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 1. 이내 짙게 낀 길 오랜만에 마주한 산에서 이 도시인은 헛구역질 몇번으로 신고식을 대신한다 나 이제 산에 다시 왔구나! 매연에 찌든 회색의 허파는 그제서야 산을 받아들인다 '동이 트는 새벽 꿈에...' 행군가를 부르며 힘겹게 한 발 한 발 오르는 길위에서 삶을 여행하는 고독한 나 그 수많은 '나'의 .. 시랍시고 2006.01.06
설악으로 가자 설악으로 가자 비내린 다음날엔 설악으로 가자 마등령 높은 마루금 아래엔 아침 자욱한 이내가 천불동 계곡을 오를테니 구름위로 솟는 아침 해로 눈을 돌리자 눈내린 다음날엔 설악으로 가자 희운각아래 계곡 깊은 밤에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달과 별이 구름속에서 수줍은 얼굴 내밀테니 그 빛에 .. 시랍시고 2006.01.06
어떤 만남 어떤 만남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며 거실 바닥에 둘이 마주 앉았다 온화한 인상의 직장인과 순진해 보이는 사내 순수 저 너머 휘어진 이 공간... 돈의 중력에 맑은 영혼들은 찢기워지고 삼키어지고 단지 불신만이 그 힘에서 벗어나 우주에 휘뿌려진다 그의 미소는 의심으로 휘어지고 내 친절은 탐욕.. 시랍시고 2006.01.06
시험 시험 때르르릉~~~~ '자 모두 하던일 멈추세요 시험지를 걷겠습니다' '아니 저 잠깐만요 이것만 하고요 어 안되는데....'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직 절반도 못 풀었는데 잠깐만요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안됩니다 십삼월은 없습니다' 시험지는 거두워지고 감독관은 교실문을 나선다 2001.12.26 십.. 시랍시고 2006.01.06
마음 마음 수억의 시간을 빛으로 날아도 끝이 보이지 않을 세계였다 어느날.. 눈뜨니 보이는건 어둠뿐 앞으로 내달려도 아무것도 없었다 숨고르다 문득 우주 건너 저멀리 내 오른손 뻗으니 누가 내 등을 툭하고 친다 그건 끈잘린 시계찬 내 손... 휘어진 공간속에서 여태 나는 제자리만 돌고 있었구나 광활.. 시랍시고 2006.01.06
새벽 새벽 이른 새벽 잠보다 먼저 일어나는 건 무감각한 생활속에 눌러놓았던 가슴 아린 현실 모두 잘라낸 졸알던 신경세포는 아직도 지난 상처를 덧낸다 사기꾼은 인생이 아니라 나였어 내가 삶을 속이려고만 했을뿐 술로도 지워지지 않을 것들... 별이 보고 싶다 수렴동 계곡속에 꼭꼭 숨은 세상에서 제.. 시랍시고 2006.01.06
수락산 자락에서 수락산 자락에서 얼어붙은 폭포 옆으로 오르는길 포대능선을 넘은 바람 이마에 ?힌 땀을 잡아챈다 거친 산길.. 늙은 소나무는 휘었고 암릉은 객을 밀어내리고... 휘고 솟은 산 바위가 나오면 뛰어넘고 사람이 나오면 밀어제쳐 직선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 끝없이 샘솟았다 가차없는 세월 내가 이 세상.. 시랍시고 2006.01.06
사슴벌레 2 사슴벌레 2 투명한 플라스틱 조그만 사육통속엔 온통 상아빛 애벌레가 휘젓고 지나간 자국만이 남아 있다 근심걱정없이 너는 연한 도토리톱밥 속에서 무슨 꿈을 꾸고 있니? 새 봄에는 너도 연약한 껍질 벗어나 단단한 투구와 갑옷으로 다시 태어나야지? 새로운 계절에는 나도 새로운 내가 되겟지... 네.. 시랍시고 2006.01.06
트럭 트럭 저녁이 내리는 산장 옆 공터에 너는 촌스런 늙은이 모양 낡디낡은 몸에 파란 물감 쓰고 서있구나 나도 한때는 말이야 큰 전쟁터마다 힘좋은 육기통 엔진으로 병사들을 열심히 실어날랐다고 큰소리 칠 듯도 하지만 너는 조용히 서있기만 한다 이젠 반백년 넘은 늙고 녹슨 몸 떨어져나가고 기워지.. 시랍시고 2006.01.06
초겨울 초겨울 도시 대로옆 내 어둔 방 흰 커텐을 기어오르는 낙엽같던 조그만 박쥐, 누렁이 밥 훔쳐먹는 까치, 가뭄에 과자부스러기 찾아 등산객 주위 달리는 설악산 다람쥐들, 그리고 겨울잠 자러 금광아파트 신축 공사장옆 녹슨 봉고차로 향하는 어린 형제 하수상한 시절속을 헤엄치는 아름다운 생명들... .. 시랍시고 2006.01.06