에 아저씨 사진이 작게 나와있다
9월 7일 지나갔다면 내가 개울 옆에서 텐트치고 있던 때인데..
그때 태풍 루사로 안 떠내려갔었지..

그 잡지 말고 계간 '디새집' 2001년 가을호에 아저씨 기사가 4면에 걸쳐 주로 사진으로
나와있다
약간 피로에 지친듯한 모습과 무언가를 찾고 있는 모습... 구도 하는 모습의 흑백사진이
환상적이다 나중에 그 사진을 업무차 온 육군 소령에게 보여주니
'신선같은 분이시네..' 한다
잡지엔 차마 그 내용을 싣지 못했지만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모습이란 다름아닌 비암을 찾는 모습이다 푸헬헬..
불법이니 차마 그런 이야기는 못 쓴다

그거 말고 티비나 잡지에 종종 나오셨는데 잡지를 이사람 저사람 보다가 잃어버리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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