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마장터

지리산자연인 2006. 1. 4. 16:53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고 해서 민망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노랫가락 새어나올 듯한 관광버스의 꽁무니를 쫓아가다 차를 세워두고 왼편 샛길로 접어든 지 10여 분. 모두들 같은 길 위를 달려갈 때 혼자만 다른 길로 접어드는 설렘에 대해,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만큼 깊고 은밀한 샛길의 아름다움에 대해, 마음속일망정 호들갑스레 예찬합니다. 하지만 이내, 길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이 길이 아닌게벼.” 개그 속 주인공처럼 중얼거리자니, 민망함으로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길을 되짚어 새이령 들머리에 있는 박달나무쉼터로 돌아옵니다. 쉼터지기인 염봉성 아저씨(50세)가 길 잃은 등산객의 안내를 도맡아온 지는 올해로 8년째. 길을 알려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쉼터 앞 현수막에 ‘조난신고 전화번호’까지 적어놓은 아저씨의 훈훈한 인심에, 길을 잃길 잘했다고 또 한 번 방정을 떱니다.
“여기 살다 보면 입구 못 찾는 사람, 올라갔다 길 잃은 사람 참 많이 봐요. 한 번은 정상에 있다고 전화한 사람이 몇 시간이 지나도록 통 내려오질 않는 거예요. 날은 저물었는데, 여간 걱정이 돼야 말이죠. 구조대에 신고해놓고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서 내가 직접 올라갔어요. 굴러든 낙엽더미 땜에 길이 사라지고 없으니, 이 사람이 더는 못 내려오고 고개 중간 ‘마장터’에서 불을 쬐고 있더라고요. 그 때부터 길을 올라간 사람이 어느 시간이 지나도록 안 내려오면, 이상하게 마음이 쓰여요.” 행여 또 길을 헤맬까 길 입구까지 따라오는 아저씨를 뒤로 한 채, 다시 옛길에 오릅니다.

70년대 초반 한계령 길이 포장되기 전까지, 강원북부의 동서를 연결하는 고개(미시령, 한계령, 진부령) 중 가장 사랑받았다는 새이령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제군 용대리와 고성군 도원리를 잇는 이 길은 백두대간의 고개답지 않게 부드럽고 완만하게 이어져있습니다. 눈부실 때 은퇴한 배우처럼, 그러고도 여전히 아름다운 그처럼 보는 사람의 가슴을 출렁이게 하는 길. 사랑받던 옛길에 가을이 깊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나같이 푸른 유니폼을 입고 있어 쉬이 구분되지 않았을 나무들은 지금, 붉은색으로 노란색으로 푸른색으로 각각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문득 사람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해의 삶을 끝내고 자기만의 빛을 드러내는 나무처럼, 연둣빛 새싹 고운 ‘유년의 뜰’을 지나고 푸른 파도 넘실대는 ‘청춘의 바다’를 건너 조금씩 자신만의 색으로 돌아오는 사람. 사람이 자연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나무들이 울창한 대신, 길은 ‘토끼길’이란 말이 딱 어울린다 싶을 만큼 좁습니다. 이곳의 나무들이 원시림이라면, 함부로 넓히지 않고 맘대로 단장하지도 않은 이 길은 ‘원시로’라 불러야 할까요. 아무려나, 이 길을 걷는 재미 중에 개울 건너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대개의 옛길이 한쪽 옆구리에 개울을 끼고 하나로 이어져있는 것과 달리, 새이령 옛길은 개울 이쪽저쪽으로 끊어질 듯 이어져있습니다. 번거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번거롭기는커녕 목을 축이고 낯을 씻는 동안, 먼저 건너가 짐 무거운 동행을 기다리는 동안, 고갯길을 넘는 수고로움은 곧잘 까맣게 잊힙니다. 서너 개의 개울을 넘다가, 단풍잎 곱게 쌓여가는 길 위에 섭니다. 우루루 한꺼번에 쏟아지지 않고, 한 잎, 두 잎 각자의 속도에 맞게 떨어져 내린 빨간 잎들.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레드카펫’을 밟노라니, 단지 붉은 천에 지나지 않는 칸영화제의 레드카펫이 부럽지 않습니다.


