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는 책으로 어느 님이 보내주신 불교서적이 있다
초보자도 읽을수 있게 쉽게 쓰여진 책인데 여러가지로 도움이 많이 된다
저녁때 할일이 없어서 책에 나온 글들을 그대로 노트북에 타이프해놨는데
오늘 그중에 몇 페이지를 올린다
쓰고 보니 저장적 성격 정향의 유형과 많이 닮아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삶을 두려워하는 인간으로써 내가 꼽고 싶은 여인인 폴라는 어느 큰 병원에 근무하
는
수간호원입니다. 직채상으로 볼 때 그녀는 조직의 관리자에 속한다고 볼수도 있고
따라서 상당한 책임도 따르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처럼 삶에 직접 맞닿아 있는
여인이 정작 그 자신은 삶이 두려워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하기란 그리 용이치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녀가 신체적 고통을 두려워하는 겁장이란 말은 아닙니다. 그녀의
두려움은 그것보다 훨씬 더 미묘합니다. 그녀는 정신적 고통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그녀는 자기 주위에 높은 벽돌담을 쌓아놓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태도가 지극히 편
협한 것입니다
폴라는 새침떼기이고 성적 욕구불만에 쌓여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결혼이나 자
녀를 기르는 일
보다는 자신의 직장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스스로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대단히 높은
윤리 규범을 지니고 있는 진정 행실바른 여인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규범은 높은 대
신에
좁습니다. 그녀는 융이 말하는 그림자에 관해서는 그것이 자신의것이든 남의 것이
든 간에 일체
관심을 가지려 들지 않습니다. 그녀에겐 손톱 만큼의 유머 감각도 없기 때문에 절대
로 남의 유머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일생 동안 철저히 선량한 여인으로 살기 위해서 혹시 이상하
고 위험한
물가로 이끌수도 있을 그 어떤 유호도 엄격하게 피하고 잇씁니다. 별로 이쁘지도 않
은 그녀의
외모를 더욱 평범하게 보이도록 꾸미고 어떤 남자에게도 직업상 도와주는 관계에서
단한발짞도
더 다가가 본적이 없습니다. 알아 볼것도없이 폴라는 엄격한 채식주의자에다 금연 금
주 주의자입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재미없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폴라야말로 불교가 권장하는 바로 그 유형이 아니냐고 생각할지
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야말로 감각적 집착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도대체 남을 해치는 일이 없지 않느
냐는 것이지요
실제로 그녀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훈련을 쌓아온 종교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
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내면 성찰이 너무 얕아서 피상적이라는 것입니다. 방금 말했듯
이 그녀는
추가 엉뚱한 쪽으로 흔들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억압과 욕구 불
만이 축적되어
갈수박에 없는데 이러한 것들은 결코 불교가 긍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는 놓아 버리는 철학입니다. 고통을 돌파하여 비고통으로 나아가는 철학인 것입
니다. 우리가 각자의 그늘진
측면에 대해 어떤 핑계도 속단도 하지 않고 용기있게 사실대로 인정하고 들때 비로
서 그것을 초월할
가능성도 기대해 볼수 있는게 아니겠씁니까? 내가 여기에서 핑계나 속단을 하지 않는
다고 말할때
그 뜻은 대상을 거듭 주시하는 것, 즉 제 삼자적 주시(정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감정들이 나타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게 됩니다. 감정이란 결국 자아를 강화시
킬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지(智)가 나타날 것이며 지는 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다룰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동전을 놓고 한
쪽 면만 계속
닦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검고 때묻은 다른 쪽 면은 계속해서 모래 속에 파
묻혀 있게
될 것입니다. 어차피 그것은 같은 동전인데도 말입니다.
초보자도 읽을수 있게 쉽게 쓰여진 책인데 여러가지로 도움이 많이 된다
저녁때 할일이 없어서 책에 나온 글들을 그대로 노트북에 타이프해놨는데
오늘 그중에 몇 페이지를 올린다
쓰고 보니 저장적 성격 정향의 유형과 많이 닮아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삶을 두려워하는 인간으로써 내가 꼽고 싶은 여인인 폴라는 어느 큰 병원에 근무하
는
수간호원입니다. 직채상으로 볼 때 그녀는 조직의 관리자에 속한다고 볼수도 있고
따라서 상당한 책임도 따르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처럼 삶에 직접 맞닿아 있는
여인이 정작 그 자신은 삶이 두려워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하기란 그리 용이치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녀가 신체적 고통을 두려워하는 겁장이란 말은 아닙니다. 그녀의
두려움은 그것보다 훨씬 더 미묘합니다. 그녀는 정신적 고통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그녀는 자기 주위에 높은 벽돌담을 쌓아놓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태도가 지극히 편
협한 것입니다
폴라는 새침떼기이고 성적 욕구불만에 쌓여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결혼이나 자
녀를 기르는 일
보다는 자신의 직장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스스로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대단히 높은
윤리 규범을 지니고 있는 진정 행실바른 여인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규범은 높은 대
신에
좁습니다. 그녀는 융이 말하는 그림자에 관해서는 그것이 자신의것이든 남의 것이
든 간에 일체
관심을 가지려 들지 않습니다. 그녀에겐 손톱 만큼의 유머 감각도 없기 때문에 절대
로 남의 유머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일생 동안 철저히 선량한 여인으로 살기 위해서 혹시 이상하
고 위험한
물가로 이끌수도 있을 그 어떤 유호도 엄격하게 피하고 잇씁니다. 별로 이쁘지도 않
은 그녀의
외모를 더욱 평범하게 보이도록 꾸미고 어떤 남자에게도 직업상 도와주는 관계에서
단한발짞도
더 다가가 본적이 없습니다. 알아 볼것도없이 폴라는 엄격한 채식주의자에다 금연 금
주 주의자입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재미없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폴라야말로 불교가 권장하는 바로 그 유형이 아니냐고 생각할지
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야말로 감각적 집착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도대체 남을 해치는 일이 없지 않느
냐는 것이지요
실제로 그녀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훈련을 쌓아온 종교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
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내면 성찰이 너무 얕아서 피상적이라는 것입니다. 방금 말했듯
이 그녀는
추가 엉뚱한 쪽으로 흔들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억압과 욕구 불
만이 축적되어
갈수박에 없는데 이러한 것들은 결코 불교가 긍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는 놓아 버리는 철학입니다. 고통을 돌파하여 비고통으로 나아가는 철학인 것입
니다. 우리가 각자의 그늘진
측면에 대해 어떤 핑계도 속단도 하지 않고 용기있게 사실대로 인정하고 들때 비로
서 그것을 초월할
가능성도 기대해 볼수 있는게 아니겠씁니까? 내가 여기에서 핑계나 속단을 하지 않는
다고 말할때
그 뜻은 대상을 거듭 주시하는 것, 즉 제 삼자적 주시(정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감정들이 나타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게 됩니다. 감정이란 결국 자아를 강화시
킬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지(智)가 나타날 것이며 지는 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다룰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동전을 놓고 한
쪽 면만 계속
닦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검고 때묻은 다른 쪽 면은 계속해서 모래 속에 파
묻혀 있게
될 것입니다. 어차피 그것은 같은 동전인데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