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질 때요.”
몇시에 주무세요?
“졸릴 때요.”
산에 살면서 뭐가 제일좋아요?
“시계와 달력 없이 사는 거요. 내일은 뭐뭐를 해야한다는강박감이 없어요.”
남한에서 두번째로 높은 해발 1천89m 고갯마루 운두령. 강원 평창군 계방산 밑자락에 들어앉은 운두령 산장 주인권대선씨(45)와의 첫인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싱겁지만 새길수록 부러운 말이다.
권씨는 자칭 ‘두령’이다. 눈이 부리부리한 게 정말 산두령같다. 그러나 그의 전직은 뜻밖에 오디오 디자이너. 해태전자 디자인실장이 서울에서 가졌던 마지막 직업이다. 93년 5월 16년간 일해온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디자이너로서는 더이상 진급할 자리가 없었다. 쫓아내겠다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디자이너와 관계없는 곳에 가서 눈치보며 다니긴 싫었다. 퇴사 후 등교하는 딸들의 어깨를 묵묵히 바라보아야 했던 일주일.
‘자전거포라도 하나 내는 게 어떠냐’는 아내의제의에 귀가 번쩍 뜨였다.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내릴 때 맛보던 그용솟음치던 에너지에 취해 틈만 나면 전국의 산과 들을 자전거로 휘젓고 다녔지 않았나. 취미가 직업이 될 줄이야.
장사보다는 동호인클럽을 만들어보자는 그의 취지는 1년만에 그를 인천 부평 일대에서 가장큰 매출을 올리는 가게주인으로 변신하게 했다.
이듬해엔 전국 산악자전거협회장으로까지 뽑혔다.
그러나 세상일이란,특히 조직의 ‘장’이란게 어디나 마찬가지.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깨끗이 가게를 정리하고 다시 시작한 백수생활. 늘 동경해오던 산생활을 시작할 때가 바로이때가 아닌가 싶었다. 평소 눈여겨 보아두었던 운두령에 땅을 마련하고스스로 집을 지어 산생활을 시작한 것이 95년 봄이었다.
아내와두딸은 강릉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혼자 살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아내가 다녀간다.
그는 차를 타면 한시간반경 안에 스키장과 바다가 있는 운두령산장을 도시인들의 청량제역할을 하는 쉼터로 만들겠다는꿈을 갖고 있다. 방 세개를 주말에 들르는 사람들에게 내주면서도 단순한 산장지기를 거부한다. 저녁엔 캠프파이어와 야외오디오를 매달아 분위기를 돋우고 낮엔 함께 등산도하고 산악자전거도 탄다.
덕분에 한달에10만원 정도했던 수입이 많을 땐 1백만원 안팎까지 된다. ‘촌스러운 친구들 때문에 공부하기 싫다’는 맏딸은 그렇다치더라도 한창 공부에재미를 붙인 둘째딸(중3)학원비 대기도 빠듯하다.
“스스로 선택한가난이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그는 “서울에선 직장을 잃으면하다못해 도둑질할 생각만 날 정도로 할 일이 없었지만 산에선 꼼지락거리기만 하면 다 먹고살 방도가 생기더라”는 게 그의 얘기.
인생의행복과 성공은 남의 기준이 아닌 내가 결정한다는 것을 마흔 중반에 뼈저리게 느낀다는 그는 무엇보다 피곤과 부대낌에 그을렸던 중년의 얼굴이회춘하는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1998.3.12.(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