때마침 갓 생을 마감한 단풍 잎 하나가 개울 위로 떠내려갑니다. 삶을 마칠 때, 나도 저처럼 가벼운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완만하던 길이 조금 가팔라지면 ‘소간령’입니다. 이 고개를 넘으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나간 낙엽송 지대. ‘일본잎갈나무’라고도 부르는 낙엽송은 70년대 초반 화전 정리사업 때 사람들을 내보내고 심었다는 나무입니다. 낙엽송은 이렇게 깊게 뿌리를 내렸는데, 떠난 사람들은 어딘가에 뿌리를 내렸을지 궁금해집니다.
낙엽송 지대가 끝나고 나면, 뒤에서 내리쬐는 햇빛 때문에 ‘촉’이 두 배는 더 밝아진 억새밭이 나타납니다. 안으로 발을 들이니 사람 키를 넘는 억새에 가려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억새밭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자란 사람처럼, 억새 숲에서 누군가를 흠모하는 마음을 키우며 자란 사람처럼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은 지금 이 순간 어디에도 없어 보입니다.

 


흰 억새 춤추는 이곳이 마부들이 쉬어갔다는 ‘마장터’. 이곳에 아직 두어 채의 귀틀집이 남아있다는 얘길 들은 터여서 기웃거리는데, 여기라는 듯 강아지 한 마리가 짖어댑니다. 녀석을 따라가니, 마장터에서 28년째 살고 있는 정준기 할아버지(62세)네 귀틀집입니다. 어제까지 무려 40여일 간 송이를 따러 다녔다는 할아버지는 오늘 모처럼 집에서 장작을 패고 쓰레기를 태우는 일로 소일하고 계십니다. 운이 좋습니다.

“내가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만 해도 집이 여섯 채였어. 그 때 윗집에 살던 할머니한테 들은 얘긴데, 한창 땐 이곳에 40호가 넘게 살았다고 해. 함지박공장에 말발굽 파는 곳까지 없는 게 없었다지, 아마. 마부들 쉬어가던 마방에선 시원찮은 말을 팔고 새 것으로 바꿔 가기도 했다고 하니, 동네가 좀 왁자했겠어? 소금이나 생선, 그릇 같은 걸 싣고 마부들이 수시로 이 길을 넘나드는 통에, 이곳 사람들은 따로 장을 보러 나갈 일이 없었다고 들었어.”
한 때 40호에 이르렀다는 집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해봅니다. 의문은 이내 풀립니다. 굴피나 억새로 지붕을 잇고 흙으로 벽을 친, 그 자체로 자연인 그 집들은 사람들이 떠나고 난 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역시 그 자체로 자연인 할아버지의 귀틀집을 한참동안 바라봅니다. 마장터의 흙과 마장터의 억새로 할아버지가 손수 지었다는, 방도 창도 문도 하나뿐인 작은 집. 고개 아래 세상으로부터 전기 한 줌 끌어다 쓰지 않고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가난하지만 빛나는 삶’이 집안 곳곳에서 만져집니다.


“커피 한 잔씩들 할래?” 뜻하지 않은 할아버지의 물음에 주저 없이 “예”라고 답합니다. 가마솥에 끓인 물로 타주시는 생애 최고의 커피를 아껴 마시면서, 할아버지가 이곳에 깃든 사연을 듣습니다.
“원통 쪽에서 다리공사 인부로 일을 했는데, 알다시피 겨울엔 일이 없잖아. 공사장에서 알게 된 목수 하나가 소죽 끓여주면서 겨울을 날 수 있는 곳을 알려줬는데, 그게 저 윗집이었어. 그 집 주인과 함께 살다가 몇 년 뒤 이 집을 지었지. 마흔 넘어 장가도 가고, 약초랑 나물 같은 걸 캐서 번 돈으로 속초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부양해왔어. 식구들 보러 한 달에 한 번 속초를 나가긴 하는데, 내 맘은 이 집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해. 그나저나, 우리 쏘주 한 잔 할까?”
할아버지를 따라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듯한 방 안으로 들어갑니다. 호롱불부터 밝혀놓고, 할아버지는 방금 마신 커피 잔 가득 소주를 따라주십니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 할아버지의 귀한 이야기들을 듣자니, 절로 술맛이 납니다. 속초에서 할머니가 보내주셨다는 오징어젓갈에 소주 한 컵을 단숨에 비우고,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서 히죽거립니다.

더 있고 싶지만, 밀려드는 산골의 어둠이 이제 일어서라고 야단입니다. 손 흔드는 할아버지와 꼬리 흔드는 강아지를 뒤로 하고, 그만 발길을 돌립니다. 술기운 때문일까요, 왔던 길이 전혀 다른 길처럼 여겨집니다. 아까보다 더 차갑게 느껴져야 할 바람은 오히려 더 부드럽고, 어둠에 밀려 채도와 명도가 현저히 낮아진 단풍은 차라리 더 곱습니다. 어둠이 내려앉는 속도를 몸으로 느끼면서, 천천히 길을 걷습니다. 이곳이 꿈길인지 옛길인지 분간이 잘 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